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앞선 두 편의 글에서 조선(북한)의 경제와 민생이 바닥을 치고 빠르게 올라오고 있다고 진단한 바 있다. 특히 '경제·핵 병진노선'이 핵무력뿐만 아니라 경제건설에서도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는 대북정책을 전면적으로 재설계해야 할 또 하나의 근거에 해당한다.
하지만 국내에선 여전히 아전인수가 유행한다. 세 가지 측면에서 그러하다. 첫째는 조선이 여전히 경제난을 탈피하지 못해 언젠가는 우리의 도움이 필요할 것이라며 그때를 기다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둘째는 조선이 경제성장을 하려면 대북 제재 완화와 해제가 필요할 것이라는 '제재 중심'의 사고 방식이다. 셋째는 대화와 협상이 재개되어 조선의 핵동결과 감축이 논의될 때, 주고받기의 관점에서 '우리는 무엇을 줘야 할까'라는 고민이다.
하지만 이는 '흘러간 유행가'를 다시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오히려 우리는 조선의 변화에서 기회를 포착해야 한다. 조선은 외부의 도움 없이 스스로 무너진 경제를 일으키고 있고 그래서 외부의 지원이 필요없다는 입장이다.
과거에는 제재에 비명도 지르고 풀어달라고 하소연도 했지만, 자력갱생과 자급자족을 실현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자평한지도 5년이 넘게 지났다. 또 핵문제는 "경제적 흥정물"이 될 수 없다는 점도 분명히 해왔다.
이는 우리가 새로운 대북정책을 추진해야 할 필요성을 다시금 일깨워준다. 조선이 스스로 경제와 민생을 일으키고 있다고 자평하고 있는 만큼, 대북 지원이나 경제협력을 통해 조선의 변화를 유도하려고 했던 지금까지의 방식과는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다른 접근은 기회의 측면도 품고 있다.
'선경후정'에서 '선정후경'으로
먼저 오랜 시간 남남갈등의 원인 가운데 하나였던 '퍼주기 논란'에서 벗어날 수 있다. 과거에 '퍼주기'를 했는지도 의문이지만, 대북 지원과 경제협력도 사실상 중단된 지 오래되었다. 또 조선이 갈수록 거칠고 적대적으로 나오고 우리 국민의 민생도 어려워지면서 대북 지원과 경제협력의 내부적 동의 기반도 예전만 못한 실정이다. '우리가 무엇을 해줄까'에서 '무엇을 할까'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해진 까닭이다.
대북 제재와 관련해 다른 접근이 가능해지고 있는 것도 역설적인 기회이다. 과거의 핵협상에선 비핵화 프로세스와 제재 완화·해결을 조율하는 게 난제였고 이것이 잘 안되면서 협상이 결렬되곤 했다.
그런데 조선이 제재 해결을 더 이상 요구하지 않겠다는 입장인 만큼, 제재가 협상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크게 줄어들었다. 물론 제재 해결이 조선에게 여전히 '불감청고소원'일 수는 있지만, 핵문제와 관련된 조선의 양보에 대한 상응조치로 제재 문제를 고심해야 할 필요성은 크게 줄어든 것만은 분명하다.
이러한 상황 전개는 조선에 경제적 인센티브를 제공해 핵문제를 비롯한 정치·군사 문제의 해결을 시도해온 '선경후정'의 시효가 지났다는 것을 말해준다. 오히려 이제는 정치·군사 문제를 먼저 해결하면서 경제협력을 다시 추진할 수 있는 '선정후경'이 필요한 시점이다.
우리는 호응하고 있는가?
이재명 정부 들어 여러 가지 대북 유화 조치와 메시지에도 불구하고 조선의 호응이 없는 것을 두고 정부는 물론이고 많은 사람들도 답답해한다. 필자 역시 이러한 심정을 갖고 있으면서 '우리는 호응하고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의문도 품게 된다.
조선은 2023년 7월부터 '남조선' 대신에 '대한민국(한국)'이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작년 6월부터는 '괴뢰'라는 표현도 사용하지 않는다. 또 통일을 포기하겠다는 조선은 '남조선 혁명'을 통한 적화통일이나 무력통일도 추구할 생각도 없다고 말한다. "적대적"이라는 수식어를 고수하고 있는 점은 매우 유감이지만, 한국을 국가로 인정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우리의 변화는 너무나도 더디다. '북한'이라는 표현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고, 조선의 국가성을 부정하는 헌법의 영토조항, 국가보안법, 이북5도청 등의 개폐 논의도 전무하다시피 한다. 전시 무력흡수통일 계획이 포함된 한미연합사의 작전계획과 군사훈련이 바뀌었다는 소식도 들리지 않는다.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바꾸기 힘든 만큼,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나씩 바꿔가야 하는데 그런 움직임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이제는 '변화를 통한 접근'을 시도할 때라는 뜻이다.
이기이관(利己利關)의 접근법
하여 우리의 전략적 고민은 '무엇을 줄까'가 아니라 '무엇을 할까'에 맞춰져야 한다. 이 한 글자의 차이는 매우 중요한 함의를 품고 있다. '줄까'라는 관점은 상대의 호응 여부에 구속된다. 반면 '할까'라는 관점은 문제 해결의 주체성에 기초한다. 물론 우리가 무엇을 하더라도 조선의 호응 여부를 예단하긴 어렵다. 다만, 한국에서 대북 전단 살포가 중단되자 대남 오물 풍선도 사라졌고 대북 확성기를 끄자 대남 '괴음' 방송도 중단됐다.
더 중요한 관점은 먼저 나를 이롭게 하면서 관계도 이롭게 한다는 뜻의 '이기이관(利己利關)'이다. 지금은 자조(自助)와 자강(自强)의 시대이다. 이 관점을 가지면 우리 스스로를 돕고 강해지면서 조선과의 새로운 관계를 도모할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다.
한국군 훈련이나 한미연합훈련에서 '참수 작전'뿐만 아니라 전시 대북 점령과 안정화 작전, 그리고 통일 달성을 깨끗이 내려놓고 억제·방어·격퇴·응징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선택을 통해 정말 많은 것을 바꿀 수 있다. 뉴노멀이 되고 있는 '고유가 시대'에는 특히 그러하다.
가령 F-15 전투기 한 대가 1시간 하늘을 날면, 승용차 약 1천대가 같은 시간 도로를 달리는 연료가 사라진다. 세계 최대 규모인 한미연합훈련을 비롯해 각종 군사 훈련에서 '전시 무력통일 계획'을 제외하면 엄청난 연료를 아낄 수 있다는 뜻이다. 연료뿐만 아니라 이 계획을 위해 평시에 소모되는 막대한 인적·물적 자원을 우리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이게 바로 나를 이롭게 하면서 관계도 이롭게 할 수 있는 방안이다. 국방의 범위를 군사분계선 이남으로 재정의해 자주국방을 굳건히 하면서 평화공존을 도모할 수 있는 출발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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