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인프라 확대에 따른 수요 폭증으로 메모리 가격이 급등하면서 노트북, 태블릿 등 IT 기기 가격까지 동반 상승하고 있다. 특히 중동전쟁에 따른 물류, 에너지, 달러 강세 현상까지 맞물리면서 국내 소비자들의 가격 체감 정도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에 이르고 있다. 해외 역시 상황은 다르지 않다. 메모리 가격 상승으로 인한 제품 가격 인상이 나타나면서 수익이 낮은 저가형 모델 생산이 후순위로 밀려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전 세계 소비자들의 선택권 보장 차원에서라도 AI 인프라에 치중된 메모리 공급을 일정 부분 일반 소비재로 분산시켜야 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천정 모르고 치솟는 메모리 가격…노트북, 태블릿PC 등 가격 폭등에 등골 휘는 부모들
자녀의 신학기 노트북 구매를 계획했던 학부모들의 한숨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조금만 지나면 내려갈 것으로 기대했던 가격이 오히려 하루가 다르게 상승하고 있는 탓이다. 일례로 삼성전자는 인공지능(AI) PC 신제품인 '갤럭시북6' 시리즈의 가격을 출시 일주일 만에 인상했다. 모델에 따라 적게는 17만원에서 최대 90만원까지 올렸다. 갤럭시탭 시리즈 또한 15만700원, 팬에디션(FE)은 8만300원 각각 올렸다. LG전자 역시 자사 노트북 제품 '그램 프로'의 가격을 1월 50만원 인상한 데 이어 2월에도 20~40만원 재차 올렸다.
일반 소비자들이 사용하는 IT기기 가격 폭등의 원인은 주요 부품 중 하나인 메모리 가격 폭등 때문이다. 현재 메모리 시장은 '멤플레이션(Memflation, 메모리 인플레이션)'이라 불릴 정도로 급격한 상승을 보이고 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제조사들이 AI 인프라 확충에 투입되는 고대역폭메모리(HBM) 생산에 집중하기 위해 일반 노트북용(LPDDR, 소비자용 SSD) 생산을 줄이면서 '공급 절벽'이 생겨났다는 분석이다. 그 결과, 현재 메모리 단가는 전년 대비 약 70% 가량 치솟았고 노트북의 원가 또한 껑충 뛰었다.
현재 노트북 제품의 평균 가격은 코로나 팬데믹19 이후 재고 과잉으로 메모리 가격이 바닥을 치던 2024년에 비해 두 배 가까이 올랐다. IT분야 시장조사·컨설팅 기업 가트너(Gartner)에 따르면 올해 DRAM 시세는 전년 대비 125%, NAND는 230% 이상 폭등할 것으로 예측된다. 작년 노트북 원가에서 메모리가 차지하는 비중이 16%였다면, 올해는 25%를 상회해 부품 값이 본체 가격을 추월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는 상황이다.
스마트폰 역시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메모리 용량 차이뿐 아니라 신제품의 핵심 경쟁력 중 하나인 AI 기술 발전이 가격 상승을 견인하고 있다. 실제로 삼성 갤럭시S 스마트폰 출고가는 지난해 115만원에서 올해 134만원으로 상승했다. 애플 또한 AI 기능 확대에 따라 지난해보다 20만원 높은 가격에 아이폰을 출고하고 있다.
박리다매 중·저가 대신 마진 큰 고가 제품만 만드는 해외 기업들, 소비자 선택권 침해 우려
해외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나라와 같은 이유로 노트북과 스마트폰, 게임기 등 IT기기 가격 인상 압력이 커지고 있다. 특히 해외의 경우 노트북, PC, 게임기 등 특정 제품을 주력으로 파는 기업이 많다 보니 한국에서 보기 드문 현상도 생겨나고 있다. 제조사들이 가격 상승으로 수요가 줄어든 것을 의식해 중저가 제품 보단 고가 제품 위주로만 생산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저가형 라인업의 멸종은 소비자들의 선택권을 가로막는 점에서 상당히 심각한 문제로 지적됐다.
가트너의 최근 보고서(PC Market Outlook 2024-2025)에 따르면 글로벌 PC 제조사인 델(Dell)과 HP 등은 부품 가격 상승에 대응해 수익성이 낮은 저가형 엔트리 모델 생산 비중을 줄이고 마진이 높은 프리미엄 'AI PC' 라인업 위주로 포트폴리오를 재편하고 있다. 500달러 미만의 저가형 노트북 라인업을 대폭 축소한 것이다. 샤오미, 오포(OPPO) 등 가성비를 앞세웠던 중국 스마트폰 브랜드들 역시 최근 플래그십 모델 가격을 전작 대비 10~15% 인상했다. 모델의 이름은 그대로지만 중저가이던 가격이 크게 올라 '초저가형 스마트폰' 시장이 사실상 사라졌다는 평가다.
일반 게이머용 보급형PC 부품도 직격탄을 맞았다. 엔비디아(NVIDIA)가 일반 소비자용 기기보다 수배 이상 수익을 올리는 AI 가속기(H100, B200 등) 생산에 파운드리 용량을 우선 배정하면서 중·저가형 그래픽카드 공급 부족과 가격 상승이 고착화됐기 때문이다. '가성비 PC 구매'가 사실상 불가능해지면서 저렴한 가격에 고성능을 즐기려던 소비자들이 구매를 포기하는 '테크 양극화' 또한 심화되고 있다. 카운터포인트 리서치는 "스마트폰 제조사들이 부품 수급 우선순위에서 밀린 저가형 모델 대신 고단가 제품 판매에 집중하면서 글로벌 스마트폰 평균 판매 가격(ASP)이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홍주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디지털 기기는 이제 필수재가 됐기 때문에 디지털 접근권 차원에서 지나친 양극화나 소외가 발생하지 않게 관리가 돼야 한다"며 "기업이 저가 모델 공급을 관리할 수 있다면 자발적으로 하는 게 바람직하지만 그것이 어렵다면 정부가 바우처나 보조금 등으로 저소득층, 특히 학생들의 이용에 지장이 없도록 정책적인 고려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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