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법 만들기 어려워야 국민 삶 지켜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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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법 만들기 어려워야 국민 삶 지켜진다

경기일보 2026-04-13 20:08:11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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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손숙오는 중국 춘추전국시대 초나라 재상이다. 당시 민간에선 낮은 수레를 썼는데 전쟁에 대비해 높은 수레로 교체할 필요성이 생겼다. 왕은 수레 교체를 강제하는 법을 만들고 위반하면 엄하게 처벌하려 했다. 이에 손숙오는 백성을 힘들게 하고 적개심을 야기한다며 반대했다. 대안을 냈다. 관공서 출입 문턱을 높였고 백성은 문턱을 넘으려 자연스레 수레를 높여 나갔다. 법을 만들지 않고 환경만 바꿔 같은 결과를 얻었다. 또 하나. 초나라 화폐단위가 낮아 비싼 물건을 거래하기 불편했다. 화폐단위를 높이는 법을 시행했는데 물가 상승 등 부작용이 컸다. 손숙오는 좋은 취지의 법도 백성이 힘들면 가치가 없다며 건의해 즉시 폐지했다.

 

법을 만드는 이유는 뭘까. 카를 슈미트는 국가권력을 법으로 통제해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국민의 권리를 제한하거나 의무를 부여하고 책임을 지우려면 반드시 법에 의해야 한다. 누군가에게 자유, 권리와 혜택을 주는 것도 국민이 부담하는 세금이나 다른 누군가의 희생이 전제된다면 법에 근거가 있어야 한다. 요즘은 어떤가.

 

복잡한 세상이다. 분쟁이 생기면 협상보다는 한쪽 편을 드는 법을 만들어 끝을 본다. 행정기관은 일을 만들고 ‘밥그릇’을 지켜야 하니 법이 필요하다. 국회의원은 법을 만드는 것이 실적이 되고 평가를 받으니 경쟁적으로 법을 만든다. 다수결에 의한 입법은 합리적이지만 소수를 공격하고 배제하면 민주주의를 훼손할 수 있다. 누군가에겐 이익이고 누군가에겐 불이익이 되는 법이면 갈등과 앙금을 키운다. 국민적 분노와 응징을 위해 만든 법이 세월이 흘러 다른 핵심가치를 짓누를 수 있다. 시장경제를 숭상하는 시대엔 국민의 창의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지가 국가 명운을 좌우한다. 그런데 어떤 법은 경제 구조와 기업을 촘촘하게 얽어맨다. 시장통제력을 높이지만 사업 기회와 경제 발전을 가로막는다. 가짜뉴스는 어떤가. 모든 정부가 규제 입법을 추진했다. 진짜와 가짜의 결정권한을 장악하면 자신에겐 유리하되 정적에 불리한 법 집행을 할 수 있다. 그것도 시대가 바뀌면 자신을 옥죄는 도구가 된다.

 

현행법령은 4월7일 기준 법률 1천706개이고 하위법령을 합하면 5천565개이며 행정기관 고시를 더하면 수만개다. 지방자치단체의 조례, 규칙 등 자치법규만 15만8천863개다.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법이 넘친다. 법이 많아진 배경엔 사법 시스템에 대한 불신도 있다. 수사기관과 법관을 믿을 수 없으니 법령을 촘촘하게 만들면 공정하거나 불이익이 없을 거란 생각이다. 사람 개입을 더욱 줄여 인공지능(AI)에게 사법, 입법, 행정의 핵심 역할을 맡게 하자는 극단적인 주장도 나온다. 정말 그럴까. AI의 학습과 추론이 사람의 그것과 다르던가. 사람이 AI를 악용하고 AI가 사람을 악용하면 합리적인 결론이 나올지 의문이다.

 

대부분 법이 그렇지 않으나 특정 목적에만 봉사하는 법이라면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다. 오늘은 나를 지키지만 내일은 나를 겨눈다. 법마다 이유가 있겠지만 국가사회 기본 구조와 헌법적 가치까지 위협하면 어떻게 될까. 정권마다 쏟아내는 새로운 법을 보면 만감이 교차한다. 법보다 신뢰를 구축하고 대안을 고민할 때다. 그 옛날 손숙오가 법 만들기를 두려워하고 잘못된 법이면 즉시 폐지했던 교훈은 오늘날에도 현재진행형임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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