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키디데스는 단 한 문장으로 전쟁의 본질을 꿰뚫었다. “아테네의 세력이 성장하고, 이것이 스파르타에 공포를 심은 것이 전쟁을 불가피하게 만들었다.” 기원전 431년의 이 진단을 2026년 4월의 동북아에 대입하면, 주어만 바꾸면 된다. 아테네를 중국으로, 스파르타를 미국으로. 그러나 투키디데스를 결정론자로 읽는 것은 오독이다. 그가 파헤친 것은 구조가 아니라 판단이었다. 아테네를 멸망으로 몰아넣은 것은 스파르타의 군사력이 아니라, 아테네 민회의 과욕이었다. 페리클레스가 역병으로 쓰러진 뒤, 선동가 알키비아데스의 화려한 말솜씨에 도취된 시민들이 승인한 시칠리아 원정이라는 도박이 제국의 사형선고서가 됐다. 전쟁을 촉발하는 것은 ‘구조적 긴장’이지만, 실제로 방아쇠를 당기는 것은 ‘판단의 실패’라는 것이 투키디데스의 유언이다.
기번은 같은 진실을 더 긴 시간축에서 확인했다. 로마의 폐허 위에 앉아 1300년에 걸친 제국의 임종 기록을 쓴 그의 결론은 간결하다. 로마는 외부의 적에게 정복당한 것이 아니라, 내부로부터 부패한 것이다. 번영이 자만을 낳았다. 자만이 시민적 덕성을 잠식했다. 덕성을 잃은 시민은 군복무를 기피했다. 야만족 용병이 군단의 자리를 채웠다. 용병이 로마를 지키는 순간, 주권의 본질이 이전됐다. 알라리크가 로마를 약탈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강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자신이 로마군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방위의 외주화는 주권의 이전이라는 것. 기번이 71장에 걸쳐 입증한 단 하나의 명제다. 이 두 고전이 13일 서울에 던지는 경고는, 지금 우리 앞에 펼쳐진 현실의 해부도다.
지금 한국 경제가 겪고 있는 것은 질서의 전환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해방의 날’을 선언하고 상호관세를 발동한 지 꼭 1년이 지났다. 미 연방대법원이 올해 2월 상호관세를 위법으로 판결했지만, 트럼프는 무역법 301조라는 새 칼을 뽑아들었다. 한국, EU, 일본, 중국을 대상으로 불공정 관행 조사가 이미 진행 중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스스로 건설한 자유무역 질서를, 그 건설자 자신이 허물고 있다. 이것은 투키디데스가 말한 ‘패권국의 공포’의 현대판이다. 스파르타가 아테네의 성장에 공포를 느낀 것처럼, 미국은 중국의 부상에 공포를 느끼고 있다. 그 공포가 관세라는 무기로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관세의 포화가 적성국만을 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동맹국 한국에도 10~15%에서 품목관세 최대 25% 관세가 적용되고, 3500억 달러(약 520조원) 투자를 조건으로 합의한 관세 감면마저 국내 정치 소용돌이에 아직까지 갇혀 있다.
여기에 호르무즈 해협 봉쇄라는 변수가 겹쳤다. 미국과 이란의 군사 충돌이 한 달을 넘기며, 세계 원유 수송의 21%가 통과하는 이 해협이 막혔다. 석유 수입의 대부분을 중동에 의존하는 한국에게 이것은 공급망 위기의 직격탄이다. 고환율, 수출 둔화, 원유 가격 급등. 한국 경제는 세 겹의 파고를 동시에 맞고 있다. 기번이라면 이 장면을 어떻게 읽었을까. 로마 제국의 쇠퇴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것이 아니었다. 3세기 위기 때 은화 데나리우스의 은 함량이 95%에서 5%로 절하되고, 세수 기반이 침식되고, 군대를 유지할 재원이 바닥나면서 제국은 서서히 공동화됐다. 외형은 여전히 거대했지만, 실체는 이미 속이 비어 있었다.
오늘 미국의 국가부채 36조 달러(약 5경원), 연방 정부 셧다운의 반복, 정치적 양극화, 군 지원병 감소를 보면, 기번이 진단한 ‘제도의 형해화가 실체적 붕괴에 선행한다’는 명제가, 동맹의 맹주에서 실시간으로 재현되고 있다. 한국이 이 동맹에 안보를 의탁하고 있다는 사실이, 위안이 아니라 경각심의 근거여야 하는 이유다. 투키디데스의 멜로스 대화도 다시 꺼내야 한다. 멜로스는 아테네와 스파르타 양대 동맹 사이에서 중립을 선언한 작은 섬나라였다. 여기서 아테네 사절단은 “강자는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약자는 감내해야 할 것을 감내한다”고 말했다. 멜로스는 도덕적 당위를 주장했고, 아테네는 힘의 논리를 관철했다. 멜로스는 멸망했다.
이것이 한국의 존재론적 딜레마의 원형이다. ‘한미일 대 북중러’라는 신냉전적 진영 구도 속에서, 올해 초 이재명 대통령의 일본·중국 연쇄 방문이 ‘줄타기 외교’로 평가받은 것 자체가, 양자택일 압력의 무게를 반증한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대일 공조를 요구하고,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대중 공조를 유도하는 샌드위치 속에서, 한국의 전략적 공간은 좁아지고 있다. 그러나 멜로스의 비극을 비관적으로만 파악해서는 안 된다. 같은 전쟁사에서 코린토스는 전혀 다른 운명을 맞았다. 코린토스는 중립을 주장하는 대신, 자신의 전략적 가치를 능동적으로 제시해 동맹 내 발언권을 확보했다. 멜로스는 수동적 중립으로 멸망했고, 코린토스는 능동적 불가결성으로 생존했다. 바로 이것이다. 불가결성(不可缺性).
세계 메모리 반도체의 60%를 공급하는 국가를 어느 진영도 함부로 적으로 돌릴 수 없다. 세계 최고 수준의 LNG선을 건조하는 국가가 해양 통제를 다투는 양 진영 모두에게 필요로 한다. 미국이 조선업 재건을 위해 한국의 기술과 투자를 요청하는 MASGA 프로젝트가, 한국의 불가결성이 작동하는 구체적 증거다. 관세의 칼날이 동맹국에도 번뜩이는 시대에, 한국을 지켜주는 것은 조약 문서가 아니라, 대체 불가능한 기술적 가치다. 이것이 2400년 전 멜로스에는 없었고, 오늘 서울에는 있는 것이다.
기번은 또 하나의 교훈을 남겼다. 문명은 멸망하지 않고 변환된다는 것이다. 서로마가 무너진 뒤에도 로마법은 살아남았고,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된 뒤에도 그리스의 학문이 르네상스의 씨앗이 됐다. 패권은 이전돼도, 기술과 제도 그리고 문화의 축적은 존속한다. 한국이 축적한 반도체·배터리·조선·원전·방산의 역량은 어떤 지정학적 격변 속에서도 대체 불가능한 가치를 향유 할 수 있다. 다만, 그 전제조건도 분명하다. 내부의 결속이 없으면 외부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이다. 아테네를 무너뜨린 것은 스파르타의 창이 아니라, 아테네 민회의 분열이었다. 로마를 쓰러뜨린 것은 게르만의 칼이 아니라, 로마 시민의 나태였다. 관세 합의 비준을 둘러싼 국회가 보인 교착, 에너지 공급망 대응의 지체. 이 모든 것이 투키디데스가 경고한 스타시스, 전쟁이 동맹국 내부의 분열을 가속화하는 현상의 한국판이 아닌지 자문해야 한다.
투키디데스와 기번. 한 명은 전쟁이 어떻게 시작되는지를 보여줬고, 한 명은 제국이 어떻게 끝나는지를 보여줬다. 이 두 저작이 동일한 결론에 도달한다는 것은 필연일 것이다. 인간 본성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공포, 명예, 이익이라는 세 가지 동인이 국가를 움직이는 한, 그리고 번영이 자만을, 자만이 나태를, 나태가 붕괴를 초래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한, 이 고전들은 오늘 기자의 수첩보다 더 정확한 기록서로 남을 것이다.
문제는 경고를 읽느냐가 아니다. 읽고 나서 어떻게 행동하느냐다. 관세의 포화 속에서, 호르무즈의 불길 속에서, 강대국 경쟁의 사이에서, 한국이 멜로스가 될 것인가 코린토스가 될 것인지. 그 답은 서울 여의도와 광화문에서, 지금 이 순간도 쓰여지고 있다.
[뉴스로드] 최지훈 기자 jhchoi@newsroa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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