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인물열전] (16) '자원 저주' 극복한 보츠와나 세레체 카마 초대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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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인물열전] (16) '자원 저주' 극복한 보츠와나 세레체 카마 초대 대통령

연합뉴스 2026-04-18 08:00:02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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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회사 드비어스와 합작사 설립 국가 발전 기반 마련

영국 유학 중 백인과 결혼 뒤 귀국길 막혀 망명 생활…영화로도 제작돼

2025년 10월 9일 나미비아에서 열린 '세레체 카마 거리' 명명식에서 세레체 카마 보츠와나 초대 대통령의 사진 앞에서 아들인 이안 카마 전 보츠와나 대통령이 연설하고 있다.[이안 카마 보츠와나 전 대통령 페이스북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2025년 10월 9일 나미비아에서 열린 '세레체 카마 거리' 명명식에서 세레체 카마 보츠와나 초대 대통령의 사진 앞에서 아들인 이안 카마 전 보츠와나 대통령이 연설하고 있다.[이안 카마 보츠와나 전 대통령 페이스북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요하네스버그=연합뉴스) 나확진 특파원 = 지난해 10월 9일 남부 아프리카 나미비아 수도 빈트후크에 네툼보 난디-은다이트와 나미비아 대통령과 두마 보코 보츠와나 대통령, 이안 카마 보츠와나 전 대통령이 모두 모였다.

나미비아 수도에 있는 '펠드 거리'를 이웃 보츠와나의 초대 대통령 이름인 '세레체 카마'를 따 '세레체 카마 거리'로 바꾸는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이 자리에서 난디-은다이트와 대통령은 "나미비아는 세레체 카마 경을 소중히 기억하고 있다"며 "자결권에 대한 그의 흔들림 없는 지지와 식민 억압에 맞선 연대는 우리의 국가적 기억에 깊이 새겨져 있다"고 말했다.

그는 "거리가 사람과 장소를 연결하듯, 세레체 카마의 유산은 세대를 연결한다"며 "오늘 우리는 이 지역과 대륙의 이들 거인의 발자취를 따라 그들이 추구한 가치와 헌신을 기릴 것"이라고 말했다.

세레체 카마의 아들인 이안 카마 전 보츠와나 대통령(2008∼2018년 재임)은 "이 거리는 단순한 표지판의 이름이 아니라 정의, 존엄, 단합, 그리고 아프리카의 자결 정신이라는 아버지가 추구한 가치를 상징한다"며 "아버지는 진보가 지배나 공포가 아니라 협력과 상호 존중을 통해 이뤄진다고 믿었다"고 화답했다.

이들의 말처럼 세레체 카마(1921∼1980) 보츠와나 초대 대통령은 자국에서 국부로 숭상받을 뿐 아니라 주변 아프리카 여러 나라에서 오래도록 존경받고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도 카마 전 대통령에게 "아프리카 대륙 발전과 아파르트헤이트(흑인 분리·차별 정책)에 대한 투쟁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해 최고 수준의 외국인 공로훈장 중 하나인 'O.R. 탐보 동지 훈장'을 추서했다.

카마 전 대통령은 1921년 7월 당시 영국 보호령이었던 베추아날란드(현재 보츠와나) 중부 방와토 부족의 통치자였던 코시 카마 3세의 손자로 태어났다.

1925년 부친 세크고마가 즉위 2년 만에 사망하면서 당시 네살이던 카마 전 대통령은 왕위를 이어받았다.

그는 남아공에서 대학교를 졸업한 뒤 1945년 영국으로 유학해 옥스퍼드대에 진학했고 영국 백인 여성 루스 윌리엄스를 만나 1948년 결혼했다.

하지만 당시 베추아날란드를 식민 지배한 영국 노동당 정부와 이웃의 백인 정부 남아프리카연방은 그가 백인 여성과 결혼한 것이 미칠 영향을 우려해 카마가 왕의 지위를 가지고 귀국하는 것을 막았고 영국에서 강제 망명 생활을 하게 됐다.

이들 부부에 대한 영국 정부의 처우가 언론을 통해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지면서 인권 단체와 시민 사회의 항의가 이어졌고 1956년 영국은 그의 귀국을 허용했다. 하지만 부족의 왕이 아닌 일반 시민으로서 돌아오게 됐다.

이들 부부의 이야기는 2016년 영국에서 '오직 사랑뿐'(A United Kingdom)이라는 제목으로 영화로 제작돼 국내에서도 동영상 서비스(OTT) 플랫폼을 통해 시청할 수 있다.

세레체 카마 보츠와나 초대 대통령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오직 사랑뿐' 세레체 카마 보츠와나 초대 대통령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오직 사랑뿐'

[팝엔터테인먼트 제공]

카마는 귀국 후 1960년 베추아날란드민주당(BDP)을 창당하고 1965년 보통선거로 실시된 첫 민주적 선거에서 승리하면서 초대 총리가 됐다.

이듬해인 1966년 9월 30일 보츠와나 공화국을 국호로 독립을 선언하고 초대 대통령이 됐으며 1980년 사망할 때까지 4선을 하며 대통령에 재직했다.

카마 대통령 재임 기간 보츠와나는 신중한 정책과 효율적인 국가 자원 운용을 통해 빠른 경제·사회 발전을 이뤘고, 보츠와나는 아프리카에서 최빈국에서 부유한 국가 중 하나로 도약했다고 남아공 대통령실은 평가했다.

2025년 기준으로도 보츠와나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7천달러(약 1천만원) 수준으로 아프리카 국가들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 같은 산업 발전은 세계 2위 매장량과 생산량을 자랑하는 보츠와나의 다이아몬드에 기반하고 있지만, 다이아몬드를 통한 안정적인 국부 창출 구조를 만든 카마 대통령의 기여가 더 중요하게 지목된다.

카마 대통령은 독립 직후 자국에서 다이아몬드가 발견되자 1969년 자신이 직접 협상을 주도해 보석회사 드비어스와 보츠와나 정부가 50 대 50 지분을 갖는 합작회사 뎁스와나를 설립했다.

다이아몬드 수출로 벌어들인 수익을 도로, 교육, 보건 등 분야 개발에 재투자해 국가 산업 기반을 마련했으며, 사적 착복 등 부패 의혹도 남기지 않았다.

김영완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최근 연합뉴스에 기고한 칼럼에서 보츠와나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이른바 '자원의 저주'를 극복한 거의 유일한 사례라며 그 배경에 카마 전 대통령이 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카마 전 대통령에 대해 "다이아몬드를 개인의 부를 축적하는 수단으로 사용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자신의 세력을 불리고 민주주의를 핍박하는 수단으로 쓰지도 않았다"며 보츠와나가 견고한 민주주의를 안착시킬 수 있던 배경에도 자신의 권한을 의회와 사법부로 분산시키고 민주주의 정착에 최선을 다한 그의 노력이 있다고 평가했다.

카마는 이웃 국가들의 운명에도 깊은 관심을 가져 짐바브웨와 나미비아의 독립으로 이어진 협상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그는 또 남부아프리카개발공동체(SADC)의 창립을 주도해 보츠와나에 SADC 본부를 뒀다.

이 같은 카마 대통령의 노력에 오늘날 보츠와나는 아프리카에서 대표적인 민주주의 성공 사례 국가로 거론된다.

카마 전 대통령이 만든 보츠와나민주당(BDP)이 58년간 집권하긴 했지만, 이 기간 부정선거 등 논란에 휩싸이지 않았으며 2024년 선거에서는 야당인 '민주적 변화를 위한 우산'(UDC)이 승리해 두마 보코 현 대통령으로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뤘다.

보츠와나 다이아몬드 보츠와나 다이아몬드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ra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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