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설 배경: 88 올림픽의 야망과 우여곡절 끝에 탄생한 한국 야구의 거대한 유산.
- 중립구장: 전국 야구 팬들의 희로애락을 한데 모았던 한국 야구의 진정한 메카.
- 한 지붕 두 가족: 라이벌사의 궤적을 한 지붕 아래서 함께 그려온 기묘하고도 뜨거운 동거.
- 잠실의 먹거리 문화: 돔구장 시대에는 사라질, 노천의 개방감과 함께 즐기는 야구장 먹거리의 정점.
2026년은 서울 야구 팬들의 안식처였던 잠실야구장이 현재의 모습으로 관중을 맞이하는 마지막 해다. 2032년 신축 돔구장 준공을 앞두고, 내년부터 2031년까지는 인근 서울올림픽주경기장이 대체 홈구장의 역할을 수행하며 긴 공백기를 메울 예정이다. 지금의 잠실을 온전히 누릴 수 있는 마지막 고별 시즌을 기념하듯, 올해 KBO 리그 올스타전 역시 이곳에서 화려한 대미를 장식하게 된다. 40여 년간 쌓인 수만 명의 환호와 아쉬움이 이제 추억 속으로 사라지려 한다. 익숙했던 풍경들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기 전, 우리가 그토록 사랑했던 잠실야구장 속에 담긴 특별한 이야기들을 다시 한번 선명하게 짚어보려 한다.
사진출처: 서울시체육시설관리사업소
1. 잠실야구장의 건설 배경
잠실야구장의 시작은 프로야구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1976년 잠실 일대 종합운동장 건설 계획 수립 당시만 해도 야구장은 설계안에 존재하지도 않았다.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 유치 결정이 나고서야 비로소 구체적인 건립 계획이 세워졌으나, 이마저도 순탄치 않았다. 예산 부족과 야구의 올림픽 정식 종목 채택 실패라는 악재가 겹치며 계획 자체가 무산될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반전은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 야구가 시범 종목으로 재채택되면서 찾아왔다. 이를 기점으로 사업은 급물살을 탔고, 당시 기준 126억 원이라는 거액의 예산을 투입해 1982년 7월 마침내 완공되었다.
2. 중립구장의 기묘한 역사
1983년부터 2016년까지 잠실은 연고지 팬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한 번쯤 거쳐 가야 했던 ‘중립구장’이었다. 한국 야구 위원회(KBO)는 흥행 극대화를 위해 한국시리즈 5~7차전을 관중 수용 인원이 가장 많은 잠실에서 개최하는 규정을 두었다. 이 때문에 지방 구단들이 우승을 확정 지으려 서울로 상경하는 진풍경이 수십 년간 이어졌다. 2016년 이 제도가 폐지되기 전까지 잠실은 전국구 야구 팬들의 희로애락이 뒤섞이는 거대한 용광로와 같았다. 특정 팀의 홈그라운드를 넘어 한국 야구 심장부로서 군림했던 역사의 흔적이 이곳에 남아 있다.
사진출처: 서울시체육시설관리사업소
3. 한 지붕 두 가족: 1986년부터 시작된 공생
LG 트윈스와 두산 베어스의 ‘한 지붕 두 가족’ 생활은 198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원래 충청도를 연고로 창단했던 OB 베어스가 1985년 서울로 입성하면서, 원년 서울 팀인 MBC 청룡과 함께 잠실을 공유하기 시작한 것이 그 시초다. 이후 MBC가 LG에 인수되고 OB가 두산으로 이름을 바꾸는 격변 속에서도 두 팀은 라커룸과 필드를 철저히 나눠 쓰며 기묘한 공생을 이어왔다. 같은 구장에서 열리지만 응원석의 색깔에 따라 전혀 다른 공간으로 변모하는 잠실 더비는 전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문 진풍경이다. 라이벌 의식을 넘어 한국 프로야구의 흥행을 견인한 두 구단의 역사는 잠실이라는 공간 없이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사진출처: 서울시체육시설관리사업소
4. 잠실의 먹거리 문화
최근 야구팬들이 경기장을 찾는 이유는 단순히 승패 때문만은 아니다. 과거와 달리 다양해진 먹거리 덕분에 '야구장에 먹으러 간다'는 말이 자연스러울 정도다. 국내 최대 규모의 경기장답게 잠실야구장 내부는 BHC와 BBQ, 피자헛, 미스터피자, 죠스떡볶이 등 대형 프랜차이즈들이 즐비해 거대한 푸드코트를 방불케 한다. 향후 잠실 돔구장이 완공되면 쾌적함은 얻겠지만, 탁 트인 노천의 개방감 속에서 바람을 맞으며 음식을 즐기던 특유의 낭만은 사라질 것이다. 지붕 없는 잠실에서의 이 만찬은 어쩌면 올해가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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