글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AI 툴로 만든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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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금융연구원의 박성욱 거시경제연구실 선임연구위원이 최근 발간한 연구보고서 '분가초기 기혼 청년가구의 순자산 분포 연구'는 이 현실을 20년치 추적 조사 자료로 정밀하게 해부했다. 한국노동패널(KLIPS) 자료를 토대로 부모 가구로부터 독립한 지 5년이 지난 가구주 연령 20~39세의 기혼 청년가구 743가구를 분석한 결과, 자가점유 여부, 수도권 거주, 부채 수준, 부모 순자산이 청년 가구의 자산 분포를 계층별로 얼마나 다르게 갈라놓는지가 통계적으로 확인됐다.
분석에는 무조건부 분위회귀(UQR) 방법론이 쓰였다. 평균적인 관계만 보는 일반 회귀분석과 달리, 특정 변수의 변화가 자산 분포 전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계층별로 따져볼 수 있어 정책 시사점을 도출하는 데 적합한 방법론으로 꼽힌다. 가령 정부가 청년 주택구입을 지원하는 정책을 폈을 때 그 혜택이 중위 계층에 더 크게 돌아가는지, 아니면 상위 계층만 더 부유하게 만드는지를 가려낼 수 있다.
■ 내 집이 있는 청년과 없는 청년, 5년 뒤 자산의 차이
이번 연구에서 가장 일관되고 강력한 효과를 보인 변수는 자가점유 여부였다. 자기 집에 사는 비중이 사회 전체적으로 늘어나면 청년가구 순자산 분포 자체가 위쪽으로 이동한다. 집을 가진 청년가구가 많아질수록 청년 세대 전반의 자산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주목할 지점은 그 효과가 중간 분위(50분위)에서 가장 크게 나타났다는 사실이다. 자가점유 비중이 10% 늘어날 경우 순자산 분포의 50분위에 해당하는 청년가구의 순자산이 약 5.9% 증가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반면 최상위 분위(80분위)에서는 그 효과가 상대적으로 작았다. 자가점유 확대가 불평등을 오히려 완화하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의미다. 순자산 분포의 중간 부분이 두터워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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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는 최상위 분위에서 효과가 작은 이유로 이 계층에서 실거주하지 않는 투자 목적의 주택을 추가로 보유하거나, 본인 집을 투자 목적으로 두고 주거 형태는 전월세인 경우가 많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했다. 집을 한 채 이상 가진 최상위층에게 자가점유 비중 확대의 추가적 효과는 그만큼 희석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청년 주택구입 지원 정책이 불평등 완화라는 목표와 함께 가려면, 혜택이 투자 목적의 다주택 보유로 흘러가지 않도록 실거주 요건 강화와 병행해 설계돼야 한다는 게 보고서의 처방이다.
■ 수도권에 산다는 것, 기회인가 짐인가
수도권 거주가 자산 형성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대한 분석 결과는 단순하지 않았다. 수도권 거주 여부 자체만 놓고 보면 청년가구의 순자산에 통계적으로 유의한 영향이 없었다. 수도권의 높은 주거비가 저축을 갉아먹는 부담으로 작용하는 동시에, 분양이나 집값 상승을 통한 자산 증식 기회도 존재하는 두 가지 힘이 서로 상쇄된 결과로 풀이된다.
그러나 수도권에 살면서 동시에 자기 집을 가진 경우는 달랐다. 이 교차 변수는 65분위(상위 35%)에서 통계적으로 유의한 양의 계수값을 보였다. 수도권에서 자가점유 비중이 늘어나면 중상위 계층의 순자산이 상향이동하면서 비수도권 자가점유 비중 증가에 비해 불평등을 다소 더 확대시키는 결과로 이어졌다.
미혼 청년가구만 별도로 분석했을 때의 결과도 시사하는 바가 컸다. 집 없이 수도권에 사는 미혼 임차 청년가구의 경우 수도권 거주 계수값이 중하위분위에서 유의한 음의 값을 보였다. 집을 살 여력이 있는 계층에게는 수도권이 자산 증식의 무대가 되지만, 전월세로 버티는 청년에게는 높은 주거비가 저축을 야금야금 갉아먹는 구조다. 보고서는 수도권 자가점유를 촉진하는 정책이 불평등을 악화시키지 않으려면 토지임대부 주택 공급 등 주거비 부담 완화 정책과 함께 추진돼야 하고, 안정적 거주가 가능한 공공임대 공급 확대도 병행돼야 한다고 밝혔다.
■ 빚은 상위층엔 자산 증식의 도구, 하위층엔 상환의 덫
부채가 자산에 미치는 영향은 계층별로 정반대로 나타났다. 소득 대비 부채 비율이 사회 전체적으로 높아지면 하위분위(20분위)의 순자산은 줄어들고 상위분위(80분위)의 순자산은 오히려 늘어났다. 빚을 활용해 레버리지 효과를 누리며 자산을 불릴 여력이 되는 상위층과, 원리금 상환 부담으로 오히려 자산이 줄어드는 하위층 사이의 격차가 부채 증가와 함께 확대된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선행연구들이 주로 써온 총자산 대비 부채 비율 대신 소득 대비 부채 비율(DTI)을 설명변수로 채택했다. 총자산 대비 부채 비율은 분석 모형의 종속변수인 순자산과 개념적으로 너무 가까워 통계적 왜곡이 생길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총자산 대비 부채 비율을 설명변수로 넣어 같은 모형을 추정한 결과 모든 분위에서 통계적으로 유의하지 않았다. 소득 대비 부채 비율을 쓴 결과에서야 비로소 계층별로 상반된 방향의 영향이 뚜렷하게 드러났다.
서울의 아파트들. / 뉴스1 자료사진
이 결과는 대출 접근성을 높여 청년의 주거와 자산 형성을 돕겠다는 정책 방향에 재고를 촉구한다. 상환 능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부채 확대는 하위 계층 청년의 자산을 오히려 갉아먹는 역효과를 낼 수 있다. 보고서는 하위 계층의 자산 증가를 지원하는 정책은 부채 확대보다 상환 능력 이내에서 부채를 관리하면서 소득 창출 능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추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 결혼이 부의 대물림을 당기는 방아쇠
이번 연구에서 가장 주목받는 발견은 부모 재산의 효과가 결혼을 계기로 비로소 두드러진다는 점이다. 분가 초기 기혼 청년가구를 대상으로 한 분석에서 부모 순자산은 50분위, 65분위, 80분위 등 중상위 분위에서 유의한 양의 영향을 미쳤고, 최상위인 80분위에서 그 효과가 가장 컸다. 부모 재산이 많을수록 자녀 가구의 중상위 계층 순자산이 상향이동하며 불평등이 확대되는 구조다.
그런데 미혼 청년가구만을 따로 분석했을 때는 부모 순자산의 영향이 통계적으로 유의하지 않았다. 미혼과 기혼을 합친 전체 분가 초기 청년가구 표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부모 재산의 효과는 기혼 가구에서만 뚜렷하게 나타났다.
보고서는 그 이유를 결혼 시점에 필요한 목돈 마련에서 찾았다. 전세보증금이나 주택 구입처럼 큰 자금이 한꺼번에 필요한 순간, 부모의 경제력이 자녀 가구의 자산 규모에 강하게 작용한다는 것이다. 반면 미혼 청년가구는 경제적 독립이 완전하지 않은 경우가 혼재해 있고, 부모로부터의 지원이 자산 취득보다 생활비 보조 성격인 경우가 많아 자산 형성에 미치는 영향이 약하다고 분석했다.
■ 베이비부머의 자산이 에코 세대로 넘어갈 때
보고서가 가장 무겁게 경고하는 대목은 앞으로의 전망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부동산 자산을 대거 축적한 베이비부머 세대가 속속 은퇴하고 있고, 이른바 에코 세대라 불리는 그 자녀들이 결혼과 함께 새로운 가구를 꾸리고 있다. 이 세대 교체의 흐름 속에서 증여는 자연스럽게 늘어날 수밖에 없다.
성장이 계속되고 평균 소득이 오른다면 청년 세대 전체의 자산 수준은 올라갈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부모 재산을 물려받은 청년과 그렇지 못한 청년 사이의 간극은 더욱 벌어진다. 사회 전체가 풍요로워지는 동시에 계층 간 격차는 더 고착화되는 모순이 심화되는 것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부의 대물림이 자산을 통한 직접 경로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청년가구의 소득 자체도 부모의 경제력에 상당한 영향을 받는다. 교육 기회, 사교육, 인맥 등 부모의 경제력은 자녀의 노동 시장 성과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번 보고서에서 측정된 부모 순자산의 효과는 소득을 통한 이 간접 경로를 이미 제외한 순수한 추가 효과다. 부의 대물림은 소득 경로와 자산 경로, 두 갈래로 동시에 작동하며 격차를 확대한다. 한쪽 경로만 막는다고 해결되는 구조가 아니다.
보고서는 이 같은 분석 결과를 토대로 구체적인 정책 방향을 제시했다. 청년 주택구입 지원은 실거주 요건 강화와 반드시 함께 가야 하고, 수도권 자가점유 촉진은 토지임대부 주택 등 주거비 감축 정책과 병행돼야 하며, 부채 확대를 통한 자산 형성 지원보다 상환 능력 이내의 부채 관리와 하위 계층의 소득 창출 능력 제고에 정책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청년 세대의 자산 불평등은 이미 진행형이다. 2020년 이후 기혼 청년가구의 순자산 지니계수가 다시 상승 추세로 돌아섰다는 사실이 이 보고서에서 확인됐다. 부모 재산, 빚, 집, 거주지역이 뒤엉켜 만들어내는 청년 자산의 불평등 구조는 시간이 지난다고 저절로 해소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적극적인 정책 개입 없이는 청년 세대의 경제적 불평등 완화가 달성하기 어려운 과제가 될 것이라는 게 보고서의 최종 진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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