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술, 낭독>의 이정화, 이한솔, 신새벽과 나눈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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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술, 낭독>의 이정화, 이한솔, 신새벽과 나눈 대화

더 네이버 2026-04-10 21:39:58 신고

3줄요약

(왼쪽부터) 이한솔, 신새벽, 이정화 작가.

출판계 인기 유튜브 채널 <민음사TV>에 2024년 2월 민음사의 한 사내 모임이 소개됐다. 이름은 ‘낮술낭독회’. 편집자들이 주축이 된 모임으로, 함께 낮술을 마시며 문장을 낭독하는 장면이 영상에 담겼다. 지적이고 편안한 대화에 감화된 구독자들은 “나도 이런 모임 갖고 싶다”는 댓글을 줄줄이 남겼다. 그로부터 근 2년이 지난 2025년 12월, 낮술낭독회 구성원 중 이정화, 이한솔, 신새벽 편집자가 모임 경험을 엮어 에세이집 <낮술, 낭독>(세미콜론)을 펴냈다.
이들은 일반 직장과 달리 ‘예의 있는 반말’, 즉 평어를 사용한다. 경어 대신 친밀한 반말로 대화를 나누고, 직함이 아닌 서로의 이름을 호명한다. 낭독이라는 행위와 평어의 도입은 ‘차장님’, ‘대리님’으로 부르던 동료 관계에 변화를 가져왔고, 이들을 회사 밖으로 이끌었다. ‘회사 동료도 친구가 될 수 있을까?’ 묻는다면 이들은 예사롭게 고개를 끄덕일 테다. 그러니 <낮술, 낭독>은 연결되고자 하는 이들은 결국 이어지고야 만다는 낙관적 운명론의 증거다.
낮과 술, 책까지, 아름다운 것들을 매개로 새로운 관계를 욕망하게 만드는 에세이의 세 저자를 낮술자리로 초대했다. 장소는 통창으로 한강이 내다보이는 세빛섬의 레스토랑 무드서울. 봄볕이 길게 드는 어느 오후, 와인을 가운데 두고 모여 앉았다. 경쾌한 산미와 과실, 브리오슈 향의 조화가 돋보이는 샴페인 ‘폴 당장 뀌베 47 브뤼’로 잔을 채운 뒤 와인잔이 맞부딪치는 소리를 신호 삼아 대화를 시작했다. 

이 책이 탄생한 과정에 대해 이야기해볼까요. 시작은 이정화 편집자였다고요.
정화 낮술낭독회가 시작된 2017년은 프리랜서로 미술계 일을 많이 하던 때였어요. 그러다 미술계 사람들과 세운상가에 ‘서울팩토리’라는 전시 공간 겸 스튜디오를 열었고요. 전시가 없는 날에는 이곳에서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 낮술을 마시며 낭독을 하면 좋겠다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어요. 그래서 신새벽 편집자, 김현주 큐레이터에게 먼저 연락을 했죠. 이후 출판계 일이 늘어나고 교류하는 멤버가 많아져 어느새 출판 편집자가 중심이 되었어요. 낮술낭독회를 7년 가까이 이어왔으니 내놓을 이야기가 있을 것 같다는 게 책의 출발점이었어요. 세미콜론 김지향 편집자와 밥을 먹다 ‘기획안 드려볼까요?’ 한 것이 2년 전이네요.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시점에 구체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했어요.


어쩌다 1년이나 걸렸나요?
정화 편집자에게 책을 만드는 건 일이잖아요. 그래서 일 같지 않게, 자연스럽게 흘러갔으면 하는 마음이 컸어요. 
새벽 정화가 책의 아이디어를 품고 있을 때부터 많은 대화를 나눴어요. 편집자로서 책 만드는 일이 얼마나 품이 드는지 알고 있으니, 사적인 모임 일화를 꺼내놓기 조심스러웠죠. 하지만 저는 어떤 제안을 받으면 대부분 하는 편이라, 이야기를 듣고 1초 만에 ‘나는 좋아’ 하고 수락했어요. 정화가 채근하는 성향이 아니라 제가 행동 대장 역할을 맡았고, 이후 한솔이 세 번째로 참여를 결정했어요.
한솔 떠오르는 장면이 하나 있어요. 2025년 3월쯤 육아휴직 중이던 저희 집으로 두 사람이 킥 오프 회의를 하자고 찾아왔어요. 한 손에 아이를 안고 각자 써온 샘플 원고를 낭독했어요. 친구를 만들 수 없다고 생각하는 곳에서 친구를 사귀고 가까워질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가 세상에 필요하다는 합의가 그날 생겨났어요. 저희끼리 “너무 괜찮다”면서 칭찬했죠(웃음).
정화 당시 가장 큰 고민이 두 가지였어요. 모임이 7년이나 이어져온 건 그만큼 멤버가 소중하고 모임이 즐겁다는 의미잖아요. 그것을 계속 이끌어가는 방향에서 출간이 가능할까? 두 번째는 독자에게 전할 이야기가 있을까? 우리는 즐겁지만 다른 사람들이 좋아할지 고민이었는데, 당시 <민음사TV>에 저희 모임이 소개됐어요. 시청자들의 반응에 힘을 얻었어요.


한 명 한 명 넌지시 제안한 끝에 지금의 멤버가 모였습니다. 특별한 영입 조건이 있다면요?
정화 제가 누군가에게 손을 내미는 기준은 두 가지였어요. 직관적으로 ‘이 사람은 괜찮을 것 같다’는 느낌. 그리고 상대가 적극적으로 궁금해하며 질문을 던지면 ‘잡았다!’ 하며 끌어들이죠(웃음).


낮술낭독회를 시작하고 어떤 문장을 만나면 구성원이 떠오를 것 같은데요. 모임으로 인해 독서 경향이 어떻게 변화했나요?
새벽 편집자로서 참고용으로 읽는 책, 혼자 궁금해서 읽는 책이 달라요. 일하기 시작한 초반에는 뚜렷하게 나뉘어 있었어요. 일을 위해 읽는 책 때문에 다른 책까지 싫어지는 시기가 오더라고요. 그러다 낮술낭독회를 만나 조금씩 변화했어요. ‘새벽은 이 책을 좋아하는구나’ 하는 타인의 인정이 나를 나 자체로 존재하게 했어요. 그 과정에서 책과의 관계도 회복했고요. 이제는 좋은 책을 읽다 보면 멤버들 얼굴이 떠오르고, 정화와 한솔이 어떤 반응일지 보고 싶어져요. 아름다운 걸 접하면 꼭 나누고 싶잖아요. 
정화 해외 고전문학 편집자라 평소에 문학 위주로 읽게 돼요. 상대적으로 다른 책을 찾아보거나 읽을 여유가 없는데 낮술낭독회에서 인문서나 그림책 등 여러 장르의 새 책을 접하는 점이 좋아요. 독서 편향을 줄일 수 있고요. 그렇게 문학 안에 인문학이 있고, 인문학 안에 문학이 존재한다는 걸 깨달았어요. 언어는 상통하고 모든 이야기는 연결성이 있으며, 내가 탐독해야 할 책과 그 안에서 발견할 것이 여전히 많다는 사실을 느껴요.
한솔 세상에 책이 너무나 많고 다 알 수도 없는데, 낭독회에서 시간을 들여 귀 기울여 듣다 보면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책을 만나곤 해요. 실제로 그렇게 읽은 책도 많고요. 

(왼쪽부터) 샴페인 폴 당장 뀌베 47, 안티노리 구아도 알 타소 베르멘티노 2023, 캔달 잭슨 빈트너스 리저브 샤르도네. 


‘나도 이런 모임을 갖고 싶다’는 반응이 눈에 띄어요. 다만 비교적 수평적이고 동질적인 문화를 공유하는 출판계의 특수성이 존재하잖아요. 이 같은 모임을 위한 조건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정화 조직에서 의무적으로 이런 모임을 해야 한다면 저희를 꼭 불러주세요. 노하우를 직접 전수하겠습니다(웃음).
한솔 출간 후 북토크에서 모임을 해봤다는 독자가 꽤 있었어요. 그분들은 회사 동료든 동네 친구든 따로 시간을 내서 만나는 관계가 형성되어 있었고, 새로운 콘텐츠로 낮술 낭독을 시도했다고 해요. 이미 할 수 있는 분들이 도입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정화 처음 낮술낭독회를 만들어 리드하는 입장이었을 때 부담 없고 편한 게 우선이었어요. 그러려면 동등하다는 느낌이 중요해요. 편하게 이야기해도 눈치 보이지 않도록 서로 절제하되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즐길 수 있어야 하고요. 각자 원하는 자유로움의 조건이 다를 수 있는데, 동등함의 감각을 맞춰가는 것도 노력의 일환이라고 생각해요. 이를테면 한솔에게는 대리님이라는 직함을 떼고, 새벽에게는 ‘파괴적 음주’를 허용하는 거죠(웃음).
새벽 멤버들의 글을 통해 낭독회를 미적으로도, 즐거움의 영역으로도 볼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어 새로웠어요. 제게는 의미를 찾고 진지한 대화를 나누는 자리가 필요했어요. 일뿐만 아니라 삶과 통하는 자리가 마련된다면 자기 완성에 가까워지리라는 이상이 있었던 거죠. 왜 동료들과 토요일에도 만나 울고 웃냐고 묻는다면, 추구하는 무언가가 있다고 답하겠어요. 이 책을 읽고 공감하는 독자들도 비슷한 이상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한 의미를 찾고 싶다는 마음이 요건 중 하나겠네요.
정화 돌아가며 낭독하다 보면 우리가 의미 있는 존재로 여겨지는 순간이 있어요. 평소에 조용하던 사람이 용기 내어 풀어질 때나, 낭독을 멋지게 했을 때 빛나 보이더라고요. 이런 지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도 있겠어요.


이한솔 편집자는 상사인 신새벽 편집자의 제안으로 처음 모임에 참석했다고요. 모임에서 기대한 바를 찾았나요?
한솔 입신양명을 꿈꾸며 참석한 건 아니지만 회사에 적응하는 데 큰 도움이 됐어요(웃음). 처음 입사했을 때부터 새벽이 저를 잘 챙겨주고 많은 걸 물어봤어요. 좋아하는 작가나 감독이 누구인지, 최근 인상 깊게 읽은 책이 무엇인지, 석사 논문 주제는 무엇이었는지. 선뜻 입을 열기 어려웠지만 이 사람이 나와 가까워지고 싶어 한다고 느꼈기에 모임에 초대받았을 때 참여할 수 있었어요. 사회 생활에서 누군가에게 관심 갖기 어려운데, 서로를 알아가는 자리로서 의미가 컸어요.
정화 어느새 상호 돌봄이 가능해진 것 같아요. 말하고 싶을 때 질문해주면 반갑잖아요. 서로를 궁금해하고 물어보며 갑갑한 현실에 잠시 쉬는 것처럼 돌봄이 이뤄져요.


모임 중 서로 대립한 에피소드가 등장하기도 해요. 그만큼 친밀한 관계라 솔직하게 터놓을 수 있었겠죠?
정화 인문학과도 관련이 있어요.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했는데, 철학과 수업에서는 어떤 명제에 대해 끈질기게 논쟁하고, 그게 술 자리까지 이어져 밤새 격렬하게 이야기를 나눠요. 논쟁에 반박한다고 해서 존중하지 않는 것이 아니거든요. 하지만 사회 생활에서는 그러한 태도가 무례하다고 오해받기도 해요. 끝까지 가지 않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하죠. 일종의 거리 조절을 요청하는 건데, 동의하지 않는 바는 아니지만 지나치게 조심하며 검열하다 보면 진솔함과는 거리가 멀어져요. 가식적인 태도를 보이거나 불편해질 수 있고요. 낮술낭독회 자리에서 동의하지 않는 점을 끝까지 치열하게 물고 늘어지기도 하지만, 안 보는 사이는 절대 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형성되었어요. 생각이 달라도 서로의 이야기를 궁금해하리라는 믿음이요. 과감하게 속내를 꺼내면 당황할 수 있지만 적어도 ‘그렇구나’ 동의하는 공감의 코드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태도를 취하려 노력했기에 오래 갈 수 있었어요.
새벽 회사에서 만났지만 가족 같은 조직이라거나 한 배를 탄 사이라고 외치는 회식 자리의 무리 짓기와 낮술낭독회의 차이점이 무엇이냐면 ‘시민됨’이라고 할까요. 시민이나 지식인에게는 다른 의견을 듣고 영향 받는 태도가 필요해요. 의견이 다르다고 해서 단절하거나 퇴출하지 않는 자리를 만드는 하나의 방식이기도 하고요. 친구냐 적이냐 하는 흑백논리에 빠지지 않으면서 대등하게 나누는 민주적 대화는 책을 만들 때도 무척 중요해요. 곁의 사람과 그런 관계를 맺고자 하는 게 우리의 바람이죠.
한솔 저는 기질 문제가 크다고 생각해요(일동 웃음). 어떤 사안에 견해를 가지지 않을 수도 있잖아요. 회색분자라기보다, 우리의 삶이 회색이고 가끔 진한 영역이 있다고요. 농담과 음영이 뚜렷한 이들은 끝까지 가고 싶다면 그래도 되고, 저는 ‘또 싸우는군’ 하죠.
새벽 그게 한솔의 멋진 점이에요.
정화 제 연령대에서 이런 쓴소리는 축복이에요. 또래 모임의 우아한 가식이 깃든 대화에서 거리 둘 수 있는 것도 멤버들의 도움이 컸어요.
새벽 ‘또 저러네’ 하는 구경꾼의 존재도 정말 중요하거든요. 한국에 방문한 외국 민속학자가 한국 사람들은 동네에서 싸운다는 사실에 주목했어요. 밀실에서 두 사람이 싸우면 위험한데, 저잣거리에서 싸움이 났을 때 사람들이 거드는 행위가 갈등을 해소하고 긴장을 낮춘다고요. 한솔 같은 멤버가 있어서 의견 차이나 힘든 감정도 잘 넘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낮술낭독회가 “이 책을 쓰고 나서 전과 같을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고요. 출간 이후 어떤 점이 달라졌나요?
새벽 지난 2월에 한 번 모임을 했어요. 정화와 저, 대담에 참여한 세영(김세영 민음사 편집자), 에필로그를 쓴 은(조은 마티 편집자)까지 네 사람이 만났어요. 사실 머쓱하기도 하고 책을 쓴 뒤에도 예전 같은 모임이 가능할지 걱정이 컸어요. 막상 모이니 오랜만이라 무척 반가웠고, 글이라는 맥락이 하나 더 생겼음을 느꼈어요. 서로를 깊이 이해한 상태에서 이야기를 주고받았죠. 저는 평소보다 자제하기도 하고, 배려를 많이 하던 친구가 비판적인 의견을 말하는 등의 변화가 있었어요. 조심스럽게 반박도 하며 토론했던 충만한 시간이었어요.
정화 책을 낸 뒤 확실히 변화를 느껴요. 예전에는 분위기가 어색해지지 않도록 제가 의식적으로 말을 많이 하고 농담을 던지는 편이었거든요. 이제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는 게 신기해요. 지금껏 할 말을 많이 했으니 앞으로는 더 경청해야겠다 싶어요.   

세 저자가 낭독한 문장

“작은 사람은 집으로 돌아가 한껏 웃음을 띠고 한껏 행복해하며 설거지를 마쳤어요. ‘사람을 영원히 바꿔 놓는 그런 날들이 있어’ 하고 생각했어요.” 
-키티 크라우더 저, 이주희 역 <작은 사람과 신> (논장)

한솔 좋아하는 작가의 그림책을 가져왔어요. 작은 사람 테오와 신이 하루를 보낸 뒤 영원히 바뀌었다고 말하지만 거창한 일이 있었던 게 아니에요. 함께 산책하고 물놀이하고 오믈렛을 만들어 먹은 일이 전부죠. 친구에 대한 이야기이고, 책을 낸 경험에 대한 우화 같아서 이 문장을 골랐어요.

“… 낮술낭독회라는 느슨한 연대 안에서 서로에게 다정한 서술자였다. 그래서 이래서 이러니 저래서 저러니에 연연할 필요없다. 마시면 그뿐, 읽으면 그뿐, 낭독하면 그뿐, 들어주면 그뿐 아닌가.” 
-<낮술, 낭독> 58쪽
새벽 이 문장이 가장 정화답다고 생각해서 좋아해요. 구체적으로 계획 세우고 따지고 걱정하고 전전긍긍하지 말고 대충하자! 그냥 낭독하고 듣자는 거죠.

“배우에게 몸에 힘 빼기를 강조하듯 낭독에도 몸에 힘 빼기가 수반된다. 삶에 대한 자각이란 나 밖에서 나를 바라볼 때 비로소 솔직해지고 선명해진다. 그러니 낭독! 더불어 낮술을 권한다.” 
-<낮술, 낭독> 290쪽
정화 김현주 큐레이터가 쓴 프롤로그의 마지막 부분인데, 큰 위로를 받았어요. 이 글과 더불어 예전에 번아웃으로 힘들어할 때 좋아하는 선배가 말했어요. 오늘만 살아보라고. 돌이켜보면 이런 말들이 도움이 되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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