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 특별사법경찰(이하 특사경)이 금융위원회의 사전 절차를 거치지 않고 직접 수사에 착수할 수 있는 인지수사 권한을 갖게 된 데 대해 실효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일고 있다. 처벌 기준이 여전한 상황에서 단순히 절차 간소화로 수사 속도만 빨라진다 해서 금융범죄 척결을 통한 자본시장 질서 확립에 크게 도움이 될 지 의문이라는 이유에서다. 일각에서는 수사 빈도가 늘면서 증권사들의 업무 부담만 가중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증권업계 안팎에서도 그동안 주가조작 사건이 가벼운 처벌에 그쳤던 원인이 수사 속도보다는 혐의 입증 역량의 한계에 기인했다는 점에서 수사 역량이나 처벌 기준 강화가 선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반응이 우세하다.
"솜방망이 처벌 여전한데 속도만 높이면 뭐하나"…금감원 특사경 권한 확대에 여론 '싸늘'
16일 금융당국 등에 따르면 금감원 특사경에 인지수사권을 부여하는 절차가 전날 마무리됐다. 앞으로 특사경은 독자적으로 혐의가 의심되면 즉각적인 강제 수사에 돌입할 수 있게 됐다. 그동안은 주가조작 등 주식시장 불공정 거래가 의심되도 금융위원회 증권선물위원회(증선위)의 사전 의결과 검찰 고발·통보, 사건 배정 등의 과정을 거쳐야 됐기 때문에 실제 수사에 착수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소요됐다. 금감원은 인지수사 권한을 통해 증거 인멸의 가능성을 차단하고 신속하게 범죄 혐의를 입증해 시장 질서를 바로잡겠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이번 금감원 특사경의 인지수사 권한 부여를 두고 여론 안팎에선 부정적 반응이 우세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금 상황에선 수사가 신속하게 이뤄지더라도 자본시장 질서 확립이라는 최종 목표를 달성할 지 미지수라는 이유에서다. 지능화된 자본시장 범죄 특성상 범죄 의도를 법리적으로 입증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전문적인 수사 역량 보강이나 처벌 기준 강화 없이 단순히 수사 속도만 빨라지는 게 효과가 있겠냐는 주장이다.
실제로 주가조작 범죄가 엄벌로 이어지는 사례는 극히 드문 게 현실이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2016부터 2021년까지 3대 주식 불공정거래(미공개 정보 이용·주가조작·부정거래) 혐의로 검찰에 넘겨진 854명 가운데 절반 이상인 53.5%(457명)가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재판에 넘겨져 유죄가 확정되더라도 실형보다는 집행유예가 선고되는 사례가 빈번했고 선고 형량 역시 범죄 수익에 비해 현저히 낮았다.
일례로 주가조작으로 약 7000억원에 달하는 부당 이득을 챙긴 혐의(자본시장법 위반)로 기소된 전직 회계사 출신 이모 씨와 그 일당은 최근 서울남부지법에서 열린 1심 재판에서 징역 4년과 벌금 5억원을 선고받았다. 당초 검찰은 이 씨 일당이 거둔 부당 이득 규모를 고려해 징역 15년에 벌금 2조6586억원이라는 중형을 구형했다. 검찰이 주장한 2817억원의 추징금도 인정되지 않았다. 이 모씨 일당은 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던 중에도 또 다른 상장사 인수를 시도하는 등 대담한 행보를 보인 바 있다.
막대한 범죄 수익에 비해 턱없이 낮은 처벌 수위는 재범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금융위원회가 강병원 전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4년간(2019~2022년) 3대 주식 불공정거래로 제재를 받은 643명 중 23%(149명)가 재범 이상 전력을 보유하고 있다. 4명 중 1명이 이미 주가조작 관련 건으로 적발된 경험이 있는 것이다. 특히 2020년 기준 불공정거래 재범률은 30%에 육박했다. 강도(19.7%)나 폭력(11.7%) 등 일반 강력 범죄의 재범률을 크게 웃도는 수치다.
증권업계 안팎에선 특사경의 인지수사권 확보로 증권사의 업무 부담만 커졌다는 푸념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인지수사권 가동으로 예고 없는 압수수색이 빈번해지면 증권사의 정상적인 영업 활동이 중단될 뿐만 아니라 수년 치의 거래 내역과 통화 녹취록 등 방대한 자료를 선별·제출하기 위한 막대한 인력 투입도 불가피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많다. 빈번한 조사로 인한 직원들의 사기 저하는 물론 영업 활동 위축과 수익성 악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S증권사에 재직 중인 이재헌(33·남·가명) 씨는 "과거에도 수사가 늦어서 처벌을 못 한 것이 아니라 고의성을 입증하지 못해 무죄나 집행유예가 나오는 경우가 허다했다"며 "전문적인 수사 역량 보강 없이 속도에만 치중할 경우 결국 증권사만 죽어나게 된다"고 토로했다. 이어 "수사가 개시되는 순간 해당 증권사는 결과와 상관없이 고객들에게 주가조작 기업으로 낙인찍혀 대외 신뢰도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된다"며 "중요한 것은 수사의 속도가 아니라 강력한 처벌로 이어질 수 있는 고도의 수사 전문성과 강력한 처벌 기준이다"고 주장했다.
H증권사에 재직 중인 안현우 씨(39·남·가명)는 "단순히 수사를 빨리 시작한다고 해서 고도로 지능화된 주가조작 세력을 완전히 뿌리 뽑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며 "범죄를 저질러 얻는 기대 수익이 처벌로 잃는 비용보다 압도적으로 큰 현재의 처벌 기준부터 손보는 게 먼저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수사 인프라만 강화할 것이 아니라 범죄 수익을 끝까지 추적해 환수하는 징벌적 시스템이 병행돼야만 이번 조치가 실질적인 효과를 거둘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도 금감원 특사경 권한 강화보다 선행돼야 할 것은 강력한 사법 시스템 구축이라고 입을 모았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과 교수는 "금감원 특사경에 인지수사권을 부여해 수사 착수 시점을 앞당기는 것이 증거 확보 측면에서는 도움이 될 수 있으나 그것이 곧 유죄 판결이나 엄벌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며 "현재 자본시장 범죄가 끊이지 않는 근본적인 원인은 수사가 느려서가 아니라 수천억원의 이득을 챙겨도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는 불합리한 구조에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범죄 수익을 끝까지 추적해 몰수하는 추징 시스템을 현실화하고 경제 범죄의 심각성을 인지해 형량을 대폭 강화하는 행보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특사경의 인지수사는 증권시장을 위축시키는 '전가의 보도'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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