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이 연루된 강력 사건이 보도될 때마다 어김없이 "촉법소년 연령을 낮춰야 한다"라는 말이 반복된다. 그때마다 청소년은 금세 '법을 악용하는 존재', '지나치게 보호받는 집단'으로 그려진다.
정말 궁금하다. 촉법소년 연령이 1살 낮아진다고 무엇이 달라지는가? 사회는 왜 사건이 일어났는지, 어떤 환경이 한 청소년을 위험과 폭력으로 밀어 넣었는지, 그 이전에 우리가 놓친 지원은 무엇이었는지를 묻기보다, 가장 쉽고 빠른 답처럼 보이는 처벌 강화로 달려간다.
꾸준히 짚어 왔듯, 청소년 범죄를 둘러싼 공포와 혐오, 그리고 '엄벌이면 해결된다'는 믿음은 너무 자주 현실을 가린다.
연령 하향은 해법이 아니라 상징 정치다
무엇보다 먼저 확인해야 할 사실이 있다. 한국에서 청소년이 "처벌을 안 받는다"는 통념은 사실과 거리가 멀다. 현행 제도에서도 만 14세 이상 청소년은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고, 만 10세 이상 14세 미만의 촉법소년 역시 아무 조치 없이 풀려나는 것이 아니다.
보호관찰, 사회봉사, 복지시설 위탁, 병원 위탁, 소년원 송치 같은 보호처분이 가능하고 이뤄지고 있다. 실제로 소년원 송치는 신체의 자유를 제한하는 강력한 제재 조치이며, 청소년이 처벌의 바깥에 있다는 통념은 오해에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촉법소년 연령을 현행 14세 미만에서 13세 미만으로 낮추겠다는 주장은 해법이라기보다 '상징 정치'에 가깝다. 촉법소년 연령 하향은 거창한 개혁이 아니다. 그저 13세 청소년만 새롭게 형사처벌의 문 안으로 밀어 넣는 것이다.
10세, 11세, 12세는 그대로 촉법소년이고, 14세 이상은 이미 형사처벌이 가능하다. 사회 전체의 청소년 범죄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말에 비해 실제 변화의 폭은 매우 좁다. 이 정도의 제한된 변경으로 범죄 예방의 구조가 바뀐다고 주장하려면 분명한 근거가 필요하지만, 그 근거는 제대로 제시되지 않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도 형사미성년자 연령을 13세로 낮추는 것이 소년범죄 감소에 효과적이라는 객관적 근거가 부족하며, 오히려 낙인효과로 사회 복귀를 더 어렵게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오래전부터 문제를 지적받아 온 현재의 소년사법제도에 대한 개선은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는 것이 심각한 문제다. 특히 보호관찰제도의 예산과 인력 부족은 심각하다. 전국적으로 보호관찰관은 200명 남짓이고 관찰관 1인당 관리 인원이 50명이 넘는데 이는 OECD 주요 국가 평균인 32.4명을 크게 웃도는 상태다.
2021년만 해도 우리나라의 보호관찰관들은 평균 118명을 관리하고 있었기 때문에 많이 나아졌다고 말할 수도 있을 테지만 실제로 보호관찰의 효과를 보기엔 역부족이다. 감옥에 어떻게 하면 더 많이 넣을까 고민보다는 제도 개선이 먼저다.
해외 사례가 보여주는 방향
국제 기준 역시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는 2019년 일반논평 제24호에서 형사책임 최저연령을 적절하게 설정해야 하며, 이미 더 높은 기준을 두고 있는 국가는 그 기준을 후퇴시켜서는 안 된다고 권고한 바 있다.
해외 사례를 봐도 방향은 분명하다. 포르투갈은 형사책임연령을 16세로 두고, 16세 미만은 보호와 교육 중심의 별도 제도로 다룬다. 12세 미만은 보호법 체계에서, 12세 이상 16세 미만은 교육적 후견 제도 아래에서 다루며, 목표는 응보가 아니라 법 이해와 지역사회 통합이다.
독일도 범행 당시 14세 이상이어야 형사절차상 피고인이 될 수 있고, 14~18세에는 발달 수준을 고려한 특별소년형법을 적용하며 18~21세에도 경우에 따라 특별소년형법을 확장하여 적용할 수 있다.
일본 역시 형사책임 최저연령을 14세로 두고, 14세 미만이 형벌법령에 저촉되는 행위를 한 경우에도 곧바로 형벌이 아니라 가정법원 심리와 보호·교정 취지의 소년법 체계 안에서 다룬다.
여러 OECD 국가의 사례는 청소년 문제의 해법이 더 빠른 형사처벌이 아니라, 더 정교한 교육·보호·재통합 체계에 있음을 우리에게 확인시켜 준다.
더구나 청소년 구금과 엄벌이 공공안전을 높인다는 믿음은 실증적 근거가 약하다. 미국의 청소년사법 연구는 구금이 범죄를 줄이지 못할 뿐 아니라, 배경을 통제한 연구들에서는 오히려 재체포와 재수감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고 지적해 왔다(리처드 멘델, 2023.1.).
청소년을 감옥에 가두는 구금조치가 크게 줄어든 지역들에서도 청소년 범죄가 함께 증가하지는 않았다. 처벌의 강도가 아니라, 얼마나 이른 시점에 적절한 지원과 대안을 제공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의미다.
범죄자 낙인이 아닌 진짜 안전을 만드는 변화를
그래서 질문은 달라져야 한다. 우리는 왜 13세를 더 빨리 처벌할 것인가를 묻는 대신, 왜 13세의 삶이 그 지경까지 밀려났는가를 묻지 않는가.
반복적인 결석과 퇴학, 가정폭력과 아동학대, 돌봄 공백, 빈곤, 정신건강 위기, 청소년 혐오, 지원의 부재, 지역사회 안전망의 해체는 형사처벌 강화로 해결되지 않는다.회복을 중심에 놓고, 가해 청소년 역시 폭력의 환경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만드는 구조적 변화가 필요하다.
대안은 분명하다. 촉법소년 연령을 1년 낮추는 것은 '센' 정책처럼 보일 수는 있어도 실제로는 그저 해당 연령대 몇 명을 더 일찍 형사사법 체계에 넣는 조치에 가깝다. 그것은 사회적 불안을 달래는 데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폭력을 줄이고 공동체를 안전하게 만드는 데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청소년을 문제의 원인으로만 호명하고, 그 청소년이 살아온 조건과 사회의 실패를 지워버리는 정치다. 필요한 것은 처벌의 문턱을 낮추는 국가가 아니라, 위험에 처한 청소년에게 더 먼저 손을 내밀어 문제의 원인을 해소하는 사회다.
청소년을 더 빨리 범죄자로 만들 것인가, 아니면 더 늦기 전에 시민으로 만나 서로 안전한 관계를 만들어 나갈 것인가. 지금 필요한 선택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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