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제사회 안팎에서 '이번 미국과 이란의 전쟁의 최종 승자는 다름 아닌 중국'이라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미국이 군사적·외교적 수렁에 빠진 사이 중국이 에너지 실리와 국제적 위상을 동시에 챙겼다는 이유에서다. 최근 글로벌 리더십 조사에서도 중국이 미국을 처음으로 추월한 가운데 전문가들 역시 이번 전쟁이 중국의 금융 및 산업 경쟁력 강화의 결정적인 변곡점이 될 것이라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혼란 만든 트럼프, 수습 나선 시진핑…중동전쟁 이후 '글로벌 리더십' 지각변동 가능성
9일(현지시간) 영국의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도널드 트럼프는 전쟁에서 가장 큰 패자다'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적 실책을 강하게 질타했다. 보도 내용에 따르면 이번 중동전쟁이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지지를 오히려 퇴보시켰을 뿐만 아니라 그의 비전이 지극히 얕았음을 드러냈다. 특히 이번 전쟁은 '힘이 곧 정의'라는 트럼프식 논리가 외교 정책에 대한 모독이자 명백한 오류였음을 입증해 보였다.
실제 미국은 항공모함 전단과 첨단 미사일, 폭격기 등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동원한 군사작전을 수차례 실시하고도 끝내 이란을 공략하지 못했다. 미 국방부(DOD) 집계에 따르면 '에픽 퓨리 작전(Operation Epic Fury)' 개시 후 불과 39일 만에 약 330억달러(한화 약 45조원)의 전쟁 비용이 투입됐다. 특히 F-15 전투기와 조기경보기 등 고가의 첨단 항공기 자산이 다수 격추되거나 파괴돼 군사적 손실이 가중됐다.
천문학적 전투 비용 소모에도 전황이 교착 상태 빠지면서 그 피해는 국제사회 전체로 확대됐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현실화되면서 국제 유가와 가스 가격이 폭등했고 해외 주요 국가들의 불만도 커졌다. 심지어 트럼프 대통령은 유럽과 아시아 동맹국에 사실상 전쟁 동참 행위나 다름 없는 호위 군함 파견까지 압박했고 요구에 응하지 않자 비난도 서슴지 않았다.
또 중동산 에너지 수입국들에게 미국산 석유를 구매하거나 스스로 통행 문제를 해결하라며 전쟁 책임을 타국에 전가하는 입장까지 내비쳐 국제사회의 공분을 사기도 했다. 이탈리아, 스페인 등 일부 유럽 국가들은 중동으로 향하는 미군 항공기의 영공 통과조차 불허하는 등 불만을 노골적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에 대한 국제사회의 불만 여론이 고조되면서 반대로 중국에 대한 우호적 인식이 부쩍 커졌다. 미국은 분쟁의 직접 당사자로서 전쟁과 파괴의 주체로 인식된 반면 중국은 '5개 항목의 평화 제안'을 내세우며 안정과 평화를 강조하는 중재자 역할을 해냈기 때문이다. 지난달 31일 중국과 파키스탄 외교장관 회담 직후 발표된 이 평화안은 ▲적대 행위의 즉각적 중단 ▲조속한 평화 회담 개시 ▲비군사적 표적 보호 ▲항로의 안전 보장 ▲유엔 헌장의 우선순위 준수 등을 골자로 한다.
국제정세 관련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번 중동전쟁으로 중국은 긍정적 이미지 외에도 경제적 실리까지 챙겼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중국이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는 초유의 상황 속에서도 안정적인 에너지 확보 능력을 입증한데다 달러 패권 균열로 인한 위안화 격상 가능성도 언급되고 있어서다. 실제로 이란은 해협을 봉쇄하면서도 핵심 우방국인 중국과는 사전 협의를 통해 중국 선박의 통행을 예외적으로 허용했다. 강력한 경제적 결속력 때문이었다. 중국이 이란산 원유의 80~90%를 수입하는 최대 고객이다 보니 이란 입장에선 경제의 생명줄을 쥐고 있는 중국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일각에선 미국과 서방 국가의 제재가 거세질수록 중국의 위상은 더욱 커지는 구조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란 입장에선 수출 선택지가 좁아져 중국에 원유를 시장가보다 훨씬 저렴하게 공급할 수밖에 없다는 이유다. 앞서 이란은 전쟁 이전에도 말레이시아 인근 해역에서 선박 간 환적(STS) 방식으로 원산지를 세탁한 뒤 중국의 중소형 종유사 단체인 '티팟(Teapot)'을 통해 저가의 원유를 꾸준히 수출해왔다.
중국에 대한 이란의 외교 의존도 역시 매우 높은 수준이다. 중국은 2023년 7월 자국 주도의 안보 협의체인 상하이협력기구(SCO)에 이란을 가입시킨 데 이어 2024년 1월 1일 이란의 브릭스(BRICS) 정식 회원국 편입을 주도하며 견고한 '반미 블록'을 형성했다. 또 레이더 시스템, 항법 장치, 드론 부품 등 첨단 방산 제품을 이란에 수출해 왔다.
달러 중심 결제 구조의 균열과 위안화 위상 격상 가능성도 언급되고 있다. 미국이 금융 제재의 일환으로 이란을 국제은행간통행신용망(SWIFT)에서 배제하자 양국 간 원유 거래에서 위안화 결제 비중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또한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개방 소식과 함께 통행료를 암호화폐 또는 위안화로 받겠다고 선언해 이번 전쟁을 계기로 '탈달러화' 현상의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다.
국제사회 패권 변화와 중국에 대한 우호적 인식 정도는 객관적인 수치로도 나타나고 있다. 이달 발표된 갤럽(Gallup) 글로벌 리더십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130개국 조사에서 중국의 리더십 지지율(36%)이 미국(31%)을 처음으로 추월했다. 미국의 지지율이 39%에서 31%로 급락하는 동안 중국은 36%로 올라서며 최근 20년 내 가장 큰 격차로 미국을 앞질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미국 내에서는 국제사회의 분위기 변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잇따르고 있다. 9일(현지시간) 미국의 권위 있는 외교 전문지 포린폴리시는 중동전쟁으로 중국이 얻게 되는 반사이익을 명확히 짚었다. 보도 내용에 따르면 중국은 이번 전쟁의 최대 수혜자로 지목된다. 전쟁이 장기화될수록 아시아에서의 미국의 안보 태세는 약화되고 중동 내 미국의 영향력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미국의 보수 성향 싱크탱크인 민주주의수호재단(FDD) 역시 중국이 이란과의 관계를 통해 얻는 실질적인 경제적 이득을 경계하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지난달 FDD가 발표한 보고서에는 "중국의 지원이 없었다면 이란은 이 정도 규모의 군사 행동을 지속할 자금을 마련하지 못했을 것이다"며 "중국은 전쟁 중에도 지속되는 에너지 흐름을 통해 자국 산업의 비용 부담을 낮추고 있으며 이는 미국의 산업 경쟁력을 갉아먹는 요소가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국내 전문가들 역시 이번 중동전쟁이 단순한 국가 분쟁을 넘어 글로벌 패권의 물줄기를 바꾸는 결정적 계기가 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과 교수는 "미국이 중동의 지정학적 덫에 걸려 천문학적인 경제적 비용과 외교적 자산을 허비하는 동안 중국은 에너지 안보 강화와 위안화 영향력 확대라는 실리적인 성과를 얻고 있다"며 "전쟁이 장기화될수록 미국의 공급망 주도권은 약화되는 반면 저가 에너지와 독자적 결제망을 확보한 중국의 산업 경쟁력은 더욱 공고해지는 상황이 연출될 것이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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