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걷다가 쓱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본다. 막 스쳐 지나간 그 사람. 어디서 본 듯한 인상이다. 아는 사람일까 아닐까. 교유했던 이인가 아닌가. 누구지? 어디서 봤지? 언제 만났지?, 희미할 뿐이다. 재빨리 기억을 되살려보지만 딱히 짚이는 건 없다. 가는 세월 탓이려니 하는 때, 그는 벌써 저 멀리다. '풋낯'이었을 것이다. 내 나이가 어때서. 내 기억력은 아직 멀쩡하다고. 그게 속 편한 생각이다. 서로 낯이나 익힐 정도로 앎 또는 그 정도의 낯(표준국어대사전). 서로 얼굴이나 익힐 정도로 조금 아는 얼굴(고려대한국어대사전). 오래 사귀지 않아 눈에 익지 않고 서먹서먹한 낯(김윤식·최동호 편저/한국 현대소설 소설어사전).
『국어사전에 숨은 예쁜 낱말』(이승훈)에서 이 단어를 만났다. 일부 명사 앞에 붙어 '처음 나온' '덜 익은' '미숙한' '깊지 않은'과 같은 뜻을 더하는 접두사 '풋'의 쓰임이 새삼스럽다. 풋낯이 쓰인 예문을 보면 숨은 예쁜 낱말은 그뿐만이 아님을 알게 된다. "사랑은 거니챌 수 없이 찾아온다. 풋낯에도 사랑은 돌개바람처럼 인다." '거니채다'는 한마디로 '눈치채다'다. '어떤 일의 상황이나 분위기를 짐작하여 눈치를 채다'라는 게 사전의 정의다. "초여름 밤, 겨우 풋낯을 보인 별들이 부잇한 구름 속으로 숨어버렸다." 부잇한 구름은 빛이 조금 부연 듯한 구름이다. "며칠 풋낯이나 익혔는데 그런 부탁을 해오는 것을 보면 사정이 어지간히 밭은 모양이다." 여기서 '밭다'은 '급하다' 하면 뜻이 분명해진다. (서울=연합뉴스, 고형규 기자, uni@yna.co.kr)
※ 이 글은 다음의 자료를 참고하여 작성했습니다.
1. 이승훈, 『국어사전에 숨은 예쁜 낱말』, 해드림출판사, 2017 (경기도서관, 전자책, 유통사 교보문고)
2. 고려대 출판부(김윤식·최동호 편저), 『한국 현대소설 소설어사전』,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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