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선 독성이 있는 식물로 여겨 좀처럼 먹지 않지만, 제주에선 4월만 되면 들판과 중산간으로 사람들이 몰리는 나물이 있다.
지난해 4월 제주 서귀포시 남원읍 일원에서 열린 제29회 한라산 청정 고사리 축제장에서 방문객들이 고사리를 꺾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 뉴스1
비만 한 번 내려도 금세 통통하게 올라오고, 제철이 지나기 전에 서둘러 꺾어야 해 이맘때 제주에선 “지금 아니면 늦는다”는 말까지 나온다. 정체는 바로 고사리다. 제주에선 봄맛을 대표하는 식재료로 통하고, 관광객들 사이에서도 “제주 가면 꼭 먹어봐야 할 음식”의 핵심 재료로 꼽힌다. 해외에선 잘 먹지 않는데, 제주에선 없어서 못 먹는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외국에선 안 먹는데…제주에선 4월만 되면 들판으로 몰린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제주에선 봄이 오면 가장 먼저 “고사리철”이 시작된다. 고사리는 4월 전후 비가 내려 땅이 촉촉해지면 빠르게 물이 오르고, 연하고 부드러운 상태로 자라난다. 이 시기를 놓치면 잎이 펴지고 줄기가 질겨져 맛이 떨어지기 때문에 제주 사람들은 지금이 가장 좋은 때라고 본다. 이미 한 번 꺾은 자리도 비가 내리고 나면 다시 새순이 올라와, 고수들은 비 온 뒤 타이밍을 놓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 실제로 제주 주택가나 아파트 단지 주변에서는 삶은 고사리를 널어 말리는 풍경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만큼 고사리는 제주 봄 밥상에서 빠질 수 없는 재료다.
완전 무장 후 제주 고사리 꺾기 / 뉴스1
특히 제주 고사리는 전국에서도 맛 좋기로 유명하다. 통통하고 부드러운 식감이 강점이고, 예전에는 ‘궐채’라 불리며 임금에게 올리는 진상품으로 여겨졌을 정도다. 그래서 제주에선 고사리를 단순한 산나물이 아니라, 봄에만 맛볼 수 있는 귀한 식재료로 받아들인다. 해외에선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식물이 제주에선 “없어서 못 먹는 나물”이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냥 먹는 게 아니었다…한국만의 손질법이 만든 봄 별미
고사리 육개장 / 연합뉴스
고사리가 더 흥미로운 이유는 맛과 영양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외국에서는 고사리를 독초처럼 여겨 먹지 않는 경우가 많다. 반면 한국은 오래전부터 산나물을 먹어오며 독성과 쓴맛을 줄이는 조리법을 발전시켜 왔다. 식품의약품안전처도 식용 산나물이라 해도 식물 고유의 독성 성분이 미량 있을 수 있어 조리 전 사전 처리가 필요하다고 안내한다. 제대로 손질하지 않으면 복통, 어지러움, 구토 같은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그래서 고사리는 꺾어온 뒤 바로 먹지 않는다. 푹 삶아 독과 쓴맛을 빼고, 이후 나물로 무치거나 여러 음식 재료로 사용한다. 말리거나 얼려 두었다가 제사나 명절 음식에 쓰기도 한다. 제주에서는 고사리 육개장이 대표적이다. 돼지고기 육수에 잘게 찢은 고사리와 돼지고기를 넣고, 메밀가루를 풀어 걸쭉하게 끓여내는 음식인데, 제주 특유의 진하고 깊은 맛을 잘 보여주는 메뉴로 꼽힌다. 돼지고기를 구울 때 고사리나물을 함께 구워 먹는 방식도 별미로 통한다. 결국 외국에서는 먹지 않는 식물이, 한국 특히 제주에서는 한 끼를 완성하는 핵심 반찬이자 별미가 되는 셈이다.
귀한 나물이지만 매년 사고도 난다…제주가 4월마다 긴장하는 이유
제주 고사리 / 제주관광공사 제공, 연합뉴스
다만 고사리철이 반가움만 주는 건 아니다. 제주에선 해마다 고사리를 꺾으러 갔다가 길을 잃는 사고가 반복된다. 고사리가 많이 나는 중산간 숲은 사람이 들어가기 쉽지 않은 곳이 많고, 휴대전화가 잘 터지지 않는 지역도 적지 않다. 문제는 고사리를 찾다 보면 허리를 숙인 채 바닥만 보게 된다는 점이다. 정신없이 꺾다가 뒤늦게 고개를 들었을 때 자신이 어디쯤 와 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생기기 쉽다.
실제로 제주도 소방안전본부는 매년 이 시기 길 잃음 안전사고 주의보를 발령하고 대응을 강화한다. 최근 5년인 2021년부터 2025년까지 제주에서 발생한 길 잃음 안전사고는 총 558건이다. 이 가운데 60.5%가 봄철인 3~5월에 집중됐고, 특히 4월에만 38.7%가 몰렸다. 사고 유형별로 보면 고사리 채취 중 발생한 길 잃음 사고가 41.6%로 가장 많았다. 사람이 접근하기 힘든 지역이 많아 수색과 구조, 순찰에 드론과 구조견까지 투입되고 있다.
제주 고사리 채취 길잃음 사고 주의 안내 표지판 / 연합뉴스 자료사진
그래서 고사리를 꺾으러 갈 때는 반드시 일행과 함께 움직이고, 휴대전화와 보조배터리, 호각, 물, 비상식량, 손전등, 우의 같은 기본 장비를 챙겨야 한다. 채취 도중에도 수시로 위치를 확인하고 너무 깊은 곳까지 들어가지 않는 게 중요하다. 봄 제주를 대표하는 귀한 나물 고사리. 맛과 풍미, 계절감은 분명 특별하지만, 그만큼 안전까지 함께 챙겨야 제대로 즐길 수 있는 제주의 봄맛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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