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머니=현요셉 기자]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의 경영권 사수 작전이 점입가경이다. 글로벌 사모펀드 베인캐피탈이라는 '비싼 우군'을 내보내고 메리츠금융그룹을 새 백기사로 맞이한 것까지는 시장에서 리파이낸싱(자금 재조달)의 일환으로 읽혔다. 하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대한민국 자본시장의 규제망을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는 변종 거래의 민낯이 드러난다. 이번 거래가 왜 단순한 자금 조달을 넘어 법적·도덕적 논란의 중심에 섰는지 쟁점별로 짚어본다.
▲ 1,200원으로 5,400억을 빌린 '기묘한 레버리지'
이번 거래의 주인공은 '피23파트너스'라는 생소한 이름의 특수목적법인(SPC)이다. 이 회사의 자본금은 단돈 1,200원. 성인 한 명의 버스 요금보다도 적은 돈으로 세워진 이 법인이 메리츠금융으로부터 빌린 돈은 무려 5,411억 원에 달한다. 자본금 대비 약 4억 5,000만 배에 달하는 이 기묘한 레버리지는 정상적인 기업 금융의 범주에서는 설명이 불가능하다.[1] 실질적인 상환 능력이 전무한 '페이퍼컴퍼니'를 내세워 거액의 지분을 인수하는 방식 자체가 이미 이번 거래의 목적이 '책임 경영'보다는 '우회적 지배력 확보'에 있음을 시사한다.
▲ '300% 담보'가 말해주는 거래의 실체
메리츠금융이 설정한 300%라는 담보유지비율은 IB 업계에서도 "가혹하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이례적이다. 통상적인 주식담보대출 비율인 140~160%의 두 배에 달하는 이 수치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
결국 대주(貸主)인 메리츠조차 차입 주체인 SPC의 신용을 '제로(0)'로 보고 있다는 뜻이다. 이를 맞추기 위해 최 회장 일가 11명이 개인 지분까지 탈탈 털어 담보로 제공했다. 형식은 SPC와 금융사 간의 계약이지만, 실질은 최 회장 개인의 자산을 기반으로 한 '변종 개인 대출'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 메리츠는 주가가 3분의 1 토막이 나도 원금을 보전하는 '무위험 수익'을 챙겼지만, 최 회장 일가는 상시적인 마진콜 위험이라는 벼랑 끝에 서게 됐다.
▲ 자본시장법 위반, '제2의 SK실트론' 되나
가장 뼈아픈 대목은 법적 정당성이다. 자본시장법 제77조의3은 대형 증권사가 개인의 사적 이익이나 지배력 확대를 위해 신용공여를 하는 것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 금융당국은 과거 '한국투자증권-SK실트론 TRS 사건' 당시에도 형식이 아닌 '실질'을 기준으로 개인 신용공여 여부를 판단해 제재를 내린 바 있다.
피23파트너스 거래 역시 SPC라는 외피만 둘렀을 뿐, 자금의 흐름과 위험의 귀속처가 최 회장 일가 개인에게 집중되어 있다는 점에서 '우회적 개인 신용공여' 논란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만약 당국이 이를 위법으로 판단할 경우,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막대한 벌금형이라는 사법 리스크가 최 회장을 덮칠 수 있다.
▲ 콜옵션에 숨겨진 '기회 증여'와 상속 의혹
도덕적 해이 논란은 최 회장 측이 확보한 '콜옵션'에서 정점을 찍는다. 주가가 오르면 개인이 콜옵션을 행사해 수익을 독점하고, 주가가 내리면 개인 담보만 처분되는 구조는 전형적인 '위험의 외주화'이자 '이익의 사유화'다.
특히 업계에서는 이 콜옵션이 향후 4세 등 후계자들에게 승계 재원으로 활용될 가능성을 주목하고 있다. 낮은 행사가격으로 옵션을 설정해두고 기업 가치가 올랐을 때 자녀들이 이를 행사하게 함으로써, 직접 주식을 증여할 때보다 훨씬 적은 세금으로 지배력을 넘겨주는 '기회 증여' 방식이다. 이는 우리 자본시장이 그토록 타파하고자 했던 '편법 승계'의 전형적인 수법과 닮아 있다.
▲ 고려아연은 왜 이런 무리수를 두었나
결국 고려아연이 이런 혹독하고 위험한 조건을 수용한 이유는 단 하나, '시간'이다. 베인캐피탈의 10%대 고금리를 6%대로 낮추면서, 동시에 2029년까지 우호 지분을 묶어둘 수 있는 시간을 벌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
하지만 경영권 방어라는 명분이 모든 수단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자본금 1,200원짜리 회사를 내세운 거래 구조가 자본시장의 투명성을 훼손하고 소수 주주의 이익을 침해한다는 비판은 피하기 어렵다.
이번 사안의 핵심은 '절박함이 낳은 변칙'이다. 최 회장이 백기사를 교체하며 급한 불은 껐을지 모르나, 법적 위반 소지와 도덕적 비판이라는 더 큰 불씨를 지핀 셈이다. 금융당국의 현미경 조사가 시작된다면, 자본금 1,200원의 기적이 아닌 '1,200원의 비극'으로 끝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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