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 우려에도 달러로 자금 이동…유가에 달린 금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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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레 우려에도 달러로 자금 이동…유가에 달린 금값

투데이신문 2026-04-18 09:52:53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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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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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문영서 기자】 글로벌 중앙은행들의 적극적인 금매입 기조로 폭등했던 금값이 중동 전쟁 이후 가격 조정을 받으며 전통적인 안전자산으로서의 지위가 흔들리고 있다. 지정학적 위기가 고조되거나 인플레이션 우려가 심화하면 안전자산인 금으로 자금이 몰린다는 기존의 공식이 무너진 것이다. 전문가들은 향후 금 가격이 유가 수준에 영향을 받을 것으로 전망했다.

18일 세계금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금 총 수요량(장외시장 포함)은 사상 처음으로 5000톤을 넘어섰을 뿐만 아니라 금값은 연중 53차례나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기도 했다. 연평균 가격 역시 전년 대비 44% 증가해 온스당 3431달러를 기록했다. 

2023년 말 온스당 2000달러 선을 밑돌던 금 선물 가격은 지난해 연말 전년 대비 64.4% 오른 4341.10달러를 기록했고, 올해 1월 말에는 5595달러로 사상 최고가를 경신했다. 

금값 상승의 가장 큰 배경 중 하나로는 세계 중앙은행들의 대규모 금 매입이 꼽힌다. 지난 2022년부터 2024년까지 전 세계 중앙은행의 금 순매입량은 3년 연속 연간 1000톤을 넘겼다. 

블루라인 퓨처스의 수석 시장전략가 필립 스트라이블은 CNBC와의 인터뷰에서 “금값 상승을 지지하는 구조적 요인 중에서는 중앙은행 매수가 있다”며 “중앙은행들은 달러를 비롯한 기타 통화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자산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는 중”이라고 분석했다. 

중앙은행 금 보유량 조사 2025. [사진=세계금협회]
중앙은행 금 보유량 조사 2025. [사진=세계금협회]

세계금협회가 지난해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전 세계 중앙은행의 95%가 향후 12개월 내 금 보유량을 늘릴 것으로 본다고 응답했다. 이 가운데 중앙은행들의 금 보유량은 4조달러 가량에 달하며 1996년 이후 30년 만에 처음으로 미 국채 보유량을 초과했다.

이러한 흐름은 ‘탈달러화’라는 구조적 기조와 맞닿아 있다. 1971년 금본위제가 붕괴한 이후 달러는 기축통화 지위를 유지하며 외환보유고의 상당수를 차지해왔다. 그러나 지난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서방 국가들은 스위프트(SWIFT) 결제망 배제와 함께 약 3000억달러(약 451조원) 규모의 러시아 해외 자산을 동결한 바 있다. 

이처럼 달러 자산의 타의적 동결과 무력화 리스크가 부각된 데다가 미국 국가부채 증가에 따른 이자 부담 우려 또한 금값 상승의 주요 동력으로 작용하며 특정 국가의 부채 문제에서 자유로운 금의 가격을 밀어올린 것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 정책 역시 이 흐름에 기름을 부었다. 지난해 미국 달러화 가치는 주요 통화 대비 연간 9.5% 하락하며 2017년 이후 최대 낙폭을 보였다. 트럼프 행정부의 상호관세 정책이 인플레이션 우려와 재정 건전성 논란을 동시에 점화하며 달러 자산에 대한 신뢰도가 흔들렸다. 

지난달 미 연방대법원이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관세 부과를 위법으로 판결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15% 추가 관세로 맞대응하겠다는 메시지를 내놓으면서 정책 불확실성이 다시 커졌다. 이 과정에서 금 선물은 꾸준히 오르며 하락분을 회복했다. 정책 불확실성이 클수록 금으로 자금이 쏠리는 패턴이 반복된 것이다.

지난해 이어진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하 기대 또한 금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금리가 내려가면 채권이나 예금 같은 달러 자산의 수익률이 떨어지고, 달러 약세가 동반되면서 달러로 거래되는 금 가격은 자연스럽게 오른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미·중 갈등 등 복합적인 지정학적 위험도 안전자산인 금 수요를 지탱한 것이다.

고유가·강달러·금리동결 삼중고에 짓눌린 금값

그러나 이 같은 공식이 최근 흔들리고 있다. 미·이란 전쟁 발발 이후 유가가 급등하면서 금은 기대와 달리 강세를 나타내지 못했다. 고유가가 달러 수요를 끌어올리며 달러 강세를 만들어내고, 인플레이션 헷지 수단으로서 금의 매력보다 달러 강세로 인한 수요 억제 효과가 더 강하게 작용한 것이다. 

금 선물 6월물은 미·이란 전쟁 발발 전인 2월 말 5200달러대에 거래됐으나 지난달 4300달러 선까지 내리며 가상자산 등 위험자산과 동조화되는 모습을 보였다. 이후 지난 7일 미국과 이란이 2주간의 휴전에 합의하자 4700달러 수준을 회복했다. 

이처럼 시장은 이란과의 협상 진전에 기대를 내비치며 일시적 완화 기조가 확산됐지만, 이후 지난 10일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서 진행된 협상이 별다른 성과 없이 결렬돼 합의 기대가 꺾이자 유가는 다시 급등세를 탔고, 달러자산 선호가 강해지면서 금값 역시 재차 하락세를 보였다. 

이란은 휴전 이후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공격한 것에 대해 휴전 합의 위반이라고 주장하며 유조선들에 가상화폐 등으로 통행료를 지불하라는 기조를 유지한 바 있다. 미국은 이에 반발해 오후 11시부터 이란 항구를 출입하는 모든 해상교통에 대한 봉쇄 조치를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이번 금값 하락에는 유가 상승이 달러 강세를 이끄는 구조적 매커니즘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국제 원유 거래는 달러로만 결제되는 ‘페트로달러’ 체제로 운용된다. 유가가 오를수록 전 세계 원유 수입국이 결제를 위해 확보해야 할 달러의 절대량이 늘어나 고유가가 달러 수요를 끌어올리는 것이다.

서울대 경제학과 안동현 교수는 “모든 유류는 달러를 통해 결제하게 돼 있다”며 “환율 상승에도 일정 부분 영향을 끼쳤을 수 있다”고 말했다. 

통상 전쟁에서는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강해지고, 유가 급등 국면에서는 인플레이션 우려가 강해지며 헷지 수단인 금으로 자본이 몰리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지금은 유가 상승이 달러 수요 급증으로 이어지며 달러 강세를 만들어내고 있다. 인플레이션 헤지 수단으로서 금의 매력보다 달러 강세로 인한 수요 억제 효과가 더 강하게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금 시장 분석: 하락세 분석. [사진=세계금협회]
금 시장 분석: 하락세 분석. [사진=세계금협회]

세계금협회(World Gold Council)는 최근의 금값 하락이 “일반적으로는 금 가격에 유리한 환경, 즉 지정학적 긴장 고조와 인플레이션 우려 재발이라는 배경 속에서 발생했다”고 분석했다.

고유가로 인한 물가 상승 불안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하 기대를 후퇴시키며 금값 하락 압력을 더했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시장은 올해 FOMC에서 기준금리를 동결할 확률을 80% 이상으로 해석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이란은 해협을 통과하는 유조선에 배럴당 1달러 수준의 통행료를 부과하되 결제는 위안화 또는 스테이블코인으로 받겠다고 밝힌 바 있다. 초대형 원유 운반선(VLCC) 한 척의 적재 용량이 통상 200만 배럴에 달하는 만큼 척당 200만달러(약 30억원) 수준의 통행료가 발생할 수 있다. 호르무즈를 통과하는 하루 원유 물동량이 2000만 배럴에 육박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국제 유가와 환율을 자극하는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시장에서는 이를 달러 패권에 대한 견제 의도로 해석하기도 한다. 석유 대금이 달러로 결제되는 페트로달러 체제는 1971년 금본위제가 붕괴한 이후 달러가 기축통화 지위를 유지하는 핵심 근거였기 때문이다. 이란이 세계 원유와 액화천연가스(LNG) 수송의 약 20%가 통과하는 전략 요충지에서 위안화 결제를 공식화한다면, 달러 수요의 구조적 기반 자체에 균열이 생기는 셈이다. 

안 교수는 “이란이 현재 미국을 적국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달러 패권 견제를 위한 행위라고 해석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결국 금값은 종전 협상이 타결돼 호르무즈가 안정적으로 개방되고 유가가 진정된다면 달러 강세 압력이 완화되며 다시 반등할 여지가 있다. 반대로 협상이 결렬되고 전쟁이 재점화된다면 고유가·달러 강세·금리 인하 기대 후퇴라는 삼중 압박이 다시 금값을 짓누를 수 있는 상황이다. 

키움증권 심수빈 연구원은 “유가가 안정되면 금값이 반등할 것으로 보이나 안정되지 않을 경우 연준 통화정책의 불확실성에 달려있다”고 짚었다. 

현재 미국과 이란의 휴전은 오는 21일 종료되며,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주말 이란과 2차 협상을 진행할 수 있다고 언급한 상황이다. 이 가운데 지난 밤 이란이 휴전기간 동안 호르무즈 해협을 완전 개방하겠다고 밝히며 국제유가는 약 10% 가까이 내렸고, 원·달러 환율 역시 1460원대까지 하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다만 종전이 결정되지는 않은 만큼 추가 변동성 확대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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