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박효령 기자】전국 1524개 거주시설에 약 2만7000명의 장애인이 생활 중인 가운데, 오는 2027년 본사업 시행을 앞둔 장애인 탈시설 정책이 기계적 퇴소 방식으로 추진되면서 최중증 발달장애인의 돌봄 부담이 고령 부모에게 떠넘겨지는 이른바 ‘노노(老老)돌봄’ 위기를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미래연구원은 16일 이 같은 내용의 연구보고서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지원 정책의 현황과 과제: 돌봄 선택권 확대를 중심으로’ 발간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장애 인구는 급격한 고령화와 중증화를 겪고 있는 상황이다. 2024년 말 기준 전국 등록장애인은 263만여명으로, 전체 주민등록인구의 5.1%를 기록했다. 이 가운데 65세 이상 비율이 55.3%에 달해 장애인 인구의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전국 1524개 거주시설에 거주 중인 약 2만7000명 가운데 96.5%가 중증 장애인이었으며 지적장애(77.9%)와 뇌병변장애(11.3%)가 전체의 약 90%를 차지했다. 이들의 평균 거주 기간은 24.3년이었으며 82.0%는 상시 약물 복용이 필요한 등 고도의 의료적 지원이 요구되는 상태로 파악됐다.
문제는 이 같은 상황에서 공적 대안 인프라 없이 추진되는 기계적인 시설 퇴소가 추진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최중증 발달장애인의 돌봄 부담을 고령 부모에게 전가하는 ‘노노 돌봄’ 위기를 심화시키고 가족의 생존권꺼지 위협할 수 있다.
실제로 탈시설 정책을 두고 당사자 단체는 ‘전면 탈시설화를 통한 주거 선택권 회복’을 주장하는 반면, 부모 단체는 ‘의료·돌봄 인프라 부재로 인한 생존권 위협’을 우려하고 있다.
보고서는 이 같은 갈등의 구조적 원인으로 과거 탈시설 운동을 이끈 주체(인지적 자기결정권이 있는 지체장애인 중심)와 현재 시설 거주인(의사소통과 사회적응이 어려운 최중증 발달장애인 80% 이상) 간의 특성 불일치를 꼽았다. 이와 함께 전국 거주시설 대다수가 사회복지법인(45.3%)과 개인 운영(13.9%) 등 민간에 쏠려 있어 단일 행정명령만으로 시설 폐쇄를 강제하기 어려운 구조적 한계도 꼬집었다.
탈시설을 선도적으로 이행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주요 복지국가의 정책 경로를 보면 스웨덴은 강력한 입법을 기반으로 특정장애인지원법(LSS)을 도입해 시설 운영자에게 일괄 지급되던 예산을 개인의 권리에 기반한 대인 지원 예산으로 전환했다. 이를 통해 서비스 이용자가 지원 방식과 내용을 직접 선택·통제할 수 있도록 했다.
미국은 연방대법원의 옴스테드 판결 이후 MFP(Money Follows the Person) 프로그램을 통해 공공재정인 메디케이드가 개인의 지역사회 정착 경로에 맞춰 이동하도록 제도를 설계했다. 동시에 독립 생활이 어려운 최중증 지적·발달장애인을 위해서는 집중 요양시설(ICF/IID)을 공적 재정으로 유지하며 급격한 시설 폐쇄로 인한 부작용을 완화하고 있다.
이에 보고서는 성공적인 다원적 접근을 위해 중앙정부는 법제화와 예산 확보를 책임지고 지방정부는 지역 맞춤 서비스를 실행하는 역할 분담 방안을 제안했다.
구체적으로는 △시설 중심의 예산 구조를 수요자 중심으로 개편하기 위한 ‘3단계 재정 전환 로드맵’과 ‘개인예산제’의 결합 △대안적 주거 모델이 기존 시설의 억압적 규율을 답습하는 변형된 시설화로 전락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주거(임대차) 계약과 돌봄 서비스 계약의 엄격한 분리에 대한 법제화 △중앙정부의 일률적인 하향식 퇴소 목표 할당을 폐지하고 17개 광역지자체 단위의 현장 밀착형 세부 실행계획 수립을 법적으로 의무화 등이다.
국회미래연구원 이채정 부연구위원은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지원 정책의 궁극적 목표는 시설의 기계적 폐쇄가 아니라 장애인의 실질적인 삶의 질 향상과 다원적 주거 선택권 보장에 있다”며 “현재 국회에서 논의 중인 ‘장애인권리보장법안’ 등을 동력 삼아 중앙정부의 포괄적 재정 책임과 지자체의 집행 자율성이 결합된 실효성 있는 대안이 속히 마련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장애인 거주시설 내 학대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종합대책을 제시했다. 김민석 국무총리 주재로 전날 열린 제28차 장애인정책조정위원회에서 결정된 이번 대책의 핵심은 사후 대응 중심에서 사전 예방 중심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이는 최근 인천 강화군 색동원 성폭력 사건 등 장애인 거주시설 내 중대 인권침해가 잇따르자 재발 방지를 위한 선제적 대응 필요성이 커진 데 따른 조치다.
이날 ‘2026년 장애인정책 시행계획’도 확정됐다. 올해 장애인정책 예산은 전년과 비교해 약 9% 늘어난 7조원이 투입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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