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닝]
여러분. 이런 기억 있으실 겁니다. 어릴 적 학교 끝나고 집에 와서 현관문을 딱 열었는데 매콤하면서도 달큰한 카레 냄새가 확 밀려올 때. 그리고 냄새를 따라 부엌으로 가보면 항상 그 곰솥, 평소에 잘 쓰지도 않는 대왕 냄비에 카레가 한가득 끓고 있었죠. 자 이때 우리는 본능적으로 무슨 생각을 했나요? 그쵸. "아, 엄마 어디 며칠 나가시나 보다"
["엄마 어디 가?" 곰솥 한가득 끓여진 노란색의 추억]
사실 우리 한국 사람들한테 카레는 인도 음식도 일본 음식도 아닙니다. 어릴 적 엄마의 빈자리를 채워주는 음식이기도 했고, 또 군대에서, 학교에서 단골 급식 메뉴로 나오던 추억의 소울푸드라고 할 수 있죠. 자, 근데 한국에서 이 카레 얘기를 하다 보면 빠지지 않고 나오는 이름이 하나 있습니다. 네, 바로 오뚜기인데요. 자 오늘 4인용 책상에서는요. 오뚜기가 어떻게 카레를 한국인의 소울푸드로 만들었는지 그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보겠습니다.
[한국 최초의 현지화 성공 신화 '오뚜기 카레']
카레의 고향이 인도라는 건 다들 잘 아실 텐데요. 간략하게 얘기하자면 인도의 마살라 향신료가 영국을 거쳐 일본으로 건너가게 됩니다. 이때 우리가 아는 걸쭉한 일본식 카레가 만들어졌고요. 이 일본식 카레가 일제강점기 때 한국에 들어오게 되죠. 이후 1969년, 훗날 지금의 오뚜기로 이어지게 되는 '풍림상사'가 '오뚜기 카레'를 내놓는데요. 재밌는 건 지금의 오뚜기라는 회사명이 제대로 자리 잡기 전이었는데도 이미 카레 이름을 오뚜기 카레라는 이름을 썼단 겁니다. 그리고 이 오뚜기 카레의 성공이 지금의 오뚜기를 키워내는 중요한 발판이 되죠. 그런데 당시 한국 사람들한테는 이 카레라는 게 좀 낯선 음식이었어요. 아니 뭐 색깔도 좀 이상하고 냄새도 막 나고 하니까. 그래서 처음에는 반응이 썩 좋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쓰러져도 다시 일어난다는 이 오뚜기 이름처럼 오뚜기 카레가 변화를 시도해요. 전략은 철저한 현지화였습니다. 당시 원조 카레는 좀 되게 순하고 어떻게 보면 좀 밍밍하기도 했는데 이거를 한국인들의 입맛에 맞게 맛부터 완전 바꿔버린 거예요. 그 당시 들여왔던 일본식 카레는 색도 약간 짙은 갈색이고 맛도 좀 달고 기름진 맛이었어요. 근데 우리 한국인들은 좀 매콤하고 칼칼한 음식 좋아하잖아요. 그래서 오뚜기는 강황의 비율을 확 늘려가지고 매콤함과 개운한 맛을 극대화시켜요. 그러니까 우리 한국인들이 느끼기엔 밥이랑도 더 잘 어울리고 특히 김치랑 궁합이 기가 막히고. 게다가 아까 그 곰솥 말했던 것처럼 한 솥 가득 한 번에 끓여놓을 수 있으니까 주부들이 그렇게 좋아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오뚜기 카레의 인기가 점점 높아지면서요. 이제 한국에서 카레라 함은 '오뚜기의 노란 가루'로 이미지가 굳어지게 됩니다.
이 오뚜기 카레가 워낙 오랫동안 큰 사랑을 받다 보니 재밌는 비하인드 스토리도 많은데요. 그 중 하나 재밌는 게 오뚜기 카레가 한국 사회 특유의 가부장적 분위기를 없애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겁니다. 이게 뭔 소리인가 싶죠? 1981년 오뚜기는 끓는 물에 데우기만 하면 되는 '3분 카레'를 출시하는데요. 그러면서 이런 광고를 합니다. "일요일은 오뚜기 카레". 짜장라면 광고에도 "일요일은 내가 짜장라면 요리사" 이런 멘트가 있잖아요. 근데 오뚜기가 그 광고의 원조격인 셈입니다. 광고의 메시지는 분명했어요. 일주일 내내 엄마들이 밥하느라 고생했으니 일요일 하루는 좀 휴식을 주자. 대신에 요리 못하는 우리 아빠들, 3분이면 당신도 할 수 있다, 뭐 이런 의미였던 거죠. 이러니까 장보러 나온 주부들이 장바구니에 카레를 막 담아요. 광고가 제대로 먹힌 거죠. 그렇게 카레는 완전히 한국 가정식의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됩니다.
[웰빙과 취향의 시대에 발맞춘 또 다른 도전]
그런데 오뚜기 카레도 위기가 아예 없었던 건 아니에요. 왜 그 2000년대 들어서면서 웰빙 열풍이 엄청 불었잖아요. 그때 가공식품, 인스턴트 식품을 좀 멀리하는 분위기가 생기면서 카레까지 기피하는 분위기가 생깁니다. 근데 오뚜기 입장에선 좀 억울할 만해요. 뭐 3분 카레는 그렇다 쳐도 카레 분말은 그냥 식재료 중에 하나니까. 근데 이때 오뚜기가 내놓은 카드는 이미지 전환이었습니다. 이전에는 "편하다", "금방 된다" 이러면서 간편식 이미지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건강하다", "강황이 많다" 이러면서 건강식 이미지를 민 겁니다. 그렇게 등장한 제품이 바로 2003년 등장한 '백세카레'인데요. 이름부터 좀 건강해 보이지 않나요? 막 백세까지 살 것 같고. 여기에는 기존 제품보다 강황 함량을 50% 이상 높이고 향신료도 좀 더해가지고 카레를 웰빙 이미지로 다시 묶어내는 데 성공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직도 '카레는 건강한 음식'이라는 이미지가 박혀있죠.
자 오뚜기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서요. 서민 음식이었던 카레에 고급 이미지를 입히려고 하는데요. 그렇게 해서 또 등장한 게 2017년 '3일숙성카레'입니다. 이거는 이름부터 공을 좀 들인 느낌이 나죠? 막 3일 내내 끓인 것 같고. 실제로 쇠고기, 과일, 사골 이런 걸 넣은 소스를 한 3일 숙성시켜서 맛을 좀 더 정교하게 만들어서 카레를 한층 더 근사한 음식으로 만든 제품입니다. 거기에다가 또 이 카레를 밥에만 비비는 게 아니라 뭐 면에도 비비고 좀 다양한 레시피에 시도를 하는데요. 젊은 층의 취향과 라이프 스타일에 맞추려고 한 거죠. 그렇게 해서 요즘 막 나오는 게 카레 크림 볶음면, 오뚜기 카레 팝콘, 카레 군만두 같은 엄청 다양한 제품이 나오고 있습니다.
[클로징-세대를 잇는 노란빛의 위로와 사랑]
자, 이 오뚜기 카레가 50년 넘게 한국인의 소울푸드로 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단순합니다. 원조를 그대로 따라하는데 그치지 않고 한국인들의 식탁에 맞춰 새로운 오리지널을 창조해낸 겁니다. 과거에 카레를 잔뜩 끓여두고 외출하시던 그 어머님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 80년대 꼬마들이요. 어느새 마흔이 넘는 어른이 됐습니다. 그 꼬마는 예전에 자기가 그랬던 것처럼 편식하는 우리 아이를 위해 일요일 아침 노란 카레를 따뜻하게 데워주고 있을 겁니다. 시간이 흐르고 세대가 바뀌어도 그 노란 냄비 속에서 끓고 있는 다정하고 따뜻한 사랑의 맛은 변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늘 저녁에는요. 갓 지은 흰 쌀밥에 모락모락 따뜻한 노란 카레를 듬뿍 얹어 드셔보시는 건 어떨까요? 그 익숙하고 다정한 맛이 여러분의 지친 하루를 따뜻하게 안아주기를 바라면서요. 오늘 4인용 책상, 여기서 마무리하겠습니다. 시청해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오늘도 파이팅.
Copyright ⓒ 르데스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