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시간 -5] 대상, 미원에서 청정원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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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시간 -5] 대상, 미원에서 청정원까지

폴리뉴스 2026-04-17 23:27:02 신고

[편집자주] '기업의 시간'은 대한민국 산업을 만들어 온 기업들의 역사와 변곡점을 기록하는 연재다. 창업과 성장, 위기와 재편을 거치며 기업은 시대의 흐름 속에서 스스로를 바꿔왔다. 폴리뉴스는 이 연재를 통해 식품•유통•소비재 산업을 중심으로 한국 경제의 한 축을 형성해 온 기업들의 발자취와 경영의 전환점을 차례로 조명한다.

대상 CI. 70년 역사 위에서 사람과 자연 모두 건강한 미래를 만드는 기업이라는 비전을 담았다. 사진=대상
대상 CI. 70년 역사 위에서 사람과 자연 모두 건강한 미래를 만드는 기업이라는 비전을 담았다. 사진=대상

1956년 부산 동대신동 150평 조미료 공장 하나에서 시작한 기업이 70년 만에 청정원•종가•웰라이프를 거느린 K-푸드 종합식품그룹으로 성장했다. 창업주 故 임대홍 회장이 일본에서 온갖 수모를 견디며 익혀온 조미료 기술이 오늘 대상그룹의 씨앗이었다. 청정원이 브랜드 론칭 30주년을 맞은 2026년, 대상은 독일 의약 바이오 기업 인수라는 새로운 승부수를 꺼내들며 다음 70년의 판을 짜고 있다.

미원의 탄생, 한국 식품 산업의 출발점

한국전쟁 직후 한국의 식탁은 일본산 조미료 '아지노모토'에 잠식돼 있었다. 쌀값보다 비쌌다. 전북 정읍 출신의 젊은 무역상 임대홍은 이 현실을 참을 수 없었다. 국산 조미료를 직접 만들겠다는 열망으로 1955년 일본행을 결심했다. 현지에서 온갖 멸시와 수모를 견디며 MSG 제조 기술을 익혔다. 이듬해인 1956년 부산 동대신동에 동아화성공업주식회사를 설립하고 국산 조미료 미원을 세상에 내놓았다. 순수 국내 기술과 자본으로 만든 첫 번째 조미료였다.

창업주는 경영자보다 실험자에 가까웠다. 직접 설비를 제작하고 부족한 자재는 옹기와 돌로 대신했다. 글루탐산 제조 공정에서 설비 부식 문제가 발목을 잡자, 두 달간 전국의 돌을 직접 수집해 석질을 검사한 끝에 내산성 농축조인 석부(돌솥)를 개발했다. 초기 월 5톤에 불과하던 생산량은 이 설비 혁신으로 월 150톤까지 늘어났다.

그 집념으로 미원은 1960~70년대 국내 조미료 시장의 절반 이상을 점유하며 한국인의 밥상을 바꿔놓았다. 1967년 발효식품 최초로 KS인증을 획득했고 1970년 네덜란드에서 열린 세계식품콘테스트 통조림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하며 해외로도 이름을 알렸다.

1962년 서울미원㈜으로 사명을 바꾸고 1964년 전분•전분당 사업으로 외연을 넓혔다. 1970년 한국거래소에 상장했고 1971년 대상문화재단을 설립하며 사회적 책임의 틀을 마련했다. 해외 진출도 이 시기에 시작됐다. 1973년 인도네시아 법인을 설립하고 1978년 일본, 1982년 미국 법인을 차례로 세웠다. 조미료 하나로 세계의 문을 두드린 것이었다. 장남 임창욱 회장이 1987년 그룹을 물려받아 해외 사업 확장과 기업 현대화를 이끌었고 1997년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하면서 사명을 '대상'으로 바꾸며 지금의 틀을 갖췄다.

청정원 30년, 식탁을 바꾼 브랜드의 진화

1996년 청정원 브랜드가 출범했다. 미원으로 대표되던 조미료 기업의 이미지를 '깨끗한 원료, 정성을 담은 식품'이라는 프리미엄 종합식품 브랜드로 전환하려는 시도였다. 임창욱 회장이 주도한 이 전환은 이듬해 사명 변경과 맞물려 대상의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냈다. 출범 30년이 지난 지금 청정원은 순창 고추장, 햇살담은 간장, 호밍스 간편식, 맛선생 육수 등 다양한 카테고리로 확장하며 한국 식탁의 기본 재료를 공급하는 브랜드로 자리잡았다.

2006년 종가집을 인수하며 대상은 김치 시장의 절대 강자로 올라섰다. 이후 '종가(Jongga)'로 브랜드를 리뉴얼하고 글로벌 김치 세계화의 전면에 섰다. 종가 김치는 2026년 한국산업의 브랜드파워(K-BPI) 조사에서 26년 연속 1위를 기록했고 구매안심지수(K-PEI)에서도 3년 연속 1위를 지켰다. 청정원 호밍스는 냉동국물 부문에서 새롭게 1위에 올랐고 청정원 순창은 장류 부문, 청정원 파스타 소스도 1위를 차지하며 4개 부문을 석권했다.

청정원 30주년을 맞은 대상은 배우 임윤아를 모델로 '우리가 원하던 건강한 오늘'이라는 캠페인을 전개하며 브랜드 새단장에 나섰다. 30주년 기념 엠블럼도 공개했다. 청정원 BI의 타원 형태와 대표 컬러 '프레시 블루'•'트루 옐로우'를 숫자 '30'에 녹여낸 디자인으로 청정원 순창•호밍스•맛선생•햇살담은 등 주요 제품 패키지에 순차 적용할 계획이다. 사회공헌도 꾸준히 이어졌다. 1971년 설립한 대상문화재단은 장학 사업과 문화 지원을 이어왔고 2010년 인수한 초록마을을 통해 유기농•친환경 식품 유통 생태계 구축에도 기여하고 있다.

 바이오•글로벌, 대상의 다음 70년

대상의 글로벌 전략은 종가 김치가 견인하고 있다. 종가 김치 수출액은 2016년 2900만 달러에서 2024년 9390만 달러로 3배 이상 증가했다. 국내 전체 김치 수출의 57%를 종가가 차지한다. 2025년에는 수출 대상국이 처음으로 100개국을 넘어섰다. 

미국 시장 공략은 특히 공격적이다. 2022년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인근에 연간 2000톤 규모 김치 공장을 완공했고 2023년에는 미국 현지 아시아 식품기업 럭키푸즈를 인수해 유통망을 확대했다. 유럽에서는 2023년 폴란드 발효 채소 전문기업 ChPN과 합작법인을 설립하고 크라쿠프에 2030년까지 연간 3000톤 생산 규모의 김치 공장을 건설 중이다. 임정배 대표이사는 종가를 글로벌 1조원 매출 브랜드로 키우겠다는 목표를 공개했다.

여기에 새로운 도전이 더해졌다. 대상은 2025년 독일의 의약용 아미노산 전문기업 아미노 유한회사(AMINO GmbH) 지분 100%를 약 502억원에 인수하며 글로벌 의약 바이오 시장에 본격 진출했다. 1958년 설립된 아미노는 독일 북부 프렐슈테트에 연구소와 공장 3곳을 운영하며 의료용 수액제•환자식•바이오의약품 세포배지에 쓰이는 아미노산을 생산한다.

의약용 아미노산 시장은 고령화와 바이오의약품 급성장으로 연 10%씩 성장하는 분야다. 대상이 사료용 아미노산 사업으로 쌓아온 정제 기술과 아미노의 67년 업력이 결합하면 고부가가치 의약 소재 사업으로 도약할 발판이 마련된다.

2025년 대상의 연결 기준 매출은 4조4016억원으로 전년 대비 3.4% 증가했다. 그러나 영업이익은 1706억원으로 3.6% 감소했다. 글로벌 비용 부담과 수요 둔화가 수익성을 눌렀다.

국내 식품 사업과 종가 김치•소스류•편의식 등 글로벌 주요 품목 판매 증가로 외형은 꾸준히 커지고 있어 중장기 성장 기반은 유지되고 있다는 평가다. 3세 경영도 무르익고 있다. 임창욱 명예회장의 장녀 임세령 부회장이 브랜드•마케팅을, 차녀 임상민 부사장이 전략•글로벌 사업을 맡는 자매 경영 체제가 자리를 잡았다.

지주사 대상홀딩스 최대주주인 임상민 부사장 중심으로 승계 구도가 모양을 갖춰가는 가운데 전문경영인 임정배 대표와 최성수 대상홀딩스 대표가 경영을 뒷받침하고 있다. 미원 한 봉지로 한국인의 식탁을 바꾼 창업주의 열망이 70년 뒤 K-푸드 글로벌화와 의약 바이오 도전의 동력이 되고 있다. 150평 공장에서 100개국 식탁으로, 조미료에서 의약 바이오로. 대상의 시계는 멈추지 않고 있다.

※ 이 기사는 연재 '기업의 시간' 5편이다. 다음 편에서는 신세계의 시간을 살펴본다.

[폴리뉴스 조자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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