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에 따르면 영국 총리실이 보안 심사에서 탈락한 인물을 주미대사로 임명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 키어 스타머 총리가 또다시 정치적 궁지에 몰렸다.
16일(현지시간) 가디언이 보도한 바에 의하면, 피터 맨덜슨 전 주미대사는 지난해 1월 외무부 안보 당국이 실시한 보안 검증 절차를 통과하지 못했다. 그러나 같은 시기 총리실에서 그의 대사 임명이 발표됐고, 외무부는 보안 당국의 부적격 판정을 이례적으로 번복하는 결정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미 법무부가 공개한 이른바 '엡스타인 파일'로 인해 맨덜슨 전 대사를 둘러싼 의혹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산업장관으로 재직하던 시절 성착취 범죄자 제프리 엡스타인에게 내부 정보를 흘렸다는 혐의로 현재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이다.
평판 리스크를 인지하고도 임명을 밀어붙였다는 비판이 스타머 총리를 향해 쏟아졌다. 지난 2월 논란이 격화되자 노동당 내부에서조차 당 대표 교체론이 고개를 들었다. 스타머 총리 본인도 임명이 잘못된 판단이었음을 시인하며 엡스타인 피해자들에게 여러 차례 사과의 뜻을 전했다. 다만 의회에서는 인사 절차상 결함보다 맨덜슨의 허위 진술에 속아 임명하게 됐다는 논리로 해명해왔다.
이번 보도 내용이 사실임을 총리실이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해당 결정은 외무부 소관이었으며, 스타머 총리는 당시 보고를 받지 못한 채 이번 주에야 사실을 파악했다고 해명했다. BBC에 따르면 스타머 총리는 외무부 최고위 관료인 올리 로빈스 상임차관을 해임 조치했다.
다음 달 초 잉글랜드 지방선거와 웨일스·스코틀랜드 의회 선거를 목전에 둔 상황에서 터진 이번 파문은 노동당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스타머 총리는 최근 이란 문제를 놓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압박에 맞서며 프랑스와 공동으로 호르무즈 해협 항행 자유를 위한 국제 공조를 이끄는 등 외교 무대에서 입지를 다지려 애써왔다.
이날 파리에서 호르무즈 관련 정상회의를 주재한 스타머 총리는 기자들 앞에서 거듭 해명했다. 맨덜슨의 보안 심사 탈락 사실이 자신은 물론 다른 각료에게도 전달되지 않았다며 충격과 분노를 표시했다. 오는 20일 의회에서 관련 경위를 전면 공개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야당 진영은 즉각 총리 퇴진 요구에 나섰다. 제1야당 보수당의 케미 베이드녹 대표는 17일 기자회견을 열어 무능한 지도자가 국정을 맡아서는 안 된다고 비판하며 의회 차원에서 총리 퇴진을 위한 모든 수단을 검토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노동당 의원들에게는 총리 교체라는 '올바른 결단'을 내려달라고 호소했다.
자유민주당 에드 데이비 대표 역시 국민과 의회를 기만한 것이 사실이라면 스타머 총리가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리스 존슨 전 총리의 '파티게이트' 때처럼 특권위원회 조사 착수도 요구했다. 최근 노동당 지지층을 잠식하고 있는 녹색당의 잭 폴란스키 대표는 소셜미디어에 '스타머가 사퇴 없이 오늘을 넘긴다면 납득할 수 없다'고 적었다.
2024년 7월 취임한 스타머 총리의 임기는 자진 사퇴나 조기 총선이 없는 한 2029년 여름까지 이어진다. 야당이 직접 총리를 끌어내릴 수 있는 제도적 방법은 없으며, 노동당 하원의원들이 당 규정에 따라 대표를 교체하면 자동으로 총리도 바뀌는 구조다. 지난 2월에도 당내 반발이 극심해 위기에 몰렸으나 의원단 설득에 성공하며 고비를 넘긴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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