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여론 안팎에선 시행 한 달째에 접어든 노란봉투법(개정노동법)과 관련해 기업이 아닌 오히려 근로자들의 입지를 좁히는 리스크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이 제기돼 주목된다. 무분별한 파업과 교섭 요구가 잇따르는 등 사회적 혼란이 가시화되고 있는 가운데 결국 기업 입장에선 리스크를 회피하기 위한 대책을 강구할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최근 AI로봇의 등장으로 '고용 축소'가 경영계의 화두로 급부상한 상황인데 노란봉투법이 AI로봇 도입을 부채질하는 트리거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전망이 적지 않다.
"원청 사장 나와" 산업현장 곳곳서 노란봉투법 파열음…노동위 판단, 재판 등 혼란 장기화
지난 2일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하청 근로자에 대한 원청회사의 사용자성을 처음으로 인정하는 판단이 나왔다.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등 4개 공기업의 청소·경비 및 시설관리 등을 담당하는 하청업체 노조의 사용자 지위 판단 요구에 대해 충남지방노동위원회는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등 4개 공기업이 하청회사 근로자에 대한 사용자에 해당한다"는 판단을 내놨다. "원청업체가 하청 근로자들의 임금, 근로조건 등을 결정하는 진짜 사장이기 때문에 교섭 또한 원청업체와 해야 한다"는 노조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다.
이번 판단을 계기로 그동안 원청기업에 대한 하청 직원들의 교섭 요구는 더욱 격렬해 질 것으로 전망된다. 김소희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6일 기준 원청을 상대로 교섭을 요구 중인 하청노조는 무려 985곳에 달한다. 현재 대부분의 기업이 교섭에 응하지 않고 요지부동하고 있어 노조 역시 기업을 강제로 협상 테이블에 앉히는 수단을 사용할 것으로 관측된다. 지역 노동위, 중노위 재심, 재판 등 방식은 다양하다. 심지어 재판은 행정법원, 고등법원, 대법원 등 세 단계를 거친다. 방식이 다양하고 과정 자체도 복잡하다 보니 혼란의 장기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법조계 등에 따르면 현재 진행 중인 소송만 놓고 보더라도 벌써 수년 째 진행 중이다. ▲HD현대중공업 소송(2018다296229) ▲CJ 대한통운 소송(2024두37015) 등의 경우 각각 8년, 2년 가량 소송이 진행 중이다. 두 소송 모두 1심과 2심에선 노조의 요구와는 반대되는 결과가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결국엔 대법원 최종심까지 갔다. 대법원 판결의 경우 노란봉투법 시행의 영향으로 결론이 뒤집힐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지만 설령 그렇더라도 원청기업이 하청 직원들의 교섭에 응할지는 여전히 미지수라는 반응이 많다.
법률사무소 메이데이 유재원 변호사(공인노무사)는 "법이 바뀌었으니 대법원 판결도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며 "앞으로 기업들의 교섭 부담이 커지는 것은 당연하고 또 우리 노동법이 양대 노총이 하청업체들을 대리해 교섭할 수 있는 대각선 교섭을 인정하기 때문에 노총의 영향력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다른 방법으로 비용을 줄이고 리스크를 해소할 방법을 찾는 기업들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효율성·생산성 좋은데 노조 리스크도 없다" AI로봇 도입 힘 싣는 노란봉투법
주목되는 점은 기업 입장에선 '하청노조 리스크' 부담이 커질수록 이를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방식을 고민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경영계 등에 따르면 앞으로 노란봉투법 적용의 전제 조건인 '원청이 하청 노동자의 근로 조건에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지배·결정권을 행사'를 피하기 위한 '실질적 지배력'을 지우는 시도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업무 공간을 완전히 분리하고 메신저 등 기록이 남는 대화를 일체 하지 않는 식으로 관계를 단절하는 식이다.
하도급 계약 방식에도 변화를 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과정에 대한 지시를 없애기 위해 '완성된 결과물'을 기준으로 평가해 업무 지시 자체가 불필요하게 만드는 방식이 언급된다. 또 규모가 작은 기업일 경우 노동조합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의식해 기존에 큰 기업과 하던 계약을 다수의 소규모 업체로 분산하는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아울러 하청업체만 별도로 전담하는 특수한 목적의 계열사를 별도로 설립해 리스크 관리만 담당하게 하는 방식도 자주 거론되는 내용 중 하나다.
최근에는 기존의 인력 운용 방식을 송두리째 뒤엎는 대안의 등장 가능성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기존 사람이 하던 일을 AI로봇으로 대체해버리는 것이다. 이미 AI로봇의 등장으로 생산성·효율성 향상을 위한 '고용 축소'가 경영계의 화두로 급부상한 상황에서 노란봉투법 리스크가 고용 축소의 기폭제가 될 수도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한 물류 중견기업 관계자는 "사실 기존에 하청업체에 맡기던 업무 자체가 고도의 전문성을 필요로 하기 보단 물류, 조립, 포장 등 단순 반복 공정이다"며 "앞으로 노란봉투법 리스크까지 감내해야 한다면 기업 입장에선 AI로봇 도입에 더욱 적극 나설 수밖에 없다"고 귀띔했다.
전문가들도 AI 기술의 발달로 산업 환경이 빠르게 변하면서 근로자의 처우 개선 취지로 도입한 노란봉투법이 오히려 근로자의 생존을 위협하는 부메랑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노란봉투법 시행으로 하청 근로자의 권익 보호를 향한 법적 토대가 마련됐으나 역설적으로 기업들이 노무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인적 자원을 AI와 로봇으로 대체하는 고용 없는 산업구조로의 전환이 가속화될 가능성도 높아졌다"고 분석했다.
이어 "기업은 AI 도입을 단순한 인건비 절감이나 노조 회피 수단으로만 활용할 것이 아니라 근로자와 공존할 수 있는 채용 모델을 고민해야 하고 노동계 역시 변화하는 산업 지형을 인정하고 유연한 대응을 모색해야 한다"며 "정부는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갈등이 사회적 비용으로 전이되지 않도록 정교한 중재와 재교육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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