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룰 수 있는 모든 기록을 달성하고 싶다."
안세영(24·삼성생명)이 막 전성기를 열었던 2023년 7월, 본지와 인터뷰에서 밝힌 포부였다. 배드민턴에 공식적으로 그랜드슬램이라는 개념이 있었던 건 아니었지만, 아시안게임(AG)·세계선수권대회·올림픽 등 주요 대회를 석권하겠다는 의지를 감추지 않았다.
지난 12일 안세영은 자신의 목표를 이뤘다. 중국 닝보 올림픽 스포츠 센터에서 열린 2026 아시아선수권대회 여자단식 결승전 세계 2위 왕즈이(중국)와의 대결에서 게임 스코어 2-1(21-12, 17-21, 21-18)로 승리하며 시니어 무대 데뷔 뒤 처음으로 이 대회 챔피언에 올랐다.
이미 안세영은 2022 항저우 AG, 2023 세계선수권대회, 2024 파리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했다. 가장 권위 있는 세계배드민턴연맹(BWF) 주최 대회인 전영 오픈과 월드 투어 파이널스에서도 각각 2번 정상을 차지했다. 이날(12일) 유독 인연이 없었던 아시아선수권까지 제패하며 이른바 그랜드슬램을 이뤘다. 배드민턴 전문 매체 '배드민턴 랭크스'는 앞서 언급한 6개 대회를 모두 우승한 여자단식 선수는 안세영이 역대 최초라고 발표했다. 지난 시즌(2025) 여자단식 BWF 투어 역대 최다승(11)을 경신했던 그가 '여제'라는 수식어에 걸맞은 또 하나의 대기록을 새긴 것.
'이인자' 왕즈이의 추격 기세를 꺾은 것도 우승 만큼 값진 성과였다. 왕즈이를 상대로 10연승을 거뒀던 안세영은 바로 전 승부였던 3월 전영 오픈 결승전에서 0-2로 완패한 바 있다. 지난 시즌부터 한층 공격적인 경기 운영을 펼쳐 효과를 봤는데, 이 승부에서는 스매싱 정확도가 흔들렸다. 이날 왕즈이는 마치 안세영을 보는 것처럼 집요한 수비력을 보여줬다.
안세영이 왕즈이에게 2연패를 당한 건 무릎 부상 후유증이 있었던 2024년 한 번뿐이었다. 안세영이 '일인자' 자리를 공고히 하기 위해선 이번 아시아선수권대회 승리가 꼭 필요했다.
안세영은 전영 오픈과 달리 집요하게 클리어(Clear) 헤어핀(Hairpin)를 구사해 왕즈이를 '체력전'으로 끌어들였다. 스매시(Smash)를 시도할 타이밍에서도 왕즈이를 좌우 또는 네트 앞으로 움직이게 만들었다. 구사율을 줄인 스매시의 효과성도 오히려 높아졌다.
왕즈이의 얼굴은 2게임 중반부터 벌겋게 상기됐다. 11-13에서 펼쳐진 메가 랠리에서 안세영의 범실이 나왔지만, 힘이 빠져 코트에 쓰러진 건 오히려 왕즈이였다. 전영 오픈에서는 안세영과의 체력전에서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줬던 왕즈이였지만, 이날은 비교적 빠른 시점에 힘든 기색을 드러냈다.
경기 뒤 안세영은 "지치는 경기를 이기고 우승해 정말 기쁘다"라고 했다. 결승전 경기 시간은 역대 아시아선수권 단식 최장인 1시간 20분이었다. 표면상 접전, 혈전, 박빙이라는 표현을 쓸만한 양상이었지만, 실상은 안세영이 '강철' 체력과 정교한 기술을 앞세워 자신의 구상대로 풀어낸 경기였다. 왕즈이는 '공안증(안세영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되살아날 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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