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썰 / 임나래 기자] 정부가 주택 공급 속도전을 위해 내놓은 핵심 카드 ‘모듈러 주택’이 사면초가에 빠졌다. 공장에서 집을 찍어내 현장에서 조립하는 이른바 ‘조립식 주택’이 미래 건설 산업의 대안으로 떠올랐지만, 현장에서는 낡은 금융 관행과 칸막이 규제라는 이중고에 시도조차 못 하고 있기 때문이다.
◇‘30% 빠른 공기’ 무색케 하는 금융 문턱
모듈러 공법은 구조체와 전기·설비의 70~80%를 공장에서 미리 제작하는 방식이다. 기존 철근콘크리트(RC) 공법보다 공사 기간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어, 정부는 지난 1월 ‘2026 경제성장전략’을 통해 2030년까지 1만 6000호를 공급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그러나 민간 시장의 반응은 싸늘하다. 가장 큰 걸림돌은 자산 가치를 인정해주지 않는 금융권의 보수적인 잣대다. 현재 모듈러 주택은 별도의 감정평가 기준이 없어 대출 심사 시 담보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은행권에서는 분양이나 임대 수익을 기반으로 한 사업 전체를 담보로 보기보다, 단순히 토지 담보 위주로 심사한다”며 “모듈러만의 특수성을 반영한 평가 기준이 없다 보니 프로젝트파이낸싱(PF) 등 민간 자금 조달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업계 기득권 싸움에 멈춰선 ‘모듈러 특별법’
제도적 뒷받침도 실종된 상태다. 모듈러 공법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려면 공장에서 전기·통신·소방 공정까지 일체형으로 제작하는 ‘통합 발주’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현행법은 이들을 각각 분리 발주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공정 흐름을 끊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추진 중인 ‘모듈러 건축 활성화 특별법’은 업계 간 이해관계 충돌로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건설업계는 통합 발주를 요구하는 반면, 전기·통신업계는 업역 침해를 이유로 강력히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달 30일 열린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도 해당 법안은 안건으로조차 상정되지 못했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LH나 GH 같은 공공기관 위주로 사업이 돌아가는 이유는 결국 수익성을 보장할 환경이 안 돼 민간 시행사가 참여를 꺼리기 때문”이라며 “제도 정비 없이는 민간 확산은 요원하다”고 꼬집었다.
◇해외는 ‘40층 빌딩’ 짓는데…국내는 걸음마 단계
해외에서는 이미 모듈러 건축이 30~40층 고층 건물까지 올라서며 기술력과 상업성을 동시에 입증하고 있다. 반면 국내는 여전히 청년주택 등 공공 주도의 저층 임대주택 수준에 머물러 있다.
건설업계 다른 관계자는 “고층 모듈러 확산이 더딘 것은 기술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수익성과 규제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기 때문”이라며 “모듈러는 구조와 공정이 기존 방식과 완전히 다름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규제를 적용받는 것이 가장 큰 제약”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정부의 장밋빛 공급 대책이 구호에 그치지 않으려면 표준화된 가치 평가 기준 마련과 규제 혁신이 병행되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공급 혁신을 외치는 정부의 목소리가 낡은 규제의 틀을 깨지 못한다면, 모듈러 주택은 ‘미래형 주거’라는 수식어 속에 박제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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