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전통주를 찾아서] '평양서 서울까지' 5대가 지켜온 술…문배주에 남은 긴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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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전통주를 찾아서] '평양서 서울까지' 5대가 지켜온 술…문배주에 남은 긴 시간

뉴스컬처 2026-04-10 18:57:5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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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배주 양조원 대표 이기춘 명인. 사진=문배주양조원 홈페이지 캡쳐
문배주 양조원 대표 이기춘 명인. 사진=문배주양조원 홈페이지 캡쳐

 

[뉴스컬처 이상완 기자] 문배주는 평안도 지방서 전해 온 술이다. 이름도 술 향에서 왔다. 잔을 가까이 대면 문배나무 열매 냄새를 닮은 향이 퍼진다고 해서 문배주라 불린다. 해방 전 북한 평양 대동강 유역 석회암층 지하수를 썼다. 원료는 밀, 좁쌀, 수수다. 누룩 주원료는 밀이다. 술빛은 옅은 황갈색 쪽에 가깝다. 증류와 숙성을 마친 뒤 도수는 48.1도까지 오른다. 또 문배주를 방향주라고 한다. 곡자 냄새보다 과실 향이 먼저 선다는 말이다. 문배는 우리 땅에서 자생하는 토종 돌배다. 일반 배보다 조직이 단단하고 향도 더 독특하다. 문배주는 메조와 차수수, 물, 누룩만 써서 빚는다. 곡물만으로 배꽃 같은 향을 끌어낸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문배주는 다른 증류주와 또렷이 갈린다.

◇평양 양조장에서 시작해 서울 양조원까지

문배주는 본래 평양서 빚었다. 뒤에 서울로 옮겨와 맥을 이었다. 양조장 가업을 이어받은 3대 이경찬 옹이 남하 뒤 서울에 자리 잡아 집안 비법을 지켜 왔다. 지금 알려진 문배주의 계보도 이 흐름 위에 있다. 한 고장 술에 그치지 않고 국가 행사와 만찬 자리에도 자주 올라 충남 당진 면천두견주, 경주 교동법주와 함께 '3대 국주’라고 불린다. 집안 전승 기록도 비교적 또렷하다. 2대 이병일 옹은 1946년 평양 평천양조장을 세워 문배술을 생산했다. 3대 이경찬 옹은 부친한테 제조 기술을 물려받아 평양서 생산을 이어갔다. 1950년 전쟁이 터진 뒤 남하했고, 1954년 서울서 ‘거북선’이란 이름을 걸고 문배술을 다시 냈다. 하지만 양곡관리법 탓에 곡식으로 만드는 술 생산이 묶이면서 다시 멈춰 섰다. 문배주는 전쟁과 제도 변화라는 큰 파도를 두 차례 건너온 술이다.

◇메조 밑술, 차수수 덧술…손이 길게 가는 술

문배주를 더 특별하게 만드는 대목은 공정이다. 오늘날 전통주 가운데 조와 수수를 함께 쓰는 경우가 드물다. 잡곡만 써서 삼양주법으로 빚은 뒤 다시 증류까지 거치는 소주도 문배주가 거의 유일하다. 멥쌀이나 찹쌀 대신 메조와 차수수가 앞에 선다. 재료 조합부터 이미 흔치 않다. 제조법은 길고 세밀하다. 첫 단계는 밑술이다. 깨끗이 씻어 불린 메조로 고두밥을 짓고 차게 식힌 뒤 누룩물을 섞어 독에 안친다. 이렇게 닷새가량 발효시킨다. 그다음 차수수 고두밥을 지어 식힌 뒤 밑술에 넣고 저어 술밑을 만든다.

다음 날 다시 같은 재료와 같은 양의 고두밥을 지어 한 차례 더 덧술을 한다. 두 차례 덧술을 거친 뒤 깨끗한 술항아리에 담아 열흘 남짓 발효시키면 청주 상태의 문배주가 얻어진다. 그 뒤 가마솥에 술덧을 붓고 소줏고리를 얹어 장작불을 약하게 지피며 천천히 증류한다. 증류 뒤 곧바로 마시는 술도 아니다. 다시 술독에 담아 어두운 데서 6개월에서 12개월쯤 묵혀야 제맛과 향이 오른다.

문배술. 사진=문배주양조원 홈페이지 캡쳐
문배술. 사진=문배주양조원 홈페이지 캡쳐

 

기나긴 공정이 향과 맛을 만든다. 40도 문배술은 배, 사과, 과실 꽃 향이 먼저 오고, 뒤에는 카르다몸, 정향, 팔각 같은 향신료 결이 붙는다. 한 모금 넘기면 뜨거운 생강맛과 구수한 수수향도 따라온다. 때문에 중국 냉채류, 차갑게 식힌 제육, 홍어무침, 대창순대 같은 음식과 잘 맞는다. 23도, 25도 제품은 향이 더 은은하다. 흰살생선, 방어, 참치 뱃살, 굴, 새조개, 남도 음식까지 폭넓게 곁들일 수 있다.

◇끊겼다가 다시 살아난 계보

문배주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1980년대가 큰 고비였다. 1986년 이경찬 옹은 중요무형문화재 제86-가호 향토술 담그기 ‘문배술’ 기능보유자 지정 명단에 올랐다. 1990년에는 정식 제조 허가를 받아 서울 연희동서 양조원을 다시 세웠다. 현재 문배주양조원 대표이사이자 4대 이기춘 명인은 1987년부터 부친한테 기술을 전수받았아. 1995년 중요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와 농림부 전통식품명인 제7호 이름을 함께 올렸다. 지금은 5대에 걸쳐 맥이 이어지고 있다. 술 한 병 뒤에 전승 계보가 길게 놓여 있다.

원료 관리 방식도 계보를 받친다. 문배주양조원은 찰수수와 메조를 자체 생산과 계약재배로 확보한다. 공장 주변 약 4천 평 부지에는 해마다 찰수수와 메조를 직접 심고 거둔다. 강원, 충북 일대 작목반과 영농조합을 통한 수매 구조도 따로 갖췄다. 술맛만 챙기는 데서 멈추지 않고, 곡물 생산과 유통까지 같이 엮어 관리해 온 셈이다.

◇남북정상회담 만찬주가 된 평양 뿌리의 술

문배주가 널리 알려진 계기 가운데 하나는 남북 회담이었다. 1990년 남북 총리급 회담 만찬 자리서 북측 인사들이 문배술을 맛본 뒤 관심을 가졌다. 이후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 때는 우리 측 공식술로 올랐다. 2018년 남북정상회담에도 만찬주로 올랐다. 2004년 남북 장성급회담 때 북측 대표단이 점심 반주로 문배술을 먼저 제안했다는 일화도 남아 있다. 평양에 뿌리를 둔 술이 서울서 다시 빚어져 남북이 마주 앉는 자리에 오른 장면은 문배주 역사에서 빼기 어렵다. 문배주는 남북회담뿐 아니라 국가 중요행사에도 자주 올랐다. 국빈 접대용 술이라는 말이 붙는 까닭이다. 이름과 향, 전승 계보, 평양서 서울로 이어진 내력, 회담장에 오른 기록이 겹치면서 문배주는 전통 증류주 가운데서도 강한 기억을 남긴다.

전통방식으로 문배주를 빚는 3대 故 이경찬 옹. 사진=문배주양조원 홈페이지 캡쳐
전통방식으로 문배주를 빚는 3대 故 이경찬 옹. 사진=문배주양조원 홈페이지 캡쳐

 

문배주는 한 줄 설명에 잘 들어가지 않는 술이다. 평양 대동강 물길서 시작됐고, 전쟁 뒤 서울서 다시 일어선 양조원. 메조와 차수수만으로 배꽃 향을 끌어내는 공정과 20여 년 생산 중단 뒤 다시 살아난 계보가 있다. 정상회담 만찬 자리, 중요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 식품명인 7호 기록까지 한 병 안에 겹친다. 오래된 술이란 말만으로는 다 담기지 않는다. 문배주는 한국 전통 증류주가 지나온 시간을 꽤 진하게 남긴 이름이다.

뉴스컬처 이상완 bolante4842@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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