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미국인 교황 레오 14세 '종교 동원하는 전쟁' 작심비판
돌직구 증가…"美국방부, 바티칸 대사 꾸짖으며 '아비뇽 유수' 운운"
(서울=연합뉴스) 김승욱 기자 = 교황 레오 14세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전쟁을 겨냥한 게 분명한 메시지를 냈다.
최초의 미국인 교황으로서 그간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직설적 비판에 신중했으나 이란과의 전쟁을 계기로 점점 태도가 변해가고 있다.
레오 14세는 10일(현지시간) 엑스(X·옛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하느님은 어떤 전쟁도 축복하지 않는다"며 "평화의 왕이신 그리스도의 제자라면 과거에 칼을 들었고 오늘날에는 폭탄을 떨어뜨리는 이들의 편에 서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군사 행동은 자유나 평화를 가져오지 못한다"며 "평화는 오직 공존과 대화를 끈기 있게 증진할 때만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레오 14세는 이날 발언에서도 특정 국가나 인물을 직접 거론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란과의 전쟁에 종교적 표현을 동원하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를 겨냥했다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하나님은 선하기 때문에 전쟁에서 우리 편에 서 있다"고 말했다.
피트 헤그세스 국방부 장관은 이번 충돌을 "하나님의 섭리 아래 수행되는 전쟁" 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수행되는 성전"으로 표현하는 등 종교적 수사를 사용해왔다.
특히 헤그세스 장관은 부활절 기간 이란에서 구조된 미군 조종사의 생환을 예수의 부활에 비유하며 "하나님은 선하시다"고 말하기도 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레오 14세가 종교를 전쟁 정당화 수단으로 끌어들이는 흐름에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다고 분석했다.
레오 14세는 같은 날 또 다른 글에서도 "기독교 동방의 성지에서 비인간적인 폭력이 확산하고 있다"며 "전쟁이라는 신성모독과 이익 추구의 잔혹함 속에서 인간의 생명은 부수적 피해로 취급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어린이와 가족 등 가장 약한 이들의 생명보다 가치 있는 이익은 없다"며 "어떤 명분도 무고한 피를 흘리는 것을 정당화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레오 14세는 미국 시카고 출신으로 가톨릭 역사상 첫 미국인 교황이다.
그는 작년 5월 즉위 이후 트럼프 대통령의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정책에 줄곧 비판적인 입장을 보였다.
레오 14세는 오는 7월 4일 미국 건국 기념 250주년 행사에 참석해달라는 트럼프 행정부의 요청도 거절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지난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대이란 공격 이후 지속해 전쟁 반대 입장을 밝혀왔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의 "이란 문명이 사라질 수 있다"는 발언에 대해서도 "진정으로 용납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또 가톨릭 신자들에게 정치 지도자들을 상대로 전쟁 종식을 촉구할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바티칸 측은 교황의 발언이 특정 인물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전쟁 자체를 정당화하는 논리를 문제 삼은 것이라고 애써 해명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가 이런 레오 14세를 상대로 노골적인 압박을 가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미국 매체 '더 프리 프레스'에 따르면 엘브리지 콜비 미국 국방부 정책담당 차관은 최근 이란 전쟁을 비판한 교황 레오 14세의 연설 직후 주미 교황청 대사인 크리스토프 피에르 추기경을 국방부로 불러 강하게 질책했다.
콜비 차관은 이 자리에서 "미국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군사력을 보유했다"며 "교회는 미국의 편에 서는 것이 좋을 것"이라 경고했다고 이 매체는 전했다.
회의에 참석한 관계자는 '아비뇽 유수'까지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비뇽 유수는 14세기 프랑스 왕정이 교황 보니파시오 8세에 대한 공격을 명령해 굴복시키고, 교황청을 로마에서 프랑스 아비뇽으로 강제 이전한 사건이다.
백악관은 트럼프 대통령과 레오 14세의 관계가 양호하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ksw08@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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