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오월드를 탈출한 늑대 '늑구'를 향한 관심은 이미 동물 탈출 사건의 범위를 넘어섰다. 포획 실패 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사살하지 말라", "집에 가자", "얼마나 무서울까" 등의 반응이 쏟아진다. 한쪽에서는 포획 역량 부족을 질타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늑구의 무사 귀환을 빈다. 얼핏 상반돼 보이는 이 반응들은 같은 감정의 다른 얼굴이다. 사람들은 늑대 한 마리를 보고 있는 게 아니라, 이름과 사연이 붙은 존재를 보고 있다.
늑구의 포획 작전이 큰 뉴스거리가 된 건 늑대여서만은 아니다. 한 맹수의 이름이 알려진 순간, 이 맹수는 개별적인 존재가 됐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식별 가능한 대상 효과'(Identifiable Victim Effect)는 사람들이 익명의 다수보다 이름과 얼굴, 사연이 붙은 대상에게 더 크게 반응한다는 걸 보여준다. 동물의 경우에도 이름과 얼굴이 붙은 개체에 더 강한 공감이나 옹호 행동이 나타난다는 일부 연구가 있다. 결국 대중이 반응하는 건 야생동물이 아니라, '지금 어디선가 떨고 있을 늑구'다.
네티즌의 댓글 속 늑구는 더이상 늑대가 아니다. "불안하겠다", "굶어죽을까 걱정된다"는 문장 속 늑구는 길 잃은 반려동물에 가깝다. 의인화(Anthropomorphism/Personification)는 동물에게 인간의 감정과 사정을 덧씌우는 경향이다. 의인화는 공감을 키우는 가장 빠른 통로지만, 위험도 있다. 늑대의 야생성과 현실적인 위험은 지워지고, 인간이 상상한 이야기만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에서 늑구를 피해자로 바라보는 시선이 적지 않다. 2살 인공 포육 개체, 사냥 경험이 부족한 상태, 인간이 만든 시설에서 인간의 관리 실패로 바깥에 놓였다는 설정. 그래서 "사살하지 말라"는 여론은 동물애를 넘어선다. 잘못은 인간의 시스템이 했는데, 왜 그 비용을 동물이 치르느냐는 도덕적 분노가 터진다. 늑구를 향한 연민과 포획 당국을 향한 분노가 동시에 커지는 이유다.
사건의 형식도 한몫한다. 늑구는 포위망을 뚫고 달아났고, 4m 높이의 옹벽을 넘었으며, 실시간 위치 추적 사이트까지 등장했다. 이쯤 되면 대중은 사건 소비를 넘어 참여하기 시작한다. 응원, 걱정, 비판, 실시간 위치 추적이 한데 엮이며 늑구는 뉴스 속 동물이 아니라 모두가 지켜보는 탈출극의 주인공이 된다. 연민은 진심이지만, 그 진심은 온라인상에서 쉽게 관전 심리와 결합한다. 늑구는 구조 대상이면서 동시에 콘텐츠가 된다.
늑구를 둘러싼 여론은 인간의 선함만 보여주는 것도, 호들갑만 보여주는 것도 아니다. 이름 붙은 존재에게 더 쉽게 마음을 내어주는 인간의 본능, 동물에게 인간의 감정을 입히는 상상력, 시스템의 실패에 책임을 묻고 싶은 분노, 사건을 서사로 바꿔 소비하는 온라인 문화가 한꺼번에 들어 있다. 늑구를 향한 시선은 늑대를 바라보는 시선이자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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