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 트로터의 두 번째 보테가 베네타 쇼는 밀라노 본사인 팔라초 산 페델레에서 열렸다. 라 스칼라 극장과 두오모 사이에 자리한 이곳은 도시의 역사와 문화가 교차하는 상징적 장소다. 도시 외곽에서 진행된 지난 시즌과 달리 이번 쇼는 밀라노의 중심으로 돌아온 무대였다. 지난 1년간 밀라노에 거주하며 도시를 관찰해온 트로터에게 이는 자연스러운 선택처럼 보인다. 영국 출신인 그는 밀라노가 지닌 단단하고 절제된 외관, 그리고 그 이면에 흐르는 관능적인 분위기에서 영감을 얻었다.
트로터가 이번 시즌의 출발점으로 제시한 키워드는 브루털리즘과 관능성의 대화이다. 건축적이고 견고한 도시의 인상과 그 안에 은근히 흐르는 감각적 분위기, 밀라노가 지닌 이중적인 매력이 컬렉션 전반에 반영됐다. 동시에 그는 이 도시 사람들이 여전히 옷을 정성스럽게 차려입는다는 점에 주목했다. 단순히 옷을 잘 입는다는 의미를 넘어 자신을 위해서이자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옷을 입는 태도다. 과장되거나 과시적이지 않지만 자부심과 섬세한 배려 속에서 자신 있게 옷을 차려입는 밀라노 사람들이 공유해온 고유한 방식이다. 쇼의 전개는 조각처럼 구조적인 슈트에서 시작해 점차 풍부한 질감과 강렬한 색채의 드레스로 확장되는 흐름을 따른다. 초반에는 어둡고 절제된 팔레트의 테일러링이 중심을 이뤘다.
재킷의 어깨선은 지난 시즌보다 한층 부드럽고 둥근 형태로 발전했다. 까바 백의 곡선 구조에서 영감받은 정교한 패턴을 바탕으로 하며, 하우스의 장인 기술을 엿볼 수 있는 동시에 가방을 들 때 자연스러운 균형을 이루는 실루엣이 특징이다. 하의는 여유로운 실루엣의 팬츠나 가죽 벨트에 걸쳐 입는 랩스커트 형태로 제안됐다. 남성 슈트 역시 같은 곡선 실루엣을 따르지만, 레이어드한 폴로셔츠와 짧은 리브 니트 스웨터를 매치해 여성 룩보다 한층 캐주얼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컬렉션이 진행될수록 소재 실험은 더욱 두드러졌다. 전통적 피코트를 변주한 아이템만 봐도 매트한 크로커다일 가죽, 인트레치아토 위빙에 퍼 프린지를 더한 디자인, 아스트라칸 모헤어처럼 보이도록 표면을 가공한 두꺼운 파일 벨벳 등 다양한 질감이 등장했다. 실제 소재를 단번에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텍스처의 경계를 흐린 점도 인상적이다. 보테가 베네타가 가죽 공정에 강점을 지닌 하우스라는 점을 강조하듯, 트로터는 퍼와 가죽의 질감을 모방하는 실험에도 공을 들였다.
오른쪽 보테가 베네타 2026 겨울 컬렉션 쇼에 참석한 배우 윤여정과 서기.
실크를 곱슬거리는 시어링처럼 표현하거나, 실제 시어링을 브러싱해 폭스 퍼처럼 보이게 만드는 방식이다. 여기에 테크니컬 섬유 소재도 더해졌다. 데뷔 시즌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긴 유리섬유 소재가 이번에는 발목을 스치는 길이의 핑크 드레스로 등장했다. 대부분의 룩에는 모자가 함께 스타일링됐다. 투박한 니트 비니부터 경쾌한 프린지 장식 캡까지 다양한 형태가 등장한다. 튜닉 길이의 드레스와 코트를 맨다리 혹은 레깅스와 매치한 스타일링 역시 컬렉션 특유의 분위기를 드러냈다. 이처럼 다양한 질감과 실루엣이 교차하는 가운데 컬렉션의 핵심을 가장 또렷하게 보여준 룩은 오히려 단순했다. 나선형으로 흘러내리는 비대칭 프린지 스커트에 간결한 니트 탱크톱을 매치한 스타일이다. 불필요한 장식을 덜어낸 이 조합은 오히려 컬렉션의 메시지를 더욱 또렷하게 했다. 덜어낼수록 더욱 강렬해지는 미학이 드러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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