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양정웅 기자) KBO 리그 33번째 대기록이 눈앞에 다가왔는데, 이를 포기하고 팀 승리를 선택해 울림을 준 선수가 나타났다.
박승규(삼성 라이온즈)는 10일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에서 열린 NC 다이노스와 2026 신한 SOL Bank KBO 리그 정규시즌 홈경기에서 1번 타자 겸 우익수로 선발 출전했다.
이날은 박승규의 시즌 첫 경기였다. 그는 지난해 8월 30일 대전 한화 이글스전에서 정우주의 투구에 맞아 오른손 엄지 분쇄골절 진단을 받았고, 결국 시즌아웃됐다. 수술 후 재활을 거쳐 223일 만에 그라운드에 섰다.
그동안 기다렸던 울분을 터트리려는 듯 박승규는 맹타를 휘둘렀다. 1회 첫 타석에서 그는 상대 에이스 구창모를 상대로 2구째 포크볼을 공략, 중견수 글러브를 맞고 나오는 타구를 날렸다. 박승규는 쉬지 않고 달려 3루타를 만들었고, 1사 후 최형우의 땅볼 때 득점에 성공했다.
이어 3회에도 무사 1루에서 6구 승부 끝에 패스트볼을 밀어쳐 우익수 앞에 떨어지는 안타를 기록했다. 다만 다음 타자 류지혁의 병살타 때 아웃되면서 점수는 올리지 못했다.
박승규의 방망이는 좀처럼 식을 줄 몰랐다. 5회 3번째 타석에서 그는 구창모의 초구 몸쪽 직구에 배트를 감아돌렸다. 이 타구는 계속 날아가 좌익수가 잡을 수 없는 외야 관중석 쪽에 떨어졌다. 비거리 120m의 솔로홈런으로, 삼성은 2-2 균형을 깨고 리드를 잡았다.
7회 3루수 땅볼로 물러난 박승규는 8회 다시 타석에 섰다. 4-4 동점을 허용한 삼성은 2사 후 강민호의 볼넷, 전병우의 내야안타, 김지찬의 볼넷으로 만루 찬스를 잡았다.
여기서 바뀐 투수 김진호를 상대한 박승규는 147km/h 직구를 통타, 가운데로 가는 큰 타구를 날렸다. 중견수가 워닝트랙까지 따라갔으나 다이빙 캐치에 실패했고, 주자 3명이 모두 홈으로 들어왔다. 박승규가 2루를 지나 3루까지 달렸다. 여유 있게 베이스에 도달한 박승규는 포효하며 기쁨을 표출했다.
그런데 더그아웃에 있던 동료들은 아쉬움을 표시했다. 심지어 이종욱 3루 코치마저도 박승규가 2루에 갔을 때 멈춤 지시를 내렸다. 경기 라디오 중계를 맡은 대구 지역방송사인 TBC의 김용국 해설위원은 "2루에 있어도 안타면 한 점 들어오는데, 말라꼬(뭐한다고) 3루까지 갔는고"라며 애정 섞인 너털웃음을 지었다.
박승규는 첫 3타석에서 3루타와 단타, 홈런을 차례로 기록했다. 2루타 하나만 추가하면 KBO 33번째 사이클링 히트(히트 포 더 사이클)를 기록할 수도 있었다. 산술적으로 1년에 한 번도 나오지 않는 업적이고, 특히 지난해에는 리그에서 단 한 번도 기록되지 않았기에 의미가 있었다.
만약 박승규가 기록을 달성했다면, 삼성은 두산 베어스와 함께 사이클링 히트 배출팀 공동 1위(6회)가 될 수 있었다. 1982년 오대석이 리그 최초로 이를 달성한 후, 양준혁이 1996년과 2003년 두 차례 성공했다. 2001년 매니 마르티네스, 2016년 최형우까지 5번의 기록이 나왔다.
그런데 동점 상황에서 3타점 적시타를 터트리고 추가점을 위해 자신의 기록을 포기한 것이다. 박승규는 자신의 바람대로 다음 타자 류지혁의 2루타 때 홈을 밟아 추가점을 올렸다.
물론 2아웃에서는 주자들이 스타트를 빨리 끊는 편이기에 적시타를 기다린다면 2루에만 가도 되는 상황이다. 하지만 폭투나 보크 등 여러 상황이 나올 수 있기 때문에 팀을 위했다면 박승규의 선택이 옳았던 것이다.
이를 알았던 것일까. 득점 후 더그아웃에 돌아온 박승규에게 박진만 삼성 감독이 직접 다가가 하이파이브를 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감독 입장에서 사랑스러울 수밖에 없는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삼성은 앞선 경기인 9일 광주 KIA 타이거즈전에서 5-15로 대패했다. 선발 이승현(좌완)이 2⅔이닝 12실점으로 크게 무너지면서 일찌감치 가라앉은 분위기 속에 승부를 내주고 말았다. 자칫 연패로 이어졌다면 부정적인 영향이 올 뻔했지만, 박승규의 활약 속에 삼성이 8-5로 승리하며 이를 차단했다.
이날 박승규는 5타수 4안타 4타점 3득점을 기록했다. 개인 한 경기 최다안타, 타점 기록을 세울 정도로 그야말로 '인생경기'를 펼쳤다.
경기 후 방송사 중계 인터뷰에서 박승규는 "2루타가 될 수 있는 상황이라도 3루 갈 수 있으면 언제든 가려고 타석에서 준비했다"고 밝혔다. 그는 "개인 기록이 영광스러운 일이지만,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소신을 밝혔다.
경기고 졸업 후 2019년 삼성에 입단한 박승규는 이듬해 1군 91경기에서 타율 0.258, 1홈런 14타점으로 많은 기회를 받았다. 수비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이며 미래 주전 외야수로 주목받았다. 상무 야구단 입단 후 2023년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APBC) 대표팀에도 뽑혔다.
지난해 복귀한 박승규는 64경기에서 타율 0.287(174타수 50안타), 6홈런 14타점 39득점으로 컴백을 알렸다. 불의의 부상만 아니었다면 포스트시즌에서도 요긴한 쓰임새를 보였을 선수였기에 아쉬움은 컸다.
지난해 주장 구자욱은 박승규에 대해 "우리 팀에서 정말 열심히 한 선수가 누구냐고 물으면 바로 나오는 선수가 박승규다. 어릴 때부터 정말 열심히 하고, 야구에 대한 욕심도 있고, 경기장에서 하는 플레이들이 다른 선수들에게 큰 울림을 주는 선수"라고 말했다.
이어 "정말 열심히 하는 선수가 다치니까 마음이 안 좋았다. 승규가 워낙 정신력이 강해서 뼈가 부서졌는데도 자기는 하겠다고 했다"며 "너무 아쉽다. 올 시즌은 복귀하기 어렵겠지만, 다음 시즌에는 얼마든지 좋은 활약을 할 선수이기 때문에 빨리 나았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그리고 이런 평가에 부응하듯 박승규는 복귀 첫 경기부터 '팀 퍼스트'를 보여주며 자신이 어떤 선수인지를 보여줬다.
사진=삼성 라이온즈
양정웅 기자 orionbear@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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