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반도체(DS) 부문 직원들의 대규모 이탈 징후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경쟁사인 SK하이닉스와의 처우 차이로 인한 불만 때문이다. 특히 젊은층을 중심으로 '보상 없는 헌신은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애사심보다는 개인의 실익과 커리어를 고려한 경쟁사 이직 움직임이 점차 활발해지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이러한 내부 동요와 핵심 인재 이탈이 향후 반도체 업계 전반의 기술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직접적인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경고의 목소리가 나온다.
퇴직률(이직률) 10%대 고착화에 'SK하이닉스 면접 금지령' 뜬구름 소문까지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에 재직 중인 A씨는 현재 SK하이닉스 경력직 채용 최종 면접을 앞두고 있다. 그가 이직을 결심한 결정적 계기는 수억원에 달하는 성과급 차이였다. 동종분야 경쟁 관계인 두 회사의 기본급은 대동소이하지만 실적에 따라 지급되는 성과급 차이가 전체 연봉의 앞자리를 바꿀 만큼 어마어마하다는 게 A씨의 주장이다. 그는 "현실적으로 통장에 찍히는 액수가 이토록 차이 나는데 삼성맨이라는 자부심 하나로 버티기엔 한계가 있다"며 "실익을 쫓을 수밖에 없는 게 요즘 엔지니어들의 현실이다"고 털어놨다.
이어 "SK하이닉스로 이직할 경우 생활 반경이 수도권을 벗어나 청주로 옮겨지는 번거로움이 따르지만 압도적인 보상 앞에서는 그마저도 사소한 사안일 뿐이다"며 "나뿐만 아니라 사내 동료들 대부분이 SK하이닉스 채용 공고만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고 귀띔했다. 실제로 삼성전자 내부에서는 인력 이탈을 경계하는 사측의 민감한 분위기를 반영하듯 황당한 소문까지 확산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다른 직원 B씨는 "직원들 사이에서 SK하이닉스 면접일에 연차 사용을 자제시키라는 지시가 위에서 내려왔다는 말까지 돌고 있다"며 "단순한 소문을 넘어 그만큼 인력 유출에 대한 사측의 위기감과 직원들의 탈출 의지가 정점에 달했다는 증거 아니겠느냐"고 설명했다.
또 다른 삼성전자 DS 부문 직원 C씨는 "우리 부모님 세대 때만 해도 '삼성'이라는 이름이 갖는 상징성이 컸지만 실리를 중시하는 우리 세대들에게는 보상이 최우선 순위다"며 "이미 석·박사급 핵심 연구 인력들 중에서 SK하이닉스로 자리를 옮기신 사람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이어 "입사 당시만 해도 삼성전자의 인재 풀이 경쟁사보다 우위에 있었다는 자부심이 컸지만 급여 수준이 역전된 이후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이 심각한 수준이다"며 "한국의 최고의 인재들로 불리는 이들이 실익을 쫓아 경쟁사로 발길을 돌리는 현실을 사측은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삼성전자의 인력 이탈 움직임은 객관적인 수치로도 나타나고 있다. 기업분석전문 한국CXO연구소가 '2025년 월별 국민연금 가입자 현황'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국민연금 자격을 상실한 삼성전자 임직원은 7287명으로 전년(6459명) 대비 13% 증가했다. 그동안 삼성전자의 국민연금 자격 상실자 수가 2022년(6189명), 2023년(6359명), 2024년(6459명) 등 매년 100~200명 안팎의 완만한 증가 폭을 보였던 점을 고려하면 지난해 800명 넘게 급증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현상으로 해석됐다. 일각에선 DS 부문의 이탈이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도 나온다.
삼성전자 역시 상황은 충분히 파악하고 있는 모습이다. 삼성전자가 발표한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연간 퇴직률(이직률 포함)은 10.1%를 기록하며 4년 연속 10%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경쟁사인 SK하이닉스의 행보와 극명하게 대조되는 모습이다 .SK하이닉스의 퇴직률은 2021년 3.8%에서 2024년 1.3%로 대폭 하락하며 10년 사이 최저치를 기록했다.
노동계 안팎에서도 양사 직원들의 퇴직률 격차가 성과급 산정 방식 차이에서 기인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많다. 삼성전자가 최근 공지한 2025년도분 초과이익성과급(OPI) 예상 지급률에 따르면 DS(반도체) 부문은 연봉의 43~48% 수준으로 책정됐다. 범용 D램과 고대역폭메모리(HBM) 실적 개선에 따라 전년(14%) 대비 30%p 넘게 상승한 수치다. OPI는 연간 경영 목표 달성 시 초과이익의 20% 범위 안에서 개인 연봉의 최대 50%까지 지급하는 삼성전자의 대표적인 성과급 제도다.
반면 SK하이닉스는 마찬가지로 영업이익을 기준으로 삼고 있지만 상한선이 없는 게 특징이다. SK하이닉스의 성과급 제도인 초과이익분배금(PS)은 영업이익의 10%를 재원으로 활용한다. 특히 지난해 9월 노사 협상을 통해 기존 기본급 1000%로 묶여 있던 성과급 지급 상한선을 폐지했으며 이에 따라 올해 초에도 1인당 평균 1억4000만원 가량의 PS가 지급됐다. 만약 올해 시장 전망치인 영업이익 200조원을 달성할 경우 지난해 말 직원 수(3만4549명) 기준 내년 초 1인당 평균 PS는 5억8000만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최근 시장에서 형성된 성과급 기대치가 산업의 실제 기초 체력을 상회할 만큼 과도하게 부풀려졌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과 교수는 "반도체 산업은 개별 기업의 성과를 넘어 국가적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과 막대한 국민 세금이 투입된 공공적 성격이 짙은 국가 전략 사업이다"며 "직원들의 노고는 충분히 인정받아야 마땅하지만 보조금 등 국가 자산이 뒷받침된 산업 구조를 고려할 때 현재 시장에서 형성된 성과급 기대치는 다소 과도하게 '올려치기' 된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두 회사의 경쟁적인 파격 보상이 장기적으로는 반도체 산업의 기초 체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며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보상의 합리적인 정도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고 재차 강조했다.
성과급 체계에 대한 내부 직원들의 불만과 갈수록 활발해지는 하이닉스 이직 움직임에 대해 삼성전자 관계자는 "DS부문만 하더라도 수만명이 재직 중이기 때문에 특정 직원의 SK하이닉스 이직 준비나 면접 여부를 일일이 파악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내부의 동요와 인력 유출 우려에 대해서는 회사에서도 인지하고 있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다각적인 방안을 고심 중이다"고 말했다. 이어 "회사 차원에서 특정일에 연차 사용을 제한하거나 자제를 권고하는 공식 지침을 하달한 사실은 결코 없다"며 "다만 워낙 다양한 부서가 존재하다 보니 부서별 상황에 따라 연차 사용 여건이 다를 수 있고 팀 내 소통 과정에서 개인의 주관적 해석에 따라 연차 사용에 대한 인식이 달랐을 가능성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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