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쌀한 바람이 불 때면 자연스럽게 생각나는 음료가 있습니다. 카페에서 내린 커피도 아니고 원두의 향이 뛰어난 것도 아닌데 자꾸 생각나는 맛. 바로 한때 거리와 사무실 한편을 지키던 자판기 커피입니다.
자판기 커피는 지금 기준으로 보면 다소 투박한 맛이었습니다. 생산 단가를 낮추기 위해 공장에서 미리 추출한 커피를 말려 만든 인스턴트 커피 분말을 사용했기 때문인데요. 저렴하다는 장점은 있었지만 원두 본연의 향과 산미보다는 쓴맛과 텁텁함이 강했습니다.
이 거친 맛을 눌러주기 위해 넣은 '신의 한수'는 바로 설탕과 프림입니다. 프림은 커피를 더 부드럽고 고소하게 느껴지게 만드는 커피용 크리머인데요. 자연스레 자판기 커피의 맛도 향보다는 달콤함과 부드러움 쪽에 맞춰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뜨거운 온도도 자판기 커피의 단점을 보완하는 요인 중 하나로 꼽힙니다. 막 뽑은 자판기 커피는 손에 쥐기 어려울 만큼 뜨겁다 보니 세밀한 맛보다는 그저 온기와 자극을 먼저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쓴맛은 느낄 새도 없이 진한 단맛만 느끼게 되는 것이죠.
결국 자판기 커피의 단점을 보완한 부분들이 오히려 매력 요소로 탈바꿈하면서 오랜 기간 사랑받는 원동력이 된 것인데요. 여기에 자판기의 위치와 작은 종이컵까지 합세하면서 자판기 커피는 한국인들의 소울푸드로 자리매김하게 되죠.
실제로 커피 자판기는 사무실, 공장, 터미널 등과 같이 짧은 휴식 시간을 즐기는 장소에 놓여져 있는 경우가 많았는데요. 대부분 맛을 음미하기 보단 졸음을 깨고 잠깐 쉬는 공간들이었죠. 그 순간 필요한 것은 복잡한 향이 아니라 한 모금에 바로 느껴지는 따뜻함과 당분이 주는 즉각적인 만족감이었습니다.
또 작은 종이컵에 반쯤만 들어가 있다 보니 훌쩍 마시기에도 유리했는데요. 결국 자판기 커피는 그 시대의 입맛과 생활 방식에 가장 잘 맞춰진 맛이었던 겁니다.
우리의 일상 가장 가까운 곳에서 늘 뜨겁게 기다리고 있던 한 잔. 더 좋은 커피를 쉽게 마실 수 있게 된 지금도 달고 뜨거운 한 잔이 그리운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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