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중앙은행인 싱가포르 통화청(MAS)이 약 3년 반 만에 통화정책을 긴축 기조로 전환했다. 중동 지역 긴장 고조로 인한 에너지 가격 급등이 물가 상승 압력으로 이어질 가능성에 선제 대응하기 위한 조치다.
MAS는 14일 발표를 통해 싱가포르달러의 점진적 절상을 용인하고, 환율 상승 속도를 소폭 높이겠다고 밝혔다. 이는 2022년 10월 이후 처음으로 긴축 방향으로 정책을 조정한 것이다.
싱가포르는 일반적인 기준금리 대신 환율을 중심으로 통화정책을 운영하는 국가다. 주요 교역국 통화 대비 자국 통화의 변동 범위와 상승 속도를 조절하는 방식이다. 이번 조치에서는 환율 밴드의 기울기(슬로프)를 상향 조정했으며, 변동 폭과 중앙값은 기존 수준을 유지했다.
이번 정책 변화는 시장 예상과도 대체로 일치했다. 사전 조사에 참여한 경제 전문가 13명 중 11명이 긴축 전환을 예상했으며, 나머지 2명은 동결을 전망했다.
MAS의 긴축 전환 배경에는 중동 지역 분쟁에 따른 에너지 가격 상승이 있다. 특히 호르무즈 해협 운송 차질로 원유 공급이 불안정해지면서 수입 물가 전반에 상승 압력이 가해지고 있다. MAS는 이러한 비용 상승이 글로벌 공급망을 통해 확산되며 전반적인 물가 상승으로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이에 따라 MAS는 2026년 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기존 1~2%에서 1.5~2.5%로 상향 조정했다. 근원 인플레이션 전망 역시 1.0~2.0%에서 1.5~2.5%로 높였다. 이는 지난해 10월과 올해 1월에 이어 연속적인 상향 조정이다.
다만 일부에서는 아직 인플레이션이 심각한 수준은 아니라는 평가도 나온다. 영국의 경제 분석기관 옥스퍼드 이코노믹스는 식품과 임금 상승 압력이 지속될 경우 2차 인플레이션 효과가 나타날 수 있으며, 추가 긴축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한편 싱가포르 경제는 성장 둔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2026년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전년 동기 대비 4.6% 증가했으나, 직전 분기(5.7%)와 시장 예상치(5.9%)를 모두 하회했다. 전기 대비로는 0.3% 감소하며 역성장을 기록했다.
싱가포르 정부는 에너지 가격 상승에 따른 경제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약 10억 싱가포르달러 규모의 지원 패키지도 발표했다. 해당 패키지에는 현금 지원과 연료 보조금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에서는 향후 물가 흐름과 글로벌 에너지 상황에 따라 MAS의 추가 정책 조정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창우 기자 cwlee@nv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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