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밋빛 발표’에 멍든 개미들···韓 제약·바이오 ‘깜깜이 공시’, 시장 신뢰 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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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밋빛 발표’에 멍든 개미들···韓 제약·바이오 ‘깜깜이 공시’, 시장 신뢰 흔들

이뉴스투데이 2026-04-14 15:00: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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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식 공시는 뒤로 미루고 보도자료로 ‘기대’를 먼저 키운 뒤 주가가 반응하는 구조가 반복되면서 제약·바이오 시장의 신뢰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식 공시는 뒤로 미루고 보도자료로 ‘기대’를 먼저 키운 뒤 주가가 반응하는 구조가 반복되면서 제약·바이오 시장의 신뢰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뉴스투데이 김진영 기자] 정식 공시는 뒤로 미루고 보도자료로 ‘기대’를 먼저 키운 뒤 주가가 반응하는 구조가 반복되면서 제약·바이오 시장의 신뢰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최근 삼천당제약 사태는 이 같은 관행이 개인투자자 손실로 직결될 수 있다는 점을 드러낸 사례로, 업계 전반에 구조적 경고 신호를 던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에 따르면 삼천당제약 사태는 이 같은 구조를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지난 2월 삼천당제약은 공시 대신 보도자료를 통해 유럽 제약사와의 5조3000억원 규모 판매 계약을 발표하며 시장 기대를 끌어올렸다. 이어 3월 30일 미국 업체와의 라이선스 계약을 추가 공개했지만, 계약 상대 비공개와 이례적인 수익 배분 조건이 논란을 키웠다.

한국거래소는 3월 31일 공정공시 미이행을 이유로 불성실공시법인 지정을 예고했다. 같은 시기 대주주 지분 매각 계획까지 겹치며 투자심리는 급격히 식었다. 주가는 118만원대에서 40만원대로 열흘 만에 반 토막이 났고, 시가총액도 27조8000억원에서 15조원 넘게 증발했다.

계약 규모를 둘러싼 정보 괴리가 시장 혼란을 키웠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총 5조3000억원으로 제시된 계약은 실제 공시상 계약금이 500억원 수준에 그친 것으로 알려졌고, 향후 10년 매출을 기준으로 산정된 수치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숫자는 컸지만, 실체는 불명확했던 셈이다. 업계에선 경영상 비밀 유지 조항을 앞세워 계약 내용을 제한적으로 공개하면서도 기대감을 강조하는 방식이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 같은 사례는 개별 기업에 그치지 않는다. 바이오 기업들이 규제가 상대적으로 느슨한 보도자료를 통해 성과를 먼저 부각하고, 정식 공시는 뒤따르는 관행이 시장 전반에 퍼져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 삼천당제약은 자사에 비판적인 의견을 제시한 증권사와 연구원을 상대로 법적 대응에 나서며 논란을 증식시켰다.

이런 대응은 기업 리스크를 짚는 분석 활동 자체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를 낳고 있다. 객관적인 리서치 보고서 발간이 줄어들 경우 투자자 정보 접근성이 제한되고, 결과적으로 시장 내 정보 비대칭이 더 심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흐름이 반복될 경우 특정 기업 문제가 아닌 섹터 전반의 신뢰 훼손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실제 일부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K바이오 전체’에 대해 신뢰 리스크를 반영, 낮은 밸류에이션을 적용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는 분위기다.

바이오 기업에 대한 투자 판단 기준 자체가 보수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과거에는 기술수출 기대감이나 임상 진척 가능성만으로도 주가가 크게 반응했지만, 최근에는 계약 구조의 실질성과 공시 신뢰도를 함께 따지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단일 기업 이슈로 보지 않고 공시 신뢰도가 낮은 섹터 전반에 할인율을 적용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고 말했다.

지배구조 측면에서도 유사한 신호가 포착된다. 국민연금은 올해 제약·바이오 기업 18곳 주총에서 190개 안건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하며 이사 보수 한도, 자사주 처분, 정관 변경 등 경영진 재량 확대 가능성이 있는 사안에 집중적으로 반대표를 던졌다. 소수주주 권리 약화나 주주가치 훼손 우려가 있는 안건에 제동을 건 것이다.

그러나 견제 효과는 제한적이었다. 이사 수 축소나 전자주총 배제 등 주주 참여를 제한할 수 있는 안건에 대해 국민연금이 반대했음에도 대부분 원안대로 통과됐다. 국민연금 지분율이 10% 안팎에 그치면서 실질적인 영향력이 제한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보 공개와 지배구조 양 측면에서 견제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구조가 드러난 셈이다.

근본적으로는 공시 체계 자체가 투자자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는 문제의식도 커지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바이오 기업 공시는 신약 개발, 임상시험, 기술이전 계약 등 핵심 정보가 전문 용어와 복잡한 구조로 제시되는 경우가 많아 일반 투자자가 이를 충분히 해석하기 어렵다. 현재 실적보다 미래 연구개발 성과에 따라 기업 가치가 결정되는 산업 특성상 공시 내용 자체가 불확실성을 내포할 수밖에 없고, 기대와 실제 결과 간 괴리가 반복될 가능성도 크다.

금융당국은 제도 개선에 속도를 내고 있다. 금감원은 지난 12일 ‘제약·바이오 공시 종합개선 TF’를 출범시키고 공시 구조와 표현 방식을 투자자 친화적으로 재설계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상장 단계에서는 기업가치 산정의 전제와 가정을 보다 명확히 드러내고, 상장 이후에는 파이프라인 진행 상황과 리스크를 체계적으로 전달하도록 유도하겠다는 구상이다. 보도자료와 공시 간 괴리를 줄이는 방안도 함께 논의된다.

다만 공시 강화가 만능 해법은 아니라는 시각도 적지 않다. 과도한 정보 공개가 오히려 기업 경쟁력을 훼손하거나 공시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업계에서는 임상 과정과 기술수출 전략이 외부에 과도하게 노출될 경우 후속 협상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 실제 일부 기업은 계약 조건이 공개되면서 이후 협상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였다는 사례도 거론된다.

공시 문제는 단순한 정보 공개 수준을 넘어 시장 전반의 신뢰와 직결된 사안으로 번지고 있다. 투자자 보호를 위한 정보 투명성 확보와 기업의 영업 비밀 및 전략 보호 사이에서 합리적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요구가 확대. 단순히 공시 항목을 늘리는 방식이 아닌, 정보의 신뢰성과 해석 가능성을 높이면서도 기업의 현실을 반영한 제도 재설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논란을 단순한 개별 기업 문제가 아닌 시장 구조의 신뢰 문제로 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보도자료를 통해 기대를 먼저 형성하고 공시는 뒤따르는 방식이 반복되면서 투자 판단의 기준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정보 비대칭이 해소되지 않으면 개별 종목이 아니라 섹터 전체에 할인 요인이 적용되는 구조로 갈 수밖에 없다”며 “공시를 무조건 강화하는 방식보다는 정보의 신뢰성과 일관성을 높이면서도 기업의 현실을 반영할 수 있는 균형 잡힌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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