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기 채용 시즌이 본격화한 가운데 취업 열기가 과거 사법고시나 행정고시에 비견될 만큼 치열해졌다는 국내 기업이 있다. “성과급 1인당 13억 가능”이라는 전망과 역대급 실적 등이 기폭제가 된 것으로 보인다.
취업 서적 코너에 북적이는 모습. 기사 내용 토대로 AI툴 활용해 제작한 자료사진.
그 기업은 바로 반도체 신화를 새로 쓰며 압도적 존재감을 드러내는 있는 SK하이닉스다.
13일 에듀윌에 따르면 SK그룹 채용 대비서인 SKCT 기본서가 주요 온라인 서점에서 e북 전체 분야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다. 삼성그룹 채용을 대비하는 GSAT 교재 판매량도 올해 1분기 기준 전년 동기 대비 약 40% 급증했다. 업계에서는 반도체 기업의 역대급 실적과 보상안 발표로 관련 직군 취업을 희망하는 수험생이 눈에 띄게 는 것으로 보고 있다.
취준생들이 반도체 대기업으로 몰리는 이유는 분명하다. 삼성전자는 2025년 1분기 영업이익 57조2000억원을 기록했다. 한국 기업 역사상 역대 최대이자 사상 첫 분기 영업이익 50조원 돌파다. SK하이닉스는 오는 23일 실적 발표를 앞두고 있으며, 증권가는 40조원 안팎의 영업이익을 예상하고 있다. AI 반도체 수요 폭발이 이 두 기업의 실적을 수직 상승시킨 핵심 동력이다.
서점에 쌓인 취업 관련 서적들. 자료사진. / 연합뉴스
성과급이 곧바고 입사 '동기'로…
SK하이닉스는 지난해 노사협상을 통해 성과급 상한선을 폐지하고 영업이익의 10%를 초과이익분배금(PS) 재원으로 활용하는 구조를 확정했다. 40조원의 10%면 4조원이다. 이 금액을 임직원 수로 나누는 단순 계산이 취업 커뮤니티와 직장인 익명 앱에서 퍼지면서 "반도체 취업이 로또"라는 인식이 형성됐다.
삼성전자 노조는 한발 더 나아갔다. 다음 달 총파업을 예고한 삼성전자 노조는 내부적으로 영업이익의 15%를 성과급 재원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삼성그룹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전자지부는 지난 7일 "올해 영업이익 270조원 이상이 확실시된다"며 "성과와 실적 전망에 맞는 보상을 강력히 요구한다"는 입장문을 냈다. 증권가의 삼성전자 연간 영업이익 전망치 평균이 약 297조원인 점을 감안하면 노조 요구대로 15%를 적용할 경우 성과급 재원은 45조원에 달한다.
성과급 13억원설까지 나오고 있는 SK하이닉스. 기사 내용 토대로 AI툴 활용해 제작한 자료사진.
45조원은 지난해 삼성전자가 배당에 쓴 11조1000억원의 4배를 넘는다. 지난해 삼성전자의 연간 투자 규모인 37조7000억원보다도 많다. 재계 안팎에서 과도하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급변하는 반도체 업황에서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연구개발(R&D)과 인수합병(M&A) 등 투자가 병행돼야 하는데, 연간 투자 규모를 웃도는 성과급 요구는 미래 성장 동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고물가·고환율로 생활고를 겪는 국민 정서와 동떨어진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반도체 고시' 명암
반도체 대기업으로의 인재 쏠림은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의 인력난을 심화시키는 구조적 문제를 낳는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중소기업 인력 부족률은 매년 악화되는 추세로, 반도체·IT 직군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우수 인력이 연봉 격차를 이유로 대기업으로만 향하면서 기술력 있는 중견·중소기업조차 신입 채용에 어려움을 겪는 실정이다.
반도체 생산시설 단순 자료사진. /뉴스1
같은 직장인 사이에서도 반도체 직군이냐 아니냐에 따라 연봉 총액이 2~3배 벌어지는 현상이 고착되면서 노동시장의 이중 구조가 심해지고 있다. 반도체 대기업 재직자와 그 외 직군 사이의 자산 격차는 주거·결혼·출산 등 생애 전반의 선택을 갈라놓는 요인이 됐다.
사이클 산업인 반도체의 특성도 변수다. 오늘날의 역대급 실적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누구도 장담하지 못한다. 성과급에 의존한 자산 계획을 세운 임직원들이 업황 침체기에 받는 충격은 개인의 재무 리스크를 넘어 소비 위축 등 사회 전반의 문제로 번질 수 있다. 모두가 같은 문으로 들어가려 할수록 문턱은 높아지고, 그 문에 닿지 못한 이들의 소외감은 구조적으로 더 깊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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