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것] 판화하기① 다시 시작에 이어
[문화매거진=MIA 작가] 작업실을 계약하고 다음의 할 일은 준비물 목록을 체크하는 것이었다. ‘광택제, 하드그라운드, 니들, 판화지, 잉크, 송진 가루’ 등등 생각나는 대로 적었다. 판화는 복잡한 과정만큼 챙길 게 많다. 다 적고 나서도 조금 찜찜하여 작업 프로세스를 복기했다. 그편이 도움이 된다.
동판화 과정을 가장 간단히는, 아래와 같이 요약할 수 있다.
1. 밑 작업(동판 닦기)
2. 하드그라운드 바르기
3. 니들로 그림 그리기(에칭)
4. 부식하기
5. 프린팅하기
에칭 외에 애쿼틴트를 하고 싶다면 다음의 과정이 추가된다.
3-1. 송진 가루를 판에 올려 불에 굽기
3-2. 하드그라운드로 명도 단계 표현하기
작업 과정을 복기하며 재료를 하나씩 챙기다 보니 단계마다의 스트레스도 따라붙는 것 같았다. 그중 가장 까다롭다고 느끼는 건 밑 작업, 바로 판을 닦는 일이다. 동판을 부식시키려면 표면에 있는 불순물을 제거해야 한다. 광택제를 동판에 바르고 헝겊으로 세게 문질러 닦아내면, 검은 때처럼 불순물이 나온다. 모두 닦고 나면 흐릿했던 표면은 마치 거울처럼 변하고 내 얼굴도 그대로 비칠 만큼 빛이 난다.
‘닦는다’는 의미를 정확히 전달하고자 부연하자면, 팔의 힘만으로 가볍게 닦는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일어서서 체중을 실어 닦아야 하고, 밑 작업만으로 금세 땀이 난다.
몇 년 전, 동판화를 배우겠다고 무작정 공방을 찾았을 때 주어진 이 과제 앞에서 다소 당혹스러워했던 기억이 난다. 그저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보겠다는 단순한 바람만 있었을 뿐 일정 정도의 물리력과 체력은 내 계획에 없었다. 처음, 이 과정을 끝냈을 때는 마치 어떤 은은한 신고식을 치른 기분이었다. 게다가 광택제 냄새는 고약하다.
‘하드그라운드’는 광택제만큼 반갑지 않은 냄새를 자랑하는 재료 중 하나인데, 에칭이나 애쿼틴트 과정에서 판이 부식되지 않도록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동판 위에 하드그라운드를 바르고 니들로 긁어낸 뒤 산에 넣으면, 그라운드가 벗겨진 부분만 부식된다. 그 홈에 잉크를 채워 원하는 부분만 인쇄되도록 하는 것이 에칭의 기본 원리다.
판화를 할 때는 방독면을 써야 한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것도 같은데, 나는 현실과 타협하여 마스크를 쓴다. 실제로 보호장비를 제대로 갖춘 작업자는 거의 보지 못했다. 특히 동판화는 세밀한 선 작업이 많아, 집중하다 거의 코를 박다시피 얼굴을 가까이 대는 일도 왕왕 있다. 물론 그때마다 각종 재료가 뿜는 냄새를 가득 들이마실 수밖에 없고. 건강에 어떤 영향이 있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올해 초 작업실 계약을 위해 상담을 받으며 선생님과 나눈 대화가 떠오른다. “지난번에 판화 하실 땐 어떤 과정이 제일 힘드셨어요?”라는 질문에 주저하지 않고 나는, “판 닦는 거요!”라 답했다. 그러고 나서 잠시 뜸을 들이곤, “잉킹(판에 잉크를 바르는 과정)이요”라며 번복했다가, “아니, 음, 의외로 프레스기 돌리는 것도 힘들던데요” 하는 둥 말을 바꿨다. 대화를 마치고 나니 스스로가 조금 우스웠다. 어쩌란 건가. 피할 수 없어 도살장에 끌려온 사람처럼 대답하다니.
그리고 여지없이 작업이 시작되었다. 시작하자마자, 낑낑대며 판을 닦는 날 보며 선생님은 ‘이걸 즐기셔야 해요’라는 조언(?)을 남겼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고전이며 명언일 문장을 나도 모르게 곱씹었다.
모든 예술이 노동 집약적이라는 점에서 보면, 이런 이야기는 하등 특별할 것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이제 나는 이 과정을 기록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예전에는 조금 혼란스러웠다. 판화 작업이 그림을 ‘그리는’ 것인지, ‘만드는’ 것과는 어떻게 다른지, 의도하지 않은 변수로 생긴 결과에 만족하는 태도가 과연 작가의 자세로 맞는지, 여러 질문이 해소되지 않은 채 둥둥 떠다니기만 했다. 이제는 그 질문들을 찬찬히 정리해 볼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럽다.
이 변화는 새 작업실을 이용하던 첫날, 문득 깨달았다. 작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며 나는 왠지 모를 이상한 기분에 사로잡혀 있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당혹감에 가까웠다. 몇 년 전만 해도 처음부터 끝까지 그저 고되기만 한 몇 시간의 작업이 그날은 하나도 힘들지 않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토록 아무렇지 않다는 게 낯설었다. ‘아무렇지 않다’는 자각은 과거의 경험치와 비교해 나온 결과값이므로 신빙성을 의심할 필요가 없었다.
내게 내력이 생긴 것인지, 용기가 더 생긴 것인지, 미련이 없어진 것인지, 혹은 달관하게 된 것인지. 아직은 쉽게 분간이 되지 않는다. 아마도 그 사이 어딘가일 것이다. 다만 분명한 건, 이제는 이 과정을 겪는 태도가 예전과는 달라졌다는 사실이다. 어느새 그렇게 되어 있다. 지금은 이 생소한 단단함을 반갑게 마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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