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최진승 기자] 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한 서오릉(西五陵)은 구리 동구릉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조선 왕실의 능역이다. 다섯 기의 능(명릉, 익릉, 경릉, 창릉, 홍릉)과 두 기의 원(순창원, 수경원), 그리고 한 기의 묘(대빈묘)가 모여 있는 이곳은 조선 왕실 500년의 역사가 새겨진 거대한 박물관이다.
오늘날 왕릉은 과거의 기록에 머물지 않고 현재의 우리에게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콘텐츠의 원천이 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살아있는 역사'라 부를 만하다. 서오릉 역시 왕릉에 얽힌 애틋하면서 기묘한 사연들을 품고 있다. 서오릉의 소나무길을 걸으며 조선왕실의 숨은 단편들을 살펴봤다.
◇ 영조의 빈자리 '홍릉'
서오릉의 능역 가운데 오래 발길을 멈추게 한 곳 중 하나는 홍릉이다. 이곳은 영조(21대)의 첫 번째 왕비인 정성왕후 서씨(1692~1757)의 능이다. 흥미로운 점은 정자각에서 능을 바라봤을 때 봉분의 왼쪽 자리가 텅 비어 있다는 사실이다.
정성왕후는 영조가 대군시절(연잉군) 부인이 됐다. 1721년(경종 1) 왕세제빈이 됐고 영조가 왕위에 오르자 왕비로 책봉됐다. 조선 역대 왕비 중 종전 재임 기간이 약 33년으로 가장 길었으나 영조 사이에 자식이 없었다고 한다. 1757년(영조 33) 66세로 창덕궁에서 세상을 떠났다.
영조는 생전에 정성왕후와 곁에 묻히고 싶어 자신의 자리를 미리 비워 두었다고 한다. 하지만 훗날 영조의 능은 구리 동구릉의 원릉에 조성됐다. 결국 홍릉은 26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주인을 기다리는 빈 자리로 남아 있다. 홍릉은 영조의 못다 이룬 연정을 상상하게 만드는 공간이다.
◇ 대비되는 두 왕비, 익릉의 인경왕후와 대빈묘의 희빈 장씨
숙종(19대)의 여인들이 묻힌 능역들 또한 저마다의 사연을 품고 있다. 숙종의 첫 번째 왕비인 인경왕후의 익릉은 단릉임에도 불구하고 숙종 재위 초기의 강력한 왕권을 반영하듯 석물들이 매우 웅장하고 섬세하다. 20세라는 젊은 나이에 천연두로 세상을 떠난 그녀의 짧은 생애는 화려한 석물들과 대비되어 더욱 애틋함을 자아낸다.
반면 한때 왕비의 자리까지 올랐으나 사약을 받고 생을 마감한 희빈 장씨의 대빈묘는 능이나 원에 비해 초라한 규모로 조성돼 있다. 화려했던 권력의 정점에서 차가운 묘역으로 내려앉은 그녀의 삶은 권력의 무상함과 당시의 치열했던 정쟁을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숙종의 두 번째 왕비가 인현왕후 민씨(1667~1701)다. 숙종은 14세의 나이로 왕위에 올라 환국 정치를 통해 왕권을 강화했다. 대동법의 전국 실시와 화폐(상평통보) 유통, 백두산정계비 건립 등 많은 업적을 남겼다. 인현왕후는 1681년 왕비가 되었다가 1689년 기사환국으로 폐위되었으나 1694년 갑술환국으로 다시 왕비로 복위됐다.
명릉에는 인현왕후 민씨와 숙종이 나란히 묻혀 있는 쌍릉(한 언덕에 왕과 왕후의 능을 나란히 조성한 형태)이 있다. 반대편에도 능이 있는데 이곳은 숙종의 세 번째 왕비 인원왕후 김씨(1687~1757)의 능이다. 인원왕후는 1702년 왕비가 됐고 숙종이 세상을 떠난 후 대비, 대왕대비의 자리에 올랐다.
◇ 위계질서에 따른 능의 배치
보통 왕릉은 정자각에서 바라볼 때 왼쪽(상석)에 왕을, 오른쪽에 왕비릉을 배치하는 것이 관례다. 하지만 숙종과 인현왕후의 쌍릉은 정자각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있고, 세 번째 왕비 인원왕후의 능이 왼쪽에 있다. 이는 인원왕후가 대왕대비의 자리에서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추존 덕종(의경세자, 7대 세조의 아들)과 소혜왕후(인수대비)의 경릉 역시 왕과 왕비의 능 위치가 바뀌어 있다. 덕종이 세자 신분으로 세상을 떠난 반면, 소혜왕후는 아들 성종이 즉위한 후 대왕대비의 신분으로 세상을 떠났다. 신분에 따른 능의 배치는 조선왕실의 엄격한 위계질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능행은 조선시대 국왕이 선대 왕이나 왕비의 능에 제사를 지내거나 참배하기 위해 행차하는 일을 말한다. 서오릉역사관 기록에 따르면 조선시대(1392~1897)부터 대한제국(1897~1910) 마지막 황제인 순종이 사망한 1926년까지 535년 동안 총 939회 능행이 있었다.
능행 중 역대 왕들이 가장 많이 행차한 곳은 태조의 건원릉이 있는 동구릉이었다. 서오릉은 그 다음으로 능행이 많았는데 특히 영조(재위 1724~1776)는 능행을 가장 많이 한 왕으로 전해진다. 아버지 숙종의 명릉이 있는 서오릉에도 총 72회 행차했다고 한다.
서오릉의 산책길을 걸으며 왕의 행차와 능행에 동원된 수천 명의 행렬과 악대 소리를 상상해본다. 그리고 500년 전 왕실의 치열했던 권력 다툼과 시기, 질투, 사랑과 고독의 시간들을 짐작해본다. 이곳은 분명 과거와 현재가 대화하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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