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한스경제 김창수 기자 | 미국이 무역확장법 232조를 앞세워 철강·알루미늄·구리 수입 규제를 한층 강화했지만 전력망 핵심 장비인 초고압 변압기에는 한시적 관세 완화 카드를 꺼내들었다. 표면적으로는 보호무역 강화 조치이나 실제로는 전력 인프라 병목을 피하기 위한 산업정책적 설계에 가깝다는 해석이다. 이 과정에서 미국 내 생산거점을 확보한 HD현대일렉트릭의 전략적 가치가 부각되고 있어 관심을 끈다.
▲ 美 관세 체계 개편, 초고압 변압기 분야에는 경감 세율 적용
외신과 산업계에 따르면 미국 행정부는 지난 4월 2일 철강·알루미늄·구리 및 파생상품에 대한 232조 관세 체계를 전면 개편하고 6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이번 조치 핵심은 기존 금속 함량 가치 기준 과세를 폐지하고 제품 전체 통관가격에 정률 관세를 부과하는 방식으로 전환한 점이다. 동시에 품목별로 50%, 25%, 15%, 면제 등 4단계 차등 세율 구조를 도입, 관세 체계를 단순화했다.
눈에 띄는 부분은 전력망 장비 등 일부 전략 품목에 대해 2027년 말까지 15% 한시적 경감 세율을 적용한 점이다. 초고압 변압기와 대형 건식 변압기 등은 이른바 ‘부속서 III’에 포함돼 낮은 세율이 적용된다. 반면 배전용 변압기나 전력 케이블 등은 25% 구간에 묶이며 상대적으로 관세 부담이 유지되는 구조다. 동일한 변압기 제품군 내에서도 용량과 용도에 따라 관세 적용이 달라지는 셈이다.
이 같은 차별적 구조는 미국의 정책 의도를 분명히 보여준다는 평가다. 철강과 구리 등 원자재에는 고율 관세를 부과해 자국 생산을 유도한다. 동시에 당장 자체 공급이 어려운 전력망 핵심 장비는 일정 부분 수입을 허용, 산업 전반 병목을 막겠다는 복안이다. 실제로 초고압 변압기는 1만kVA 이상 대형 설비로 제작 난도가 높고 납기 기간도 길어 단기간 내 미국 내 생산 확대가 쉽지 않은 품목으로 꼽힌다.
국내 전력기기업계에 미치는 영향도 제품별로 엇갈릴 전망이다.
증권가에서는 초고압 변압기의 경우 기존 약 25% 수준으로 추정되던 실효 관세 부담이 15%로 낮아지며 가격 경쟁력이 개선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반면 배전용 변압기나 케이블은 기존과 유사한 수준 관세가 유지돼 큰 영향이 없을 것이란 전망이다. 결국 이번 개편 수혜 범위는 전력기기업체 전반이 아닌 초고압 중심 제품 포트폴리오를 가진 업체로 제한된다는 의미다.
이런 가운데 HD현대일렉트릭이 미국의 개편된 관세 정책 수혜를 입을 것으로 주목받는다. 회사는 미국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에 생산법인을 두고 초고압 변압기를 현지 생산하고 있다. 최근에는 제2공장 증설에 돌입, 북미 시장 공략을 강화하고 있다.
신규 공장은 약 2억달러를 투입해 생산능력 50% 확대, 765kV급 초고압 변압기 생산 역량 확보 등을 목표로 한다. 완공 시점도 오는 2027년으로 이번 관세 완화 적용 기간과 맞물린다.
▲ 관세 구조 변화, 공급망 재편 신호…美 생산기지 갖춘 HD현대일렉트릭 ‘활짝’
미국의 관세 구조 변화는 단순한 비용 문제가 아닌 공급망 재편 신호로 해석된다. 개편된 체계 하에서는 미국산 금속을 사용해 미국에서 생산하는 기업들이 관세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다. 이로써 해외에서 완제품을 수출하는 방식보다 현지 생산을 확대하는 것이 유리해졌다. 이에 따라 이미 미국 생산거점을 확보한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 간 격차는 더욱 벌어질 가능성이 커졌다.
글로벌 전력 수요 확대 흐름도 맞물리고 있다.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투자와 전력망 현대화, 재생에너지 확산 등으로 초고압 변압기 수요는 가파르게 증가하는 추세다. 미국 역시 전력 인프라 확충을 국가 전략 과제로 삼고 있어 관련 장비 확보가 시급한 상황이다. 이번 관세 개편에서 전력망 장비가 가장 많은 비중으로 경감 대상에 포함된 점은 이러한 흐름을 반영한다.
단기적으로는 관세 체계 단순화에 따른 행정 부담 감경과 가격 불확실성 해소가 긍정적 요인으로 꼽힌다. 업계에서는 기존에도 관세 상당 부분이 판매가에 전가돼 왔던 만큼 수요 위축보다는 공급 안정성이 더 중요한 변수란 평가다. 아울러 중장기적으로는 미국 내 생산능력 확대 속도가 기업 경쟁력을 좌우할 핵심 요소가 될 전망이다.
미국의 이번 232조 관세 개편은 보호무역 강화라는 큰 틀 속에서도 산업별로 ‘선별적 완화’를 병행한 정책으로 꼽힌다. 특히 초고압 변압기처럼 미국 내 공급이 부족한 품목은 예외를 두면서 글로벌 공급망을 자국 중심으로 재편하려는 의도가 뚜렷하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 현지 생산기지를 확보한 HD현대일렉트릭은 관세 리스크를 덜고 북미 시장 확대를 노려볼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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