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이상완 기자] 서울 송파 일대서 전해 온 송파다리밟기는 정월 대보름 밤 다리를 건너며 액운을 막고 다리의 탈이 없기를 비는 세시풍속이다. 송파 판은 여느 답교와 사뭇 다르다. 다리만 밟고 끝나지 않는다. 길놀이가 먼저 열리고, 마당춤이 뒤를 잇는다. 선소리와 풍물이 사람들을 끌어 모은다. 정월 대보름 민속에 송파산대놀이와 선소리산타령이 붙으면서 답교는 큰 놀이판이 됐다. 송파다리밟기는 무병을 비는 풍속인 동시에 서울 동남권 장시와 연희 풍경을 함께 간직한 민속예술이다.
◇답교 풍속이 송파서 큰 놀이판이 되기까지
다리밟기 풍속 자체는 오래됐다. 이수광의 ‘지봉유설’은 이를 답교지희(踏橋之戱)라 적었다. 고려 때부터 이어 온 놀이라 했다. ‘경도잡지’와 ‘열양세시기’, ‘동국세시기’에도 정월 대보름 밤 광통교와 수표교에 인파가 몰렸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신분을 가리지 않고 줄지어 다리를 밟았다. 생황과 북소리가 밤늦게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답교는 서울 도성 안팎서 널리 벌어진 대보름 풍속이었다.
송파서 판이 커진 데에는 장터가 있었다. 한강 물길과 맞닿은 송파장은 상인이 몰린 큰 시장이었다. 장이 서면 산대놀이, 씨름, 줄타기, 소리판이 벌어졌다. 송파산대놀이 연희자와 선소리패가 답교판에 끼어들면서 흥겨운 행사로 자랐다. 일제강점기 무라야마 지준의 ‘조선의 향토오락’에도 무동을 태운 농악대가 앞서고, 다리 위와 둘레서 마을 사람들이 함께 춤추며 어울렸다는 기록이 있다. 송파다리밟기 판놀음은 적어도 1900년대 초보다 앞선 시기부터 자리를 잡은 셈이다.
판이 끊길 고비도 있었다. 1925년 대홍수가 송파 일대를 덮쳤고, 광복과 한국전쟁을 지나는 동안 전승도 약해졌다. 다행히 맥은 남았다. 1950년대 후반부터 다시 잇자는 움직임이 나왔다. 1970년 전승자 조사와 증언 채록이 이뤄졌다. 송파다리밟기는 1989년 서울시 시도무형문화재 제3호 지정도 받았다. 지금은 보존회가 판을 잇고 있다.
◇송파산대놀이와 선소리산타령이 붙은 답교
송파다리밟기가 여느 답교와 갈리는 까닭은 연희판 짜임에 있다. 배역 이름부터 송파산대놀이와 가깝다. 상좌무동, 소무무동, 양반, 노장, 왜장녀, 별감, 집사, 나쟁이, 선소리패, 악사들이 차례로 나온다. 마당춤이 붙으면 산대놀이 춤사위가 살아난다. 선소리가 시작되면 산타령패가 판을 끌고 간다. 답교와 연희가 따로 서지 않는다. 한 판 안에서 함께 흐른다.
선소리 비중이 큰 데에도 사연이 있다. 예전 송파·몽촌·풍납·석촌 일대에는 겨울철 엽초를 썰던 움이 많았다. 사람들은 이를 ‘열두칼판’이라 불렀다. 연희자들은 석 달 가까이 움에 모여 담배를 썰며 잡담도 하고 노래도 불렀다. 자주 나온 소리가 선소리산타령이었다. 송파다리밟기 판에 산타령에 능한 이들이 많았던 까닭도 생활 풍경과 이어진다. 전문 잡가 소리꾼이 판에 끼었다는 말도 남아 있다.
장터 경제도 빼놓기 어렵다. 시장이 살아야 판도 선다. 상인들은 장터 흥을 돋우기 위해 각종 연희를 불러 모았다. 송파산대놀이 연희자들도 이런 흐름 속에서 자랐다. 1900년대 초 송파산대놀이로 이름을 알린 정한규, 조영완, 허윤 같은 인물들이 송파다리밟기에도 나섰다는 증언이 있다. 답교가 민속예술 쪽으로 깊어질 수 있었던 바탕도 장터 문화에 있었다.
◇길놀이부터 달집태우기까지, 지금도 잇는 대보름 판
지금 전승 판은 길놀이-마당춤놀이-선소리-다리밟기-고사 및 비나리-달집태우기 순서로 이어진다. 길놀이가 시작되면 기와 영기가 앞선다. 곤나쟁이, 등롱, 악사, 집사, 별감, 상좌무동, 소무무동, 상좌, 소무, 선소리패, 양반, 노장, 왜장녀가 줄지어 나아간다. 풍물 장단이 판을 달구면 마당춤이 붙는다. 선소리패는 앞산타령, 뒷산타령, 자진산타령을 잇는다. 소리가 바뀔 때마다 춤을 맡는 인물도 달라진다. 뒤이어 가교를 세운 마당 둘레서 본격적인 다리밟기가 열린다.
참여자들은 자기 나이 수만큼 다리를 왕복하며 무병과 다리 건강을 빈다. 다리 한가운데서 절을 올리기도 하고, 다리 밑에 고시레를 하기도 한다. 정월 대보름 밤답게 달을 향해 소원을 비는 장면도 붙는다. 끝에는 달집태우기가 이어져 액막이와 소망을 다시 새긴다.
판에 서는 인원은 대략 30명 안팎이다. 기수와 영기, 무동과 무동을 태우는 어른, 소무와 상좌, 왜장녀, 양반, 나쟁이, 집사, 별감, 선소리패, 제금·장구·호적 연주자까지 여러 사람이 한판을 꾸린다. 선소리패만 따로 봐도 10명 안팎이 들어선다. 송파다리밟기는 정월 대보름 민속에만 머물지 않는다. 소리, 춤, 배역놀이가 함께 서는 서울식 종합 연희다. 서울 한복판서 대보름 밤의 흥과 기원을 아직도 몸으로 건널 수 있게 하는 판이 송파다리밟기다.
뉴스컬처 이상완 prizewan2@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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