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한스경제 전시현 기자 | 가상자산 시장의 무게중심이 시세차익을 노린 투기에서 실제 금융 인프라로 옮겨가고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한때 고위험 자산으로만 여겨졌던 이더리움이 이제는 결제와 자산 거래, 계약 실행이 함께 이뤄지는 디지털 금융의 기반망으로 재평가받고 있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한양대 학생들이 참여한 HYFE 38기 리서치팀은 “이더리움을 단순한 가상자산으로만 볼 단계는 지났다”고 분석했다.
▲ 투기판서 결제망으로 진화
블록체인 시장을 떠받치는 축도 빠르게 바뀌고 있다. 달러 같은 법정화폐 가치에 연동된 스테이블코인이 확산하고 미국 국채와 금, 부동산을 잘게 쪼개 거래하는 실물자산 토큰화(RWA) 시장이 커지면서 블록체인이 실물 금융과 직접 맞닿기 시작했다는 평가다. 여기에 인공지능(AI) 기반 자동 결제까지 더해지며 디지털 자산 시장은 투기판이라는 과거 이미지를 벗고 실제 거래와 정산이 이뤄지는 금융 인프라로 옮겨가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이 같은 변화는 수치로도 드러난다. 지난 2024년 스테이블코인의 연간 이체 규모는 18조3500억달러로 비자와 마스터카드의 결제 규모를 웃돈 것으로 집계됐다. 한때 코인 시장 안에서만 통하던 교환 수단이 이제는 기업 간 송금과 국제 결제의 대안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는 의미다.
토큰화 자산 시장도 빠르게 팽창하고 있다. 리서치팀은 2026년 초 토큰화 자산 총가치가 210억달러를 넘긴 점을 들어 블록체인 기반 금융이 실험 단계를 지나 확산 국면에 들어섰다고 봤다.
이 과정에서 가장 주목받는 네트워크로 꼽히는 곳이 이더리움이다. 스테이블코인 결제와 전통 자산의 토큰화, 각종 스마트계약이 가장 촘촘하게 집적된 네트워크라는 평가가 나온다. 리서치팀은 8일 기준 이더리움이 전체 토큰화 RWA 시장의 55.97%, 스테이블코인 결제량의 55.91%를 처리했다고 분석했다. 돈과 자산, 계약이 각각 흩어져 움직이는 게 아니라 하나의 네트워크 안에서 함께 돌아가는 구조가 이미 자리 잡았다는 얘기다.
▲ 월가도 이더리움으로
전통 금융권의 움직임도 이런 흐름에 힘을 싣고 있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은 2024년 3월 이더리움 메인넷 위에 토큰화한 미 국채 머니마켓펀드 ‘BUIDL’을 출시했다. 대규모 자산을 다루는 기관일수록 거래가 어디에서 이뤄지든 최종 보관과 정산만큼은 가장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네트워크에서 처리하려는 성향이 강하다. 업계에서 이더리움을 디지털 자산의 ‘최종 장부’로 부르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피델리티가 이더리움을 개별 기업이 아니라 하나의 경제권처럼 해석한 점도 같은 맥락이다. 네트워크 이용자가 내는 가스비는 소비로, 이더리움을 맡기고 보상을 받는 스테이킹은 투자로 볼 수 있다는 시각이다.
이더리움이 더 이상 단순한 기술 플랫폼이 아니라 자금과 자산, 계약이 최종적으로 모이고 정산되는 금융 시스템의 한 축으로 읽히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시장 안팎에서는 이제 이더리움의 가치를 예전처럼 거래 수수료 수입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말이 나온다.
▲ 시세보다 신뢰가 갈랐다
시장이 주목하는 대목은 스테이킹 구조다. 보유한 이더리움을 네트워크에 맡겨 거래 검증과 보안 유지에 참여하고 그 대가로 보상을 받는 방식이다. 예금이나 채권처럼 특정 금융회사나 기업의 지급 능력에 기대는 수익과는 결이 다르다. 프로토콜 규칙에 따라 보상이 주어진다는 점에서 시장 일각에선 장기적으로 디지털 금융 체계의 새로운 기준 수익률 역할을 맡을 가능성도 거론한다.
유통 물량이 줄어드는 점도 강점으로 꼽힌다. 스테이킹 물량이 늘수록 시장에 실제로 풀리는 물량은 감소하고 거래 수수료 일부가 소각되는 구조까지 더해져 자산 희소성이 커질 수 있어서다. 리서치팀은 지난 8일 기준 전체 이더리움 공급량의 32.09%가량이 스테이킹돼 있다고 분석했다. 네트워크 이용이 늘수록 자산 가치의 기반도 함께 단단해질 수 있다는 해석이 뒤따른다.
업계 전문가들은 “덴쿤 업그레이드 이후 수수료 구조가 달라지면서 과거처럼 네트워크 수익만으로 이더리움의 가치를 설명하기는 어려워졌다”며 “규제 변화의 속도 역시 여전히 불확실성이 큰 변수”라고 했다. 그러면서 “가상자산 산업의 경쟁 구도는 이미 달라지고 있다”며 “이제 시장의 승부처는 어떤 자산이 더 많이 오르느냐가 아니라 어느 네트워크 위에 자본과 자산, 제도권의 신뢰가 더 많이 쌓이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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