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에 완성한 희곡의 아지트 '인스크립트'[신문경의 독서문화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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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에 완성한 희곡의 아지트 '인스크립트'[신문경의 독서문화기행]

이데일리 2026-04-16 14:01:06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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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하는 독서 문화 속의 독립 서점, 그리고 그곳을 만드는 사람들의 철학을 기록합니다. <편집자 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희곡 전문 서점 ‘인스크립트’의 권주영(왼쪽부터), 박세인 대표(사진=신문경 기자)


[이데일리 신문경 기자] 연극의 중심지 서울 대학로. 혜화역 2번 출구 앞 마로니에 공원에서 방송통신대학교 방향으로 10분 정도 걷다 보면 옅은 황갈색 타일로 덮인 낡은 건물이 나온다. 1층은 해장국 가게다. 그 간판 아래 작은 간판이 하나 더 붙어 있다. 권주영·박세인 공동대표가 직접 붙인 희곡 전문 서점 ‘인스크립트’의 간판이다. 건물 입구로 들어가 3층까지 계단을 오르면 빨간 문이 나온다. 문을 열면 책장 한가운데를 가르는 빨간 커튼이 먼저 시선을 붙잡는다. 공연장에 발을 들인 기분이 든다.

인스크립트의 권주영·박세인 대표는 부부이자 연극인 동료다. 연극과 희곡을 잘 모르는 이들도 그 세계에 발을 들일 수 있는 공간을 목표로 했다. 2023년 연희동 주택가의 작은 공간에서 출발해, 2025년 4월 대학로로 자리를 이전하며 공간이 2.5배 넓어졌다. 도서 카테고리를 확장하고 단체로 앉을 수 있는 큰 테이블도 들였다. 서점 안에서 연극 공연뿐만 아니라 음악회, 영화제도 열며 책 바깥으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지난 3월 30일, 서점 휴무일에 만난 두 사람은 편안한 후드티와 니트 차림으로 나타났다. “옷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죄송해요.” 박세인 대표가 먼저 말을 꺼냈다. 인터뷰 당시 두 사람 모두 공연을 앞두고 한창 연습하는 중이었다. 4월 초순에는 박세인 대표가 두산아트센터에서, 하순에는 권주영 대표가 아르코예술극장에서 각각 무대에 선다.

두 사람은 인터뷰에 연극인이자 기획자의 모습으로 답했다. 의견이 엇갈릴 때는 유쾌하게 웃기도 했다. “세인 대표와 성향이 달라요. 때로 의견이 맞지 않을 때도 있죠. 그래서 인스크립트가 흥미롭다고 생각해요.” 권주영 대표의 말처럼, 두 사람의 차이점은 이 서점을 움직이는 동력이다. 희곡으로 가득한 인스크립트에서 권주영·박세인 대표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연희동에서 대학로로 공간을 옮긴 지 1년여가 됐다. 어떤 계기였나.

△권주영 처음 연희동에 자리를 잡았던 이유는 연극의 중심지 대학로에서 벗어나 희곡과 연극 이야기를 꺼내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멀리서 찾아오는 손님들이 있었지만, 점차 그 거리가 방문을 어렵게 만드는 것은 아닌지 걱정됐다. 동시에 대학로에 희곡 전문 공간이 부족하다는 것도 눈에 들어왔다. 대학로로 이사해 연극과 희곡을 소개한다면 더 많은 사람과 만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박세인 연희동은 공간이 협소해 공연에 한계가 있었다. 넓은 곳에서 더 많은 인원을 수용하고, 공연자들에게도 더 나은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같이 연극 활동을 하는 동료들도 좋아했다. 그들의 생활권 안으로 들어온 셈이니까.(웃음)

-이전과는 방문객의 성격도 달라졌을 것 같다.

△박세인 연희동에서는 골목 상권이 잘 형성되어 있었다. 연극에 관심이 없는 관광객이나 동네 주민들도 호기심에 들르곤 했다. 대학로로 옮긴 뒤에는 연극이나 희곡에 관심이 있는 손님이 주를 이룬다. 건물의 3층에 있다 보니, 인스크립트를 알고 찾아오는 고객이 훨씬 많다.

△권주영 대학로로 공연을 보러 왔다가 들르는 분들도 많다. 희곡이 낯선 독자층을 어떻게 만날 수 있을지는 여전히 고민 중이다.

인스크립트의 내부 전경. 무대의 막처럼 붉은 색으로 포인트를 준 인테리어와 가구들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연극을 사랑하는 이들의 아지트이자, 점심시간에는 주변 직장인들이 잠시 숨을 고르기 위해 찾는 장소가 된다.(사진=신문경 기자)


-‘이달의 작업자’ 프로젝트도 그래서 시작했나.

△박세인 ‘이달의 작업자’는 매달 다른 연출자나 작가의 작품을 소개하는 프로젝트다. 3월에는 전진모 작업자였다. 인스크립트에서 직접 작업하며 메모와 대본을 남겼다. 방문객과 함께 티타임을 가지며 소통하는 시간도 가졌다. 독립 서점들이 오프라인 행사에 집중하는 흐름 속에서, 인스크립트도 방문객과 만나는 방식을 고민하고 있다. 마침 두 사람 모두 공연이나 프로젝트를 직접 기획하고 실행하는 걸 즐긴다.

△권주영 책과 음료를 파는 서점으로 시작했는데 어느새 기획자가 되어 있었다. 시대가 요구하는 책방의 형태가 있는 것 같다. 책을 파는 공간을 넘어, 문화 공간으로서의 서점 말이다. 우리 역시 그 안에서 확장을 고민하고 있다. 쉽지만은 않다. 조용히 사라지는 프로그램도 있다. 그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어떤 기획이 잘 전달되는지 배우고 있다.

-‘낭독서 모임’과 ‘낭독서 토론 모임’도 운영 중이다.

△박세인 희곡은 소리 내어 읽을 때 살아난다. 연극 연기와 독서 모임의 성격을 결합해 함께 소리 내어 읽고 이야기하는 자리를 만들었다. 다른 서점에서도 비슷한 모임이 늘었다. 희곡에 관한 관심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면서도, 우리만의 차별화를 고민하다 보니 모임마다 성격을 달리하게 됐다. 토론 중심, 서사 중심 등 형식을 다양하게 실험 중이다. 4월에는 처음으로 ‘비밀 낭독 클럽’을 연다. 희곡 제목을 공개하지 않고 키워드만으로 참가자를 모집하는 방식이다. 운이 좋게도 한 출판사와 연이 닿았다. 첫 모임은 출간 전 희곡을 함께 읽는 자리가 될 예정이다.

-서점에서 공연, 음악회, 영화제까지 열고 있는데.

△권주영 처음 공간을 설계할 때부터 공연과 영상 등 여러 매체를 수용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두 개의 큰 책장 가운데 커튼을 달고 곳곳에 이동이 쉬운 의자와 책장을 배치한 것도 그 때문이다. 연출가와 관객 모두 극장과는 다른 이 공간을 흥미롭게 바라봐 주었다.

△박세인 인스크립트에서 열리는 공연을 보고 싶다는 방문객들의 의견이 많았다. 처음 이곳에서 공연을 진행했을 때는 배우로서 무대에 서는 것보다 더 떨렸다.(웃음) 얼마 전 ‘몽상음악회’ 대관 공연이 있었다. 오래된 건물 3층에 다른 세계 같은 공간이 펼쳐져 좋았다는 반응이 기억에 남는다.

△권주영 ‘이미 많은 세계가 존재하는 인스크립트에서 우리의 세계도 펼쳐봅니다’라는 홍보 문구가 그 마음을 잘 담았다고 생각한다.

인스크립트 큐레이션 도서들.(사진=신문경 기자)


-대학로로 오면서 책의 장르도 다양해졌다. 책을 들일 때의 기준이 있다면.

△박세인 희곡 중심이라는 원칙은 변함없다. 연희동에서는 공간이 좁아 다른 분야의 책을 들이기 어려웠다. 지금은 동료 연극인들이 읽기 편한 소설과 점심시간에 방문하는 직장인들을 위한 산문 큐레이션에도 신경 쓰고 있다.

△권주영 책을 고를 때 ‘이 이야기를 소개하고 싶은가’를 가장 먼저 생각한다. 서사가 뚜렷하지 않은 책은 제외한다. 요리 레시피가 희곡과 닮았다는 생각에 요리책을 시도한 적 있었는데, 반응은 크지 않았다.(웃음) 최근에는 그래픽 노블을 소개하고 싶다. 절판된 희곡·연극·영화 서적을 중고나 열람 형태로라도 이 공간에서 만날 수 있게 하는 것이 목표 중 하나다.

-방문객이 가장 많이 찾는 책은.

△권주영 신간 희곡이다. 인스크립트에서 희곡을 구매한다는 것 자체가 늘 고맙다. 우리가 추천하는 연출이나 극작 관련 전문 서적을 사는 경우도 많다. 일반적인 베스트셀러는 오히려 잘 안 나간다. 낯선 책을 찾는 손님이 많다.

△박세인 공연 일정에 맞춰 희곡집을 출간하는 경우가 늘면서, 극장에서 구매를 놓친 관객이 인스크립트로 오기도 한다.

△권주영 5, 6년 전만 해도 희곡은 인터넷에서 무료 PDF로 구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지금은 문학으로 읽히는 흐름이 만들어지고 있다. 운이 좋았다는 생각과 함께 뿌듯함도 느낀다.

-수익과 방향성 사이의 균형에 대해서도 고민이 많을 것 같다.

△박세인 인스크립트가 예상보다 주목을 많이 받았지만, 수익은 별개의 문제다. 유행을 따라간 기획은 반응이 적었고, 우리가 좋아하는 것을 소개한 기획이 오히려 호응을 얻었다. 계속 공부해 나가는 중이다. 상업적인 공간을 만들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지금은 예술과 상업의 경계에 서 있는 기분이다.

△권주영 그 중간 지점을 찾는 일이 어렵다. 앞으로도 예술과 상업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해야 하지 않을까.

‘이달의 작업자’ 프로젝트 공간. 3월의 작업자는 신촌극장을 운영하는 전진모 연출가였다.(사진=신문경 기자)


-서점마다 색깔이 다르다. 독립 서점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권주영 지역 친화적인 서점은 주민들의 문화 거점이 된다. 우리 같은 전문 서점은 특정 분야의 책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 되기도 한다. 과거에는 큐레이션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독자가 편하게 들러 책을 접하고, 소통하며 시간을 보내는 장소가 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박세인 두 사람 모두 프로그램 기획을 좋아하지만, 그런 여력이 모든 서점에 있는 건 아니다. 결국 좋은 책을 발굴하고 소개하는 서점 본연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가장 어려운 일이다.

-인스크립트의 지향점은 무엇인가.

△박세인 약 3년간 서점을 운영하며 여러 단계를 거쳤다. 처음에는 희곡을 소개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다음에는 대중에게 닿을 수 있는 방향을 생각했다. 우리가 희곡과 연극을 대표할 수 있는 장소인지 고민하는 과정을 거쳤다. 최근에는 다시 개인적인 관심사나 취향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방향으로 변화했다. 찾아오는 분들도 그쪽을 더 좋아하고, 우리도 더 재미있게 일하고 있다.

△권주영 나는 희곡이 사라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인스크립트에 가능한 한 많은 희곡을 모아두고, 사람들이 계속 희곡을 접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 세인 대표와는 지향점이 다르다. 그 차이가 오히려 인스크립트를 흥미롭게 만든다고 생각한다.(웃음)

권주영 대표의 추천 도서 ‘대단막희곡집’과 박세인 대표가 추천한 ‘키리에’.(사진=신문경 기자)


-마지막으로, 인스크립트를 찾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다면?

△박세인 장영 작가의 ‘키리에’를 추천한다. 한국 현대 희곡이다. 한 건축가가 죽어서 집이 되고, 그곳에 전직 무용수가 머무르는 이야기다. 어둡고 신비로운 분위기 속에서도 대사는 농담조로 흐른다. 공연을 본 후에 소장하고 싶어지는 책이다.

△권주영 배우 박정민이 운영하는 출판사 ‘무제’와 협업한 ‘대단막희곡집’을 추천하고 싶다. 단막 희곡 공모를 받아서 엮은 책으로 인스크립트에서만 만날 수 있다. 이 프로젝트를 하면서 희곡은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분야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인스크립트

희곡을 기반으로 연극·영화·예술 분야를 아우르는 큐레이션 서점. 북카페를 함께 운영하고 있으며, ‘이달의 작업자’ 프로젝트, ‘낭독서 모임’ 등 다양한 프로그램과 대관 공연을 진행한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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