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면에서 이제 막 깨어나 기지개를 쭉 켜며 스트레칭. 목을 늘였다가 사육장 안을 뱅글뱅글 돌고, 어구공을 굴리며 몸의 근육을 서서히 풀었다. 그러다 사육장 한쪽에서 지푸라기를 잔뜩 묻힌 채 우리를 조용히 응시하던 새카만 곰. ‘저 사람들은 누굴까?’ 묻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는 넌 누구니? 어디에서 왔어?’
화천의 천재 곰 우투리가 내실로 들어가는 뒷모습.
한국에서는 1970년대부터 곰의 쓸개(웅담)를 얻으려고 반달가슴곰을 수입해 좁은 철창에 가두고 길러왔다. 모든 반달가슴곰은 국제적 멸종위기종이지만 한국의 사육곰은 외국에서 수입됐다는 이유만으로 보호받지 못한 채 채취용 자원으로 여겨졌다. “오늘도 여전히 260여 마리의 사육곰이 고통 속에 살아갑니다”라고 말하는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는 웅담 채취를 목적으로 좁은 철창 속에 갇힌 마지막 사육곰 한 마리까지 흙을 밟게 하겠다는 목표로 현장 돌봄과 정책 운동을 병행하는 전문 활동가 크루다.
(왼쪽부터)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 화천 현장을 지키는 조아라, 강지윤, 도지예 활동가.
앞서 묘사한 장소는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가 구조한 곰들을 보호하는 화천 현장. 현장을 지키는 활동가 도지예, 조아라, 강지윤의 하루는 이렇게 시작된다. 오전 8시, 하나둘 모여 전날의 기록을 복기하며 곰들이 남긴 변의 상태, 사료를 비우는 속도 혹은 정형 행동의 빈도나 걸음걸이의 미세한 차이까지 낱낱이 훑으며 그날의 식단과 일과를 조정한다. 회의 후 곰들의 식사를 준비하는 곳으로 이동해 개체별 맞춤형 급여량을 준비하고, 곰들을 내실로 유도한 뒤 사육장 청소에 돌입한다. 더불어 곰들이 지루함을 느끼지 않도록 매듭이나 타이어, 생수통 등에 먹이를 숨겨두는 ‘행동 풍부화’ 작업도 함께. 봄기운이 완연해지면 곰들을 방사장에 내보내는 ‘방사’가 일과의 핵심이 된다.
조아라 활동가가 행동 풍부화를 위해 매듭에 급여를 꽂고 있다.
동면기가 지나고 시작되는 방사 활동에서 전기 울타리(전책)가 잘 작동하는지 확인하고, 방사장 곳곳에 먹이를 숨겨두는 이 반복적인 루틴은 곰들에게 스스로 탐색하고 선택할 수 있는 삶의 주도권을 되찾아주기 위한 작업이다. 이곳에서 활동가들에게 곰은 하나의 ‘종’이 아닌, 저마다 뚜렷한 개성과 취향을 가진 고유한 존재다. 화천의 ‘천재 곰’으로 불리는 우투리는 활동가들을 매번 놀라게 하는 주인공. 다른 곰들은 포기했던 복잡한 풍부 화물 앞에서 우투리는 공을 물고 음수대로 향한다. “풍부 화물을 제공했더니 몇 번 시도해 보다가 먹이가 잘 나오지 않자 음수대에 넣었다 뺐다 하며 물을 따라 빠져나오는 먹이를 먹는 걸 보고 놀랐던 적 있습니다.” 활동가 강지윤이 말했다. 우투리의 지능은 타자와의 관계 맺기에서도 빛을 발한다. 활동가 도지예는 우투리가 자신이 좋아하지 않는 양배추를 옆 칸의 친구 주영이에게 툭 던져주는 장면을 목격하기도 했다. 그러면 주영이가 양배추를 먹으러 다가오고, 우투리는 기다렸다는 듯 앞발을 내밀어 장난치며 놀이를 유도한다. 제일 예민한 상태였던 주영이의 변화는 인간과 동물 사이의 신뢰가 무엇인지 대변한다. 구조 당시 주영이는 인간에 대한 극심한 공포와 경계심으로 사람이 근처에 서 있기만 해도 으르렁거리며 날아오를 듯 위협하던 개체였다. 화천에 온 뒤에도 한 달간 항불안제를 먹어야 할 만큼 트라우마가 깊었지만, 활동가들은 꾸준한 훈련을 지속했다. “주영이는 구조하기 전에도 사람에게 경계심이 강했지만 지금은 먼저 다가오고, 나뭇가지로 몸을 긁어주면 배를 보이며 누워 앞발로 놀기도 하죠. 그럴 때 ‘주영이가 편한 상태구나, 우리가 익숙한 사람이 됐구나’라고 생각합니다.” 활동가 조아라가 말했다. 여기에 더해 방사장에서 가장 높은 평상을 본인의 낮잠 명당으로 삼은 알코르나 생수통 풍부 화물을 입에 물고 효율적으로 흔들어 먹이를 빼 먹는 실용주의자 라미, 누워서 어구공의 구멍을 찾아 혀를 넣었다 빼며 먹이를 찾는 미남이의 모습은 그저 기특하기만 하다.
고구마, 파프리카, 땅콩 같은 급여를 준비하는 강지윤 활동가.
‘이토록 고유한 생명들이 왜 좁은 철창에 갇혀 죽음을 기다려야 했을까’라는 질문 앞에서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의 최태규 대표는 우리 사회의 지독한 인지 부조화를 짚었다. “국제적 멸종위기종을 합법적으로 농장에서 대규모 사육하는 산업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지금의 한국 사회와는 굉장히 부자연스럽고, 인지 부조화를 일으키는 일처럼 느껴집니다. 국가가 곰을 키우도록 장려하고, 이를 합법화한 것은 분명 큰 실패이자 과오입니다.” 최태규 대표는 국가가 인간에 대한 과오에는 사과와 성찰을 보내면서도 동물의 삶을 파괴한 정책 결정에 대해서는 반성하지 않는 현실을 꼬집었다.
곰들을 내실로 유도한 후 진행하는 사육장 청소, 청결과 소독은 필수다.
최근 대구 농장에서 구조된 또또와 찔레의 사례는 이 산업의 비극을 들춰낸다. 6년 전, 10마리가 넘던 농장에는 단 두 마리만이 살아 있었다. 나머지는 모두 도살돼 사라진 뒤였고, 농장주들 역시 복잡한 감정의 굴레에 갇혀 있었다. 산업적 목적으로 동물을 키우지만, 보내는 순간에는 눈물을 흘리는 그 기묘한 애착 관계 속에서도 동물을 잡아먹어야 하는 구조적 부조리가 존재했다. 법적으로 산업은 종식의 길로 들어섰으나 곰들은 여전히 농장에 남아 있으며, 태어나고 자란 곳에서 강제로 옮겨지는 일은 곰에게 납치와 같은 공포다. “찔레는 케이지에 웅크리고 누워 사육장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억지로 사육장으로 들여보내지 않고 적응할 시간을 주기 위해 케이지를 사육장에 연결해 놓고 기다려보기로 했고, 다음날 오전에야 들어갔습니다. 말하자면 납치되는 과정이기 때문에 곰들은 겁에 질릴 수밖에 없습니다.” 활동가 조아라와 최태규 대표가 말했다.
행동 풍부화 활동 중 저 먼 곳을 응시하는 라미.
많은 이가 생츄어리를 지상낙원으로 상상하지만, 현장은 더 치열하고 현실적이다. 최태규 대표는 생츄어리를 ‘완성된 목표가 아니라 야생동물을 가둬 기르는 산업 문제를 기록하고 종식시키는 과정’이라고 표현했다. 2023년 12월 사육곰 산업의 제도적 종식을 명시한 야생생물법이 통과한 이래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는 곰을 직접 매입하는 일에는 거의 나서지 않았다. 곰 매입 책임을 시민단체에 돌리려는 국가의 행태에 맞서기 위해서다. 그러나 산업 종식 하루 전까지 그리고 지금까지도 국가에서는 사육곰 구조와 매입을 위한 예산을 마련할 의지를 보이지 않는 상황. 이런 이유로 직접 나설 수밖에 없었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철창에 갇힌 곰들을 직접 구조하고 있다. 구조하는 데 드는 돈은 2000만 원이다. 현재 이 프로젝트가 마주한 가장 큰 벽은 60억 원이라는 구체적인 예산과 시스템의 부재다. “갈 곳 없는 곰이 100마리 정도 있고, 이들을 모두 수용할 시설을 민간에서 짓는다면 60억 원 정도가 필요합니다. 문제는 그 돈을 내겠다는 주체가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 한국 사회는 돈이 많은 사회지만, 소외되고 고통받는 소수자와 약자들은 늘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있습니다.” 최 대표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고통받는 다수의 사육곰에게도 관심을 두는 것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이 같은 현실 속에서도 곰을 돌보는 고된 현장으로 활동가들이 매일 아침 출근하는 동력은 명확했다. “만들어준 풍부 화물에 넣어준 먹이를 집중해서 찾아 먹거나 훈련할 때 골똘히 생각하는 모습을 보면 곰들의 하루가 조금은 의미 있게 지나간 것 같고, 그게 우리에겐 원동력이 되는 것 같습니다”라고 활동가 도지예가 말했다.
매듭에 꽂힌 파프리카를 앞발로 꺼내기 위해 열심히 애쓰는 라미
결국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곰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는 우리가 어떤 사회에서 살고 싶은지에 대한 본질적인 물음이다. 인간의 이기심으로 시작된 비극을 우리 손으로 끝내는 자세 그리고 그 과정에서 희생된 생명들에게 최소한의 예우를 다하는 것. “사회가 만들어낸 문제인 만큼 함께 힘을 모아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곰이 불쌍하다는 걸 넘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같이 고민하고 해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활동가 조아라가 덧붙였다. 머지않아 봄이 오면 화천의 방사장 문이 열리고, 곰들은 망설임 없이 흙을 밟으며 뛰어나갈 것이다. 볏짚을 모아 잠자리를 만들고 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느끼는 이 평범한 삶이 모든 사육곰에게 허락될 때까지 이들의 기록은 계속될 것이다. 그럼에도 곰 방생에 따른 인간과의 마찰이나 안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들려오지만, 우리가 진정으로 해야 할 것은 공존을 위한 세밀한 설계와 책임 있는 연대를 구축하는 일이다.
식사 시간에 도구를 활용할 때 제일 중요한 역할을 하는 앞발.
우리가 곰들에게 내주는 보금자리는 실상 곰들의 자리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단면을 치유하고 잃어버린 인간다움을 회복하는 자리이기에. 곰들의 평화로운 오후가 길어질수록 우리의 문명도 좀 더 성숙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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