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료기관 다수가 좁은 병상, 다인실, 미흡한 채광·통풍 등 열악한 시설 구조를 갖추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전문가들은 이런 환경이 정신질환자의 회복을 오히려 가로막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며 시설 기준 가이드라인 정비 등 대책을 촉구했다. 인력난이 심각하다는 현장 증언도 나왔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신의료 저수가 체계를 고쳐야 한다는 지적과 함께였다.
국가인권위원회와 더불어민주당 김윤 의원, 조국혁신당 김선민 의원은 17일 서울 영등포 이룸센터에서 연 토론회를 열고 지난해 5월부터 12월까지 172개 정신의료기관 도면을 분석하고 17개 병원을 현장 방문해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진은 기관 간 편차가 크다면서도 "국내 정신의료기관은 병상당 면적이 낮고, 5·6인실 위주 과밀한 병실 구성, 노후화된 병동 구조, 관찰 사각지대, 위생·감염관리 취약 구조, 사생활 보호와 인권 기준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설비 등 인권과 안전을 동시에 저해하는 물리적·운영상 한계를 보인다"고 총평했다.
조사대상 기관의 상황을 보면, 병상당 면적은 평균 13.08제곱미터로 종합병원 28.63제곱미터의 절반 수준이었다. 권역별로는 비수도권 의료기관의 면적이 수도권보다 좁았다. 또 민간 의료기관의 면적이 국공립 의료기관보다 좁았다.
5, 6인실 비율은 전체 병실의 60% 이상에 달했다. 연구진은 이에 대해 "해외 기준에서 제시하는 '개인 중심의 병실 구성 원칙'과 상이한 경향"이며 사생활 보호에도 악영향을 준다고 지적했다.
병동 구조와 관련해서는 치유환경으로 가장 부적절한, 중복도를 둔 기관이 83.6%라는 점이 지적됐다. 양쪽이 막힌 일자 형태의 좁은 복도를 뜻하는 중복도에서는 환자끼리 서로 마주쳐 질환이 악화될 위험이 높다. 반면 한쪽이 뚫려 외부와 연결된 편복도는 치유에 더 나은 효과를 보인다.
창문이 없는 보호실의 비율도 44.6%에 달했다. 보호실에 창문을 둔 일부 기관이 병실 창문을 쇠창살로 제작하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연구진은 통풍과 채광이 미흡한 공간은 집단감염이나 화재 등 재난에도 취약하다는 점을 함께 지적했다.
시설 관리 미흡으로 인한 정신의료기관 인권침해 사례도 공개됐다. A 병동의 경우 환자가 하루 평균 20마리의 빈대를 잡아야 할 정도로 시설이 오염됐다. B 병동에서는 질환자 간 분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23세 남성 환자가 15세 여성 환자를 화장실에서 성폭행했다. C 병동에서는 안전장치 미흡으로 환자가 4층 창문에서 추락해 사망했다.
열악한 시설 환경은 정신질환자의 증세를 악화시킨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정신질환 당사자인 이정하 정신장애와인권 파도손 대표는 "많은 당사자가 '병보다 병원이 더 무섭다'고 증언한다"며 "당사자에게 열악한 시설 환경은 불편하다는 감각을 넘어 생존의 문제"라고 호소했다.
이 대표는 또 정신질환자의 회복에는 "존중받는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치료진이) 당사자의 이야기"를 듣는 일이 중요한데 "환경이 열악하면 정신질환자는 불안감을 느껴 공격성을 표출하고, 안전이 담보되지 않은 환경에서 치료진은 환자를 (대화) 파트너가 아닌 통제 요소로 인식하게 된다"고 강조했다.
연구진은 정신의료기관 시설 가이드라인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실태조사에 참여한 이승지 인천가톨릭대 융합디자인과 교수는 "진짜 문제는 열악한 시설보다 종사자들이 열악한 시설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는 것"이라며 "표준적인 기준이 없기 때문에 무엇이 부족한지 알 수 없는 구조적 문제를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동일한 질환을 가진 환자들이 경우에 따라 트라우마까지 생길 수 있는 환경에 머무른다는 건 제도적 방치의 결과"라며 "잘 운영하고 있는 기관은 더욱 발전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고, 그렇지 않은 기관은 최소한 보통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시설 뿐 아니라 인력난도 심각했다. 서영수 다움병원장은 "사업 전환에 따라 응급입원을 받기로 했더니 봉직의 5명 중 2명이 사직 의사를 밝히고 입사 예정자 1명이 입사를 포기했다"는 경험을 말했다. 업무 강도가 높은 정신병원에서 응급입원까지 받으면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정신의료기관 종사자들은 인력난을 가중하는 주요 이유로 낮게 책정된 수가를 지목했다. 서 병원장은 "진료과목별 봉직의 비용 대비 수입을 보면 내과계 중 정신건강의학과가 55%로 가장 낮다"며 "인적 자원이 중요한 정신의료 특성을 반영해 '인력 연동형 인센티브(수가가산) 제도 등 개선책을 도입해야 한다"고 했다.
연구 책임자인 김성완 전남대학교병원 교수는 "한국 정신의료기관의 시설 환경 및 운영 체계는 환자의 인권 보호와 안전을 담보해야 하는 국제적 요구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고 했다.
개선 방안으로는 △국가 차원의 중장기 개선 계획 수립 및 제도 정비 △존엄성을 훼손하지 않는 안전 설계와 기능 중심 규제 전환 △중장기적·인권친화적 치료환경 조성 △저수가 구조로 인한 불평등 및 열악한 치료환경 개선 △지속가능한 운영방안 마련 등을 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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