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분투칼럼] 중동발 충격: 희망봉 너머의 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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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분투칼럼] 중동발 충격: 희망봉 너머의 불안

연합뉴스 2026-04-14 07:00:03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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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두영 고려대 아시아·아프리카개발협력센터 연구위원

최두영 박사 최두영 박사

[최두영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편집자 주 = 연합뉴스 글로벌문화교류단이 국내 주요대학 아프리카 연구기관 등과 손잡고 '우분투 칼럼'을 게재합니다. 우분투 칼럼에는 인류 고향이자 '기회의 땅'인 아프리카를 오랜 기간 연구해온 여러 교수와 전문가가 참여합니다. 아프리카를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분석하는 우분투 칼럼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기대합니다. 우분투는 '당신이 있어 내가 있다'는 뜻의 아프리카 반투어로, 공동체 정신과 인간애를 나타냅니다.]

호르무즈 해협 통과하는 유조선 호르무즈 해협 통과하는 유조선

[로이터=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전쟁은 멀리서 시작됐지만, 그 비용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떨어지고 있다. 이란을 둘러싼 군사적 충돌의 확전은 홍해와 호르무즈를 거쳐 아프리카의 항만과 주유소, 비료 창고와 식탁을 흔들었다. 그 여파는 희망봉 너머에서 한국의 공급망과 대외협력 구상에도 그림자를 드리운다. 이미 물가와 재정이 빠듯한 아프리카 국가들에 이번 충격은 단순한 유가 상승이 아니다. 생활비와 식량안보, 재정 안정성을 동시에 압박하는 복합 위기다. 결국 지금 우리가 봐야 할 것은 중동의 전쟁 그 자체만이 아니다. 그 충격이 왜 아프리카에서 더 크게 증폭되는지, 그리고 그 불안이 왜 우리와도 무관하지 않은지를 함께 따져보는 일이다.

희망봉 희망봉

[하나투어 제공]

◇ 중동발 충격, 아프리카 생활비 위기로 번지다

아프리카개발은행(AfDB)·아프리카연합집행위원회(AUC)·유엔개발계획(UNDP)·유엔아프리카경제위원회(UNECA)가 2026년 4월 2일 공동으로 낸 '중동 분쟁이 아프리카에 미치는 영향' 정책 보고서는 이번 위기를 단순한 유가 상승으로 보지 않는다. 연료·식료품 가격, 해상운임과 전쟁 위험 보험료, 환율과 재정이 한꺼번에 흔들리면서 지정학적 충격이 곧바로 생활비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분쟁이 6개월 넘게 이어지면 2026년 아프리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최소 0.2%P 낮아질 수 있다.

중동은 아프리카 전체 수입의 15.8%, 수출의 10.9%를 차지하는 주요 교역 상대다.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원유 수출의 약 20%가 지나는 핵심 길목이다. 브렌트유가 2026년 2월 말 배럴당 70달러 초반에서 3월 24일 100달러를 넘어섰다. 이런 취약성이 얼마나 빠르게 물가 충격으로 이어지는지를 보여준다.

[연합 그래픽] 국제유가 추이 [연합 그래픽] 국제유가 추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이란을 향해 강한 타격을 예고하면서 3월 2일(현지시간) 국제 유가가 급반등했다. 그날 6월 인도분 브렌트유 선물 종가는 배럴당 109.03달러로 전장 대비 7.8% 올랐다. 5월 인도분 미국 서부텍사스산 선물 종가는 배럴당 111.54달러로 전장 대비 11.4% 급등했다. yoon2@yna.co.kr

보고서는 일부 국가에는 석유보다 비료 충격이 더 클 수 있다고 본다. 걸프 지역의 액화천연가스(LNG) 공급 차질이 암모니아·요소 생산을 흔들고, 이는 3∼5월 파종기와 맞물려 식량 생산과 식량안보를 동시에 위협한다. 이번 사태는 에너지 위기이면서 동시에 먹거리 위기다. 전쟁은 멀리서 벌어지지만, 그 대가는 맨 먼저 취약계층의 식탁에 새겨진다.

◇ 모두가 잃는 것은 아니다…반사이익의 명암

이번 충격이 아프리카 전역에 똑같이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수에즈 운하와 홍해가 불안해질수록 선사들은 희망봉 우회를 택하고, 그 항로 위에 있는 더반항·월비스베이·모리셔스의 전략적 중요성은 커질 수 있다.

수에즈 운하 통과하는 상선 수에즈 운하 통과하는 상선

2023년 12월 22일 이집트 소속 컨테너이너선이 수에즈 운하를 지나 홍해로 향하고 있다.[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나이지리아는 고유가 수혜를 기대할 수 있고, 케냐와 에티오피아는 물류·항공 허브로서 입지를 넓힐 수 있다. 보고서와 로이터 보도도 일부 에너지 수출국과 항만, 물류 거점의 제한적 수혜 가능성을 함께 짚는다

나이지리아 단고테 석유 공장 나이지리아 단고테 석유 공장

[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그러나 이런 반사이익의 실질적 규모는 제한적이다. 물동량이 늘어도 이를 소화할 인프라와 운영 역량이 부족하면 정체와 비용 상승으로 되돌아온다. 고유가 수혜 역시 원유 수출국에 한정된 이야기다. 결국 일부의 수혜보다 다수의 부담이 훨씬 크다. 이번 사태는 기회의 확대라기보다 취약성의 노출에 가깝다.

◇ 문제는 분쟁보다 아프리카의 구조적 취약성

이번 위기의 본질은 전쟁만으로 다 설명되지 않는다. 핵심은 생산의 부족보다 연결의 부족이다. 자원과 식량, 비료를 역내에서 조달할 여지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그것들이 제때, 낮은 비용으로, 안정적으로 움직이지 못한다는 데 있다. 항만과 도로, 철도와 내륙 물류망이 촘촘하지 않고, 국경을 넘을 때마다 통관 지연과 높은 거래비용, 제도적 장벽이 덧붙는다. 바깥 공급망이 흔들릴 때 역내 거래로 빠르게 전환할 힘이 없는 이유다.

이 취약성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2025년 아프리카수출입은행이 발간한 '아프리카 무역 보고서'(African Trade Report)에 따르면 아프리카의 역내 교역 비중은 여전히 20%에 못 미치는 수준에 머문다. 아프리카대륙자유무역지대(AfCFTA)가 출범했지만, 대륙 내부의 공급망과 물류·금융 기반이 아직 충분히 갖춰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재정 여력도 마찬가지다. 높은 부채비율과 외화 부족 속에서 유가·운임 같은 외생 변수 하나만 흔들려도 물가·환율·부채 상환 부담이 연쇄적으로 악화한다. 위기의 크기를 키우는 것은 분쟁만이 아니라, 충격을 받아낼 완충장치가 아직 얇다는 구조적 현실이다.

◇ 위기를 자립의 계기로…그러나 조건이 있다

이번 위기가 구조 전환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기대는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그 기대는 현실의 조건을 직시할 때만 유효하다. 에너지 인프라 확충과 재생에너지 확대라는 방향은 옳다. 문제는 속도다. 정제 시설 신설이나 송배전망 확장은 수년에서 십수 년이 걸리는 사업이다. 파종기를 앞두고 비료 가격이 뛰는 현실 앞에서 중장기 로드맵은 당장의 처방이 되지 못한다. 비료 공급망의 역내 재편 역시 암모니아 플랜트를 갖춘 나라가 아프리카에 극소수라는 점을 고려하면, 단기간에 실현할 수 있는 과제가 아니다.

국제통화기금(IMF) 국제통화기금(IMF)

[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재정도 마찬가지다. 여러 아프리카 국가가 국제통화기금(IMF) 프로그램 이행 조건이나 채권 시장의 신뢰를 위해 긴축을 유지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있다. 이 때문에 위기 대응을 위한 재정 확장이 말처럼 쉽지 않다. 자립은 올바른 방향이지만, 구조 전환의 논리와 당장 생존 사이의 간극을 메울 단기 완충 수단이 함께 설계되지 않으면 자립의 구상은 위기가 지나간 뒤에야 꺼내 드는 이야기가 되고 만다.

◇ 우리나라와 협력, 무엇이 달라져야 하나

아프리카의 인프라와 운영 역량, 재정적 한계가 만들어낸 '구조적 공백'은 역설적으로 한국형 협력 모델이 기여할 수 있는 실질적 접점을 보여준다. 이제 중요한 것은 단순한 진입이 아니라, 어떤 가치와 논리로 그 공간을 채워갈 것인가에 있다.

우리 기업들은 아프리카 여러 항만의 건설과 장비 공급에 참여해 왔고, 정부 공적개발원조(ODA)도 항만 인프라에 상당 부분 투입됐다. 그러나 많은 사업이 시설 완공 이후를 충분히 설계하지 못했다. 항만이 지어졌지만, 배후 도로·철도가 연결되지 않은 사례, 기술 이전 없이 유지보수가 현지 역량을 넘어선 사례가 반복됐다. 시설을 짓는 것과 그것이 작동하게 하는 것은 전혀 다른 과제다. 이번 충격이 드러낸 아프리카의 물류 병목과 운영 적체는 바로, 이 간극에서 비롯된다.

한국이 자국 항만 현대화 과정에서 축적한 경험, 즉 자동화 도입 순서, 배후 물류망 연계 설계, 운영 인력 체계화의 시행착오는 그 자체로 아프리카 파트너에게 참고 가치가 있다. 다만 그것이 유효하려면 조건이 있다. 더반이든 월비스베이든 각 항만이 처한 노동 구조, 재정 여건, 제도적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한국의 경험을 모델로 이식하는 방식이 아니라 현지 조건을 먼저 진단하고 그에 맞는 운영 역량 강화 프로그램을 함께 설계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시설 완공을 사업의 끝이 아니라 시작으로 볼 때 협력은 달라진다. 항만과 내륙 무역 회랑을 연결하는 물류 설계, 통관 디지털화, 현지 운영 인력 육성을 하나의 패키지로 묶는 것이다. 무엇을 지어줄 것인가에서 그것을 어떻게 작동하게 할 것인가로 말이다. 희망봉 너머에서 한국이 보아야 할 것도 바로 그 지점이다. 위기가 반복될수록 아프리카의 자립 기반이 강해져야 한국의 공급망도 안정적으로 유지된다. 조달의 논리는 위기 앞에서 취약하다. 공동 구축의 논리만이 다음 충격에도 버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연합뉴스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최두영 박사

현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원 아시아·아프리카개발협력센터 연구위원,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지역대학원 겸임교수, 국제개발협력학회 아프리카위원장,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 경제학 박사. 주에티오피아 대사관 전문직 행정원 역임, '아프리카 비즈니스 환경과 시장 진출 전략', '동아프리카 스타트업 시장분석' 등 아프리카 경제 및 디지털 전환에 관한 다수 논문과 보고서 집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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