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2024년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2천500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으로 한국 문화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매주 게재합니다.]
최근 한 매체가 "무제한 AI 시대 끝난다", "'월 20달러 모델' 붕괴 조짐"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제목은 강렬했고, 소재도 익숙했다. 생성형 인공지능 서비스의 비용이 늘고, 여러 기업이 고가 요금제와 광고, 기업 시장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얼핏 보면 그럴듯하다. 그러나 기사에서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은 문제의식의 크기가 아니라 논리의 정확성이다. 기술을 다루는 기사일수록 용어와 숫자가 독자를 압도하기 쉽다. 그래서 더더욱 전제와 결론 사이의 다리를 정확히 놓아야 한다.
이 기사에서 가장 먼저 걸리는 부분은 성격이 다른 사실을 한 문장 안에 뒤섞는 방식이다. 기사에는 무료 이용자가 많아 비용 부담이 커진다는 설명이 나온다. 하지만 그 전제로부터 바로 '월 20달러 유료 모델의 붕괴'라는 결론을 도출하는 것은 무리다. 무료 이용자가 많아서 생기는 비용 문제라면 우선적으로 따라 나오는 대응은 무료 사용량 제한 강화나 무료 이용자의 유료 전환 유도다. 반면 소비자용 유료 정액제가 구조적으로 무너진다고 말하려면 전혀 다른 설명이 필요하다.
어떤 이용자가 어떤 기능을 얼마나 사용해 원가를 초과하는지, 왜 정액제가 더는 유지되기 어려운지, 어떤 과금 방식이 대안이 되는지 같은 중간 논리가 있어야 한다. 실제로 지금 시장에서 벌어지는 일은 '월 20달러 모델의 붕괴'라기보다 그 위에 고가 요금제가 추가되며 시장이 더 세분화되는 흐름에 가깝다. 기존 정액제가 무너졌다기보다 이용자 구간이 더 촘촘하게 나뉘고 있는 셈이다. 이 정도만 짚었어도 '붕괴'라는 단어를 그렇게 쉽게 쓰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이 설명 없이 제목부터 "붕괴"를 말하면 분석이 아니라 비약이 된다.
'제본스의 역설'을 끌어온 대목은 더 문제적이다. 제본스의 역설은 효율이 높아질수록 사용량이 늘어나 결과적으로 총소비가 증가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 개념을 지금의 AI 상황에 적용한다면 우선 도출되는 결론은 서비스 이용이 더 확산되고 시장 규모가 커질 수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이것은 1차적으로 시장 확대의 논리다. 공급자 입장에서는 기회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이지, 그것이 곧바로 소비자용 월정액 인상의 논거가 되지는 않는다. 소비자 요금 인상이나 정액제 축소를 말하려면 헤비 유저의 원가 초과, 컴퓨팅 자원 부족, 가격차별 전략 같은 별도의 설명이 필요하다. 그런데 시장 확대를 설명하는 개념을 끌어와 소비자 부담 증가의 근거처럼 연결하는 것은 경제 개념의 인용이지 논리적 입증이 아니다. 이처럼 개념은 있어 보이지만 정작 중간 단계가 빠져 있는 글은 읽는 순간보다 읽고 난 뒤 더 허전하다.
이런 류의 기사에서 더 큰 문제는 독자에게 실제로 무엇이 남느냐는 점이다. 챗 GPT, 클로드, 제미나이 같은 주요 생성형 AI 서비스는 대부분 해외 기업이 운영한다. 그렇다면 '언젠가 요금이 오를 수도 있다'는 막연한 전망만으로는 국내 독자가 취할 수 있는 행동이 거의 없다. 가격 인상이 확정됐는지, 언제 시행되는지, 어떤 요금제가 영향을 받는지, 무료 정책은 어떻게 바뀌는지, 대체 선택지는 무엇인지가 빠져 있다면 그것은 정보라기보다 분위기다. 독자는 판단 기준을 얻지 못한 채 막연한 불안만 넘겨받을 뿐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기술 기사의 효용 문제가 드러난다. 기술 기사라고 해서 모두 거창한 전망을 다룰 필요는 없다. 오히려 독자에게 필요한 것은 지금 무엇이 확정됐고, 무엇은 아직 가능성에 불과하며, 그 변화가 자신의 선택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분명하게 구분해 주는 일이다. 회사 전체의 손실과 개별 요금제의 경제성은 다르다. 산업 전체의 수요 확대와 특정 상품의 가격 인상도 다르다. 가능성과 확정도 다르다. 이 기본적인 구분이 무너지면 기사는 세상을 설명하는 대신 불안을 과장하게 된다.
해외 빅테크의 변화를 다루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뜻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번역의 방식이다. 해외 기업의 동향을 국내 독자에게 전할 때는 그저 화제성을 옮겨오는 데서 멈춰선 안 된다.
왜 이것이 한국 독자에게 중요한지, 무엇이 확정 사실이고 무엇이 해석인지, 그래서 독자가 무엇을 알게 되었는지를 보여줘야 한다. 그런데 최근의 일부 기술 기사는 이 최소한의 과정을 생략한 채 해외 AI 기업의 움직임을 빠르게 옮겨오고 느슨한 추세를 과장된 결론으로 번역하는 데 그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면 독자가 얻게 되는 것은 정보가 아니라 막연한 분위기이며, 설명이 아니라 피로감이다.
AI가 작성한 글을 읽다 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무리 없이 읽히지만, 다 읽고 나면 정작 무엇을 말했는지 남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틀린 말은 없지만 주장도, 판단도, 독자에게 건네는 의미도 희미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최근의 일부 기술 기사 역시 이와 비슷한 공허함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문장은 그럴듯하게 이어지지만 논지는 서지 않고, 정보는 많은 듯 보이지만 독자에게 남는 것은 막연한 불안뿐이다. 해외 AI 동향을 다루며 흥미를 끌 수는 있겠지만 맥락 없는 번역과 추세의 나열만으로는 결코 의미 있는 전달이 될 수 없다.
기술의 속도는 계속 빨라질 것이다. 그래서 언론의 속도도 빨라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빠른 기사일수록 더 천천히 생각해야 한다. 전제와 결론 사이의 다리를 확인하고, 경제 개념의 쓰임을 점검하고, 독자에게 남는 효용을 물어야 한다. 독자가 필요로 하는 것은 '큰일이 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경고가 아니다. 지금 무엇이 바뀌었고, 무엇은 아직 바뀌지 않았으며, 그래서 독자가 무엇을 판단할 수 있게 되었는지에 대한 정직한 설명이다. 그런 설명이 빠진 기술 기사는 결국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불안을 유통하는 데 그칠 뿐이다.
임기범 인공지능 전문가
▲ 서울과학종합대학원 대학교(aSSIST) 객원교수 ▲ 현 AI경영학회 상임이사 겸 학술분과 위원장 ▲ ㈜컴팩 CIO ▲ 신한 DS 디지털 전략연구소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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