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슈켄트 시내에는 14세기 우즈베키스탄의 국민 영웅 티무르를 기리는 박물관, 티무르 동상 등 ‘티무르’ 관련 시설이 많다. 우즈베크의 영웅 티무르도 소비에트연방 때는 인민의 착취자로 비판의 대상이었으나 1991년 우즈베크 독립 후 국민 영웅으로 존경받고 있다. 다인종·다언어 국가인 우즈베크는 통합의 상징으로 14세기 중앙아시아의 영웅 티무르를 활용하고 있다.
현지 가이드 솔레존은 타슈켄트에서 사마르칸트를 거쳐 부하라까지 1천200㎞의 고속철도를 한국 KTX가 설치했다고 했다. 현재 히바까지 고속철 연결 공사를 하는 중이란다. 기아자동차가 자동차 공장을 우즈베크에 짓고 있다며 도중에 도로변 멀리 있는 공장 부지를 가리켰다.
4세기부터 10세기까지 실크로드 무역의 대표적 상인인 소그드인 거주지를 소그디아나 지역이라 부른다. 사마르칸트, 부하라, 타슈켄트 등 시르다리야강과 아무다리야강 사이의 지역을 말한다. 당나라 시대 사마르칸트에서 중국의 둔황, 장안을 오가며 국제무역에 종사하던 사람들이다. 신라 경주에도 소그드인 흔적이 남아 있다.
신라 원성왕릉의 석상에 코가 크고 눈이 움푹 들어간 석상은 소그드인으로 추정된다. 신라 향가 ‘처용가’에 나오는 사람도 실크로드를 따라 계림(경주)에 장사하러 온 소그드일 가능성이 높다. 계림(경주)은 당나라 시대 실크로드의 맨 동쪽 도시다.
사마르칸트는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페르시아(이란). 서돌궐, 당나라, 몽골 등 강대국의 각축장이었다. 역사적 이유로 페르시아(이란)에 가까운 서쪽 도시 사마르칸트와 부하라는 이란계 종족인 타지크족이 70% 이상이고 언어도 이란어 계통인 타지크어를 쓴다. 동쪽 타슈켄트 등은 투르크 계통인 우즈베크어를 사용한다. 우즈베크의 공용어는 우즈베크어, 타지크어, 러시아어 등 3개 언어다.
솔레존은 우즈베크족인데 타지크어, 우즈베크어, 러시아어, 한국어 등 4개국 언어를 구사한다. 13세기 유라시아 대륙을 통일한 몽골족 지배하에서 3개국 이상 언어를 구사하면 몽골족의 관리가 되기 쉬웠다고 한다. 몽골족을 대신해 세금 징수, 서기 등 행정업무는 문해율이 높은 소그드인, 위구르족 사람들이 많이 했다.
1천400년 전 당나라 현장 스님은 중앙아시아 타슈켄트, 사마르칸트, 부하라를 거쳐 천축(인도)으로 갔다. 현장은 실크로드 상인 소그드인의 특성에 대해 대당서역기에서 부정적인 기록을 남겼다. “그들은 거짓말을 자주하고 남을 잘 속인다. 돈을 심하게 밝히며 이익을 구하는 데에는 아비와 아들이 닮았다.”
당나라의 역사책인 당서(唐書)는 소그드인이 어떻게 아이를 상인으로 기르는지를 기록하고 있다. “아들이 태어나면 입과 손에 꿀을 바른다. 아이가 성장해 입으로는 달콤한 말을 하고 손에 들어온 돈은 꿀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도록 한다는 의미다. 그들은 무역에 능하며 이익을 좋아한다. 나이 스물이 되면 외국으로 떠난다.”
지정학적으로 요충지인 사마르칸트는 알렉산더 대왕 이래 수많은 외세의 침략을 당하고 침략 때마다 도시가 파괴되고 재건되기를 반복한 도시다. ‘불사조의 도시’라고 부른다. 특히 13세기 칭기즈칸 군대의 침략에 저항한 것 때문에 도시 전체가 철저히 파괴됐다. 여자와 어린이를 제외한 주민 약 3만명이 학살됐다는 기록이 있다. 현재 사마르칸트는 14세기 중앙아시아 맹주인 티무르가 재건한 것이다.
그런데 한반도에서 멀고 먼 사마르칸트에 ‘고구려 사신’ 벽화가 있다고 해서 우리 일행은 놀랍고 반가웠다. 고구려 사신 벽화가 발견된 아프로시압 유적은 13세기 몽골군이 파괴한 사마르칸트 옛 도심에서 발견됐다.
소련 시절인 1974년 중장비로 도로 개설 공사를 하다 700여년 지하에 묻혀 있던 건물이 아프로시압 역사박물관이다. 건물 상단 부분의 벽화는 중장비 공사로 무너져 없어지고 하단 부분의 벽화가 네 벽면에 남아 있다. 당시는 소련 시절인데 소련인 학자가 벽화 하단 오른쪽 끝에 있는 두 사람이 고구려 사신이라고 확인했다.
중앙아시아 유서 깊은 도시에 고구려 사신의 벽화가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고구려 사신 복장은 조우관(鳥羽冠·새 깃털로 장식한 모자)을 쓰고 허리에 환도를 차고 있다. 양손을 소매 안쪽에 넣은 정중한 자세인데 궁중 사극(史劇)에 나오는 모습이다. 벽화에 적혀 있는 소그드문자를 해독한 결과 제작 연도는 660년 또는 661년이다. 벽화에는 중국 사신, 인근 국가 사신 등 40여명의 인물이 그려져 있다.
고구려 사신이 먼 이국땅 사마르칸트의 벽화에 나오는 것에 대해 두 가지 학설이 있다. 하나는 고구려는 668년 멸망 전에 수나라, 당나라와 수십년간 전쟁 중이었다. 동맹을 체결하기 위해 서쪽의 중앙아시아 소그드왕에게 도움을 요청하려 방문했던 사신의 그림이다. 다른 학설은 고구려 사신이 나오는 중국의 벽화를 모방해 그렸다는 설이다. 7세기 수나라, 당나라의 침공을 물리친 고구려 명성을 이곳에서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동방의 강대국 고구려 명성을 듣고 벽화에 고구려 사신의 그림을 그렸다는 학설이다. 어느 말이 맞든 고구려는 당시 유럽에 가까운 중앙아시아까지 알려질 정도로 강대한 국가였다.
한국의 동북아역사재단에서 아프로시압 박물관의 영상 기념물을 제작해 박물관 로비에서 방영하고 있고 박물관 정원에도 고구려 사신에 대한 안내 팻말이 설치돼 있다.
중앙아시아의 실크로드 중심 도시 사마르칸트에 1천400년 전 고구려 사신의 벽화를 보면서 고구려인의 웅장한 기상과 기개에 한민족으로서 가슴 뿌듯함을 느낀다. 고대의 실크로드에서 고구려와 신라의 군사, 외교, 문화 등 여러 분야에서 교류했던 흔적이 아시아 대륙의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음을 목격하고 있다. 불행히도 성리학에 심취했던 조선 시대 선조들의 발자취나 교류 흔적은 대륙에 없음을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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