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회확률 90%” — 그 숫자가 만들어지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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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회확률 90%” — 그 숫자가 만들어지는 방법

나만아는상담소 2026-04-12 18:01:09 신고

“재회확률 87%.”

이 한 줄을 보는 순간 심장이 뛴다. 87이라는 숫자가 눈앞에 박힌다. 50도 아니고 30도 아니고, 87. 거의 된다는 뜻 아닌가. 새벽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다가 이 숫자를 받아든 사람은, 처음으로 숨이 좀 쉬어지는 기분이 든다. “아, 방법이 있구나.” 그래서 결제 버튼을 누른다.

그 숫자가 어디서 왔는지를 아는 사람은 없다.


계산기라는 이름이 붙으면 생기는 일

재회상담 업체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재회확률 계산기”라는 게 있다. 이별 사유, 연애 기간, 마지막 연락이 언제였는지, 상대가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있는지. 항목을 채워 넣으면 24시간 안에 결과가 날아온다. 퍼센트가 찍혀 있다.

“계산기”라는 단어가 하는 일이 있다. 입력값을 넣으면 정해진 공식에 따라 결과가 나온다는 인상을 준다. 체질량지수 계산기에 키와 몸무게를 넣으면 BMI가 나오듯, 내 상황을 넣으면 확률이 나온다고 느끼게 만든다.

그런데 체질량지수에는 공식이 있다. 몸무게를 키의 제곱으로 나누는 거다. 누구나 확인할 수 있고, 같은 숫자를 넣으면 같은 결과가 나온다. 재회확률 계산기의 공식은 어디에도 공개돼 있지 않다.

어떤 변수에 어떤 가중치를 줬는지, 이 공식을 누가 만들었는지, 검증을 거쳤는지. 물어보면 답은 돌아온다. “다년간의 상담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한 독자적 분석 방법”이라는 식으로. “영업 비밀”이라는 뉘앙스가 깔려 있다.

이 말이 왜 안 되는지를 생각해보면 간단하다. 의사가 “당신의 암 발생 확률은 87%입니다”라고 말하면서 산출 근거를 안 알려주면 어떻게 될까.

“우리 병원의 다년간 노하우입니다”라고 하면 납득이 되나. 의학에서 확률을 말할 때는 표본 크기, 연구 설계, 통계 방법이 공개된다. 재현할 수 있어야 과학이다. 재현할 수 없으면 그건 감이다.

사람 사이의 관계를 퍼센트로 환산할 수 있는 검증된 공식은 학술 문헌 어디에도 없다. 두 사람이 다시 만날 가능성은 각자의 감정 상태, 이별의 맥락, 시간의 흐름, 주변 환경, 새로운 만남, 우연한 사건들이 전부 얽혀서 만들어진다.

이걸 숫자 하나로 압축할 수 있다고 말하는 건, 내일 비 올 확률을 점쟁이가 “83%”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기상청도 예보가 틀리는데.


리포트를 읽으면 소름이 돋는 이유

확률 숫자와 함께 분석 리포트가 온다. 읽어보면 대략 이런 내용이다. “상대방은 현재 감정적으로 혼란스러운 상태입니다.” “아직 당신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다만 지금 연락하면 역효과가 날 수 있습니다.”

읽으면서 등줄기가 서늘해졌을 수 있다. 내 상황을 어떻게 이렇게 정확히 꿰뚫고 있지?

연말에 돌아다니는 신년 운세를 생각해보면 된다. “올해 당신은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됩니다.” “건강에 유의하세요.”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에서 갈등이 생길 수 있습니다.” 안 그런 사람이 어디 있나. 심리학에서는 이걸 바넘 효과라고 부른다.

1949년에 심리학자 포러가 실험으로 확인한 현상인데,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모호한 말을 “나만을 위한 분석”이라고 믿는 경향이다(Forer, 1949, Journal of Abnormal and Social Psychology). 이별한 사람에게 “상대가 혼란스러운 상태”라고 말하면 안 맞을 수가 없다.

이별 직후에 혼란스럽지 않은 사람이 있나. “미련이 남아 있을 가능성”이라는 문장도 마찬가지다. “가능성”이라고 했으니 틀릴 수가 없는 말이다.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는 뜻이니까.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을 “당신만을 위한 맞춤 분석”이라는 포장지에 싸서 보내는 거다. 포장지에 퍼센트 숫자를 찍으면 과학처럼 보인다.


90%라는 숫자가 하는 일

87이든 92든, 높은 숫자가 찍혀 있으면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일이 있다. 그때부터 눈에 보이는 것만 보인다.

상대가 내 인스타 스토리를 봤다. “봐, 아직 관심이 있잖아.” 상대가 카톡 프로필 사진을 바꿨다. “내가 볼까 봐 신경 쓰는 거야.” 상대가 공통 친구에게 안부를 물었다.

“역시 나한테 미련이 있는 거지.” 87%라는 숫자가 머릿속에 박혀 있으니, 모든 행동이 재회의 신호로 읽힌다. 반대 증거는 자동으로 걸러진다. 상대가 읽씹을 해도, 만남을 거절해도, “지금은 아직 타이밍이 아니라서”로 해석된다.

확률 숫자가 없었으면 “거절당한 거구나”라고 받아들였을 상황을, “아직 과정 중”이라고 읽게 만든다. 숫자 하나가 현실 인식을 바꿔놓는 거다. 그리고 현실 인식이 바뀐 상태에서 다음 상담을 결제한다.


재회한 커플에게 실제로 일어나는 일

한 가지 더 얘기하고 싶은 게 있다. 설령 재회에 성공한다고 치자. 그다음은 어떨까.

헤어졌다 다시 만난 커플을 추적 조사한 연구들이 있다. 데일리 등의 2009년 연구(Dailey et al., Communication Monographs)에 따르면, 재회 커플은 쭉 사귄 커플에 비해 관계 만족도가 낮았고, “또 헤어지는 거 아닌가”라는 불안은 더 높았다.

한번 깨진 이유가 해결되지 않은 채 다시 만나면, 같은 문제가 다시 터진다. 연애의 문제는 대부분 구조적이다. 상대가 돌아왔다고 그 구조가 바뀌지는 않는다.

재회상담 업체가 팔지 않는 정보가 이거다. 재회 자체가 목표가 되면, “다시 만나기만 하면 행복해질 거야”라는 전제 위에 모든 게 세워진다. 그 전제가 맞는지를 묻는 사람은 없다. 업체도 묻지 않는다. 물으면 상품을 팔 수 없으니까.


숫자 하나에 매달리고 있다면

재회확률이라는 숫자는 당신의 상황을 분석한 결과가 아니다. 결제를 유도하기 위한 장치에 가깝다. 높은 숫자를 보여주면 희망이 생기고, 희망이 생기면 돈을 쓴다. 돈을 쓰면 그 돈이 아까워서 더 쓰게 된다.

지금 그 숫자를 붙들고 있다면, 한 가지만 자문해보면 된다. 이 숫자를 어떻게 계산했는지 설명해달라고 요청했을 때, “다년간의 노하우”가 아닌 구체적인 답이 돌아온 적이 있는지.

이별의 고통이 진짜인 만큼, 그 고통에 대한 도움도 진짜여야 한다.

By. 나만 아는 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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