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연합뉴스) 백나리 특파원 = 한 달에 한 번쯤 맥도날드 감자튀김을 사 먹으러 갑니다.
워싱턴DC 시내 한복판의 맥도날드 키오스크에서 감자튀김 메뉴를 눌렀는데 난데없이 두 종류가 뜹니다.
오른쪽 감자튀김은 보통 먹던 감자튀김입니다. 왼쪽 감자튀김 이미지엔 '라면스프'라고 한글로 적혀 있습니다.
뭔가 싶어 찾아보니 '케데헌 세트'가 한정판으로 새로 나왔습니다.
'사자보이스 세트'는 매콤한 사자소스를 얹은 맥머핀을 주는 아침식사용이라고 합니다. '헌트릭스 세트'엔 맥너겟에 매콤한 소스가 나오는데 라면스프맛 감자튀김도 같이 줍니다.
열살이 안됐을 것으로 보이는 딸과 함께 어느 흑인 아버지가 헌트릭스 세트를 먹고 있었습니다. 그 세트를 고른 이유가 있냐고 물으니 '왜일 것 같냐'고 웃으며 딸 쪽으로 눈짓을 합니다.
자전거 헬멧을 쓴 30대 중반의 백인 남성 제이슨도 헌트릭스 세트를 다 먹고 마침 포장 용기를 버리고 있었습니다. 케데헌의 엄청난 팬이라고 합니다.
3년의 워싱턴특파원 임기를 마치고 귀국했다가 4년 만인 지난 2월 다시 부임한 이곳에서 '세상이 변했구나' 싶은 일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전형적인 미국 음식을 파는 워싱턴 시내의 식당에 점심을 먹으러 갔더니 뭔가 익숙한 곡조가 흘러나왔습니다.
한영애의 '누구 없소'였습니다. 설마 한국 가요를 메들리로 틀어주나 했는데 다음 곡으로 대중음악의 팬이 아니어도 들으면 알 법한 '룰루스 백 인 타운(Lulu's Back In Town)'이 나왔습니다.
첫 임기 때도 화장품 체인 세포라나 대형 쇼핑몰에 가면 한국 아이돌 노래가 가끔 나왔습니다. 하지만 한영애의 '누구 없소'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노래들과 무심히 섞여 나오는 순간은 꽤 인상적인 장면으로 남았습니다.
아파트를 구하는 동안 호텔에 묵으면서 체크인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프런트에 건네주니 직원이 한국 여권인 걸 보더니 한국말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합니다.
열심히 배우는 건 아니고 취미로 한다고 합니다. 넷플릭스에서 한국 드라마를 여럿 봤다고 합니다.
자동차 검사 서류가 잘못되어서 새로 받으러 갔더니 직원이 점심을 한국 치킨집에서 먹었다고 아주 바삭하더라고 합니다. 서류를 받고 돌아서는 길에 역시 어안이 벙벙합니다.
불과 몇 년 만에 한국의 위상이 더욱 달라졌음을 일상에서 실감합니다. 미국에 거주하는 한국인이나 한국계는 이미 오래전부터 느꼈을 변화일 것 같습니다.
워싱턴에 돌아와 세상이 변했음을 가장 확실하게 알게 해 준 건 물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입니다.
두 번째로 지켜보게 된 트럼프 대통령은 협상 중이던 이란을 상대로 전쟁을 감행하고 상의도 안한 동맹에 호르무즈 해협 파병을 요구하는 등 스케일이 훨씬 커졌습니다. 위험도 보상도 큰 승부수가 될지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를 스스로 깨뜨리는 자충수가 될지 당장은 알기 어렵습니다.
수많은 미국인이 케데헌을 보며 울고 웃고 라면스프맛 감자튀김까지 사 먹을 수 있게 된 시절에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우선주의의 기치를 높이 들고 백악관에 앉아있는 것은 우연의 일치일까요.
다시 돌아와 만나는 보통의 미국인들은 대개 친절하고 다정하지만 미국의 패권을 중심으로 유지돼온 80년의 전후 질서에 중대한 격변이 일어나는 시절을 함께 지나고 있다고 생각하면 가끔은 모든 것이 낯설게 느껴집니다.
nar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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