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썰 / 임나래 기자] 중동 전쟁 여파로 건설 현장의 공기(공사기간)가 흔들리자, 정부가 사상 처음으로 ‘책임준공’ 규정에 예외를 뒀다. 공사 지연이 곧장 금융 리스크로 번지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구조에 숨통이 트이면서 건설업계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하게 됐다.
비록 적용 대상이 제한적이라 단기 효과는 미미할 수 있으나, 정부가 이른바 ‘불가항력 사유’를 공식 인정한 만큼, 향후 공사비 증액과 공기 조정을 둘러싼 정비사업장 협상 구도에 파장이 예상된다.
◇‘중동 리스크’ 공식 인정…책임준공 예외 문 열렸다
국토교통부와 금융위원회가 중동 전쟁을 건설산업의 불가항력 사유로 확정하며 책임준공 구조에 변화를 줬다. 금융위는 지난 13일 ‘책임준공 확약 PF 대출 관련 업무처리 모범규준’을 근거로, 중동 상황을 기한 연장 사유로 인정했다. 해당 규준 제정 이후 연장 사유를 인정한 첫 사례다.
‘책임준공’은 시공사가 약속한 기간 내 건물을 짓지 못하면 사를 대신해 금융권 대출 원리금을 갚아야 하는 계약이다. 공사 지연이 금융 리스크로 직결되기에 건설사에는 사실상 ‘공사와 금융을 동시에 책임지는 굴레’로 작용해 왔다.
대한건설협회는 지난 8일 김민석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건설·금융업권 합동 간담회’에서 중동 정세 불안에 따른 긴급 금융지원을 건의했다. 최근 호르무즈 해협 봉쇄와 전쟁 장기화로 물류망이 막히며 자재 수급 차질이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건설사, ‘금융 전이’ 급한 불 껐다…경영 부담 완화
공기 준수 여부는 PF 사업의 생사권을 쥐고 있다. 분양시장 위축과 원가 상승으로 사업성이 나빠진 상황에서 시공사가 시행사의 채무까지 떠안으면, 개별 기업을 넘어 산업 전반의 재무 불안으로 번질 수 있다.
이번 조치는 PF 리스크 앞에 선 건설사에 일종의 ‘완충장치’가 될 전망이다. 공사 지연이 곧바로 채무 인수로 이어지는 연결고리를 끊어내면서 건설사들은 일단 한숨을 돌리게 됐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책임준공은 단순한 공기 문제를 넘어선 금융 보증 계약”이라며 “불가항력이 인정되지 않으면 대외 변수로 인한 지연 책임을 고스란히 시공사가 짊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재건축 현장 ‘공사비 줄다리기’ 격화…시공사 목소리 커질 듯
업계는 이번 정부의 유권해석이 재건축·재개발 현장의 공사비 협상에 미칠 영향에 주목하고 있다. 시공사가 대외 변수에 따른 일정 변경의 정당성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다만 실제 혜택을 받는 현장은 한정적일 전망이다. 이번 유권해석은 지난해 5월 제정된 모범규준을 따르기에, 그 이후 체결한 PF 대출 계약에만 적용된다. 현재 공사비 갈등이 한창인 주요 정비사업장은 대부분 규정 제정 이전에 금융 계약을 마친 상태다.
건설업계 다른 관계자는 “최근 PF 시장 위축으로 신규 계약이 적어 직접적인 수혜 사업장은 제한적일 것”이라면서도 “정부가 대외 환경의 심각성을 공식 인정한 만큼, 시공사가 조합에 공사비 증액이나 공기 연장을 요구할 강력한 명분은 갖추게 됐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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