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루트 해안 산책로인 마나라 지구에 사는 와흐하드 씨는 귀가 멍해지고 정신을 차리지 못한 상태로 자신의 건물 차고로 걸어 나갔다. 불과 10미터 떨어진 옆 건물에서 날아온 네 사람이 담벼락에 쓰러져 있었다. 그 중 살아있는 사람은 한 명뿐이었고 그마저도 중상을 입은 상태였다. 와흐하드는 뒤틀린 철근과 아이들의 장난감이 나뒹구는 잔해 더미 위에서 응급처치를 했다.
“처음에는 우리만 당한 줄 알았어요. 그런데 곧 알게 됐죠. 베이루트 전체가, 레바논 전체가 불바다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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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이 레바논 전역에 걸쳐 10분도 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약 100곳을 동시다발 폭격했다. 지난 8일(이하 현지시간) 오후 2시를 기해 전개된 이스라엘의 ‘영원한 어둠 작전(Operation Eternal Darkness)’으로 이날 하루에만 최소 303명이 숨지고 1150명 이상이 다쳤다. 레바논 보건부가 집계한 이 피해자 수치는 2020년 베이루트 항구 폭발 사고 사망자 수를 웃돈다. 수십년간 전쟁과 파괴로 점철된 레바논 역사에서도 가장 참혹한 단일 폭격 작전으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9일 보도했다.
◇베이루트 도심뿐 아니라 산간 마을까지
FT가 집계한 레바논 국영 뉴스 속보에 따르면 이날 공습은 전국 50개 지역 이상에서 동시에 이뤄졌다. 그동안 공습을 피해온 베이루트 도심 주거지구는 물론, 피란민들이 몸을 피하고 있던 산간 마을까지 포함됐다.
현장을 취재한 FT 기자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참혹했다. 베이루트 중심부 주거·상업 밀집지구의 중층 건물들이 잔해 더미로 변해 있었다. 탈렛 알-카이야트 지구에서는 공습이 남긴 거대한 분화구 옆에서 시민 방위대원들이 실종자를 찾고 있었다.
수도 밖도 다르지 않았다. 장례 행렬이 공습을 받았고, 피란민 지원 배급소 두 곳이 파괴됐다. 유모차를 끌고 오후 산책에 나선 엄마들도 폭격을 피하지 못했다. 사망자 303명 중 110명은 어린이·여성·노인이었다. 시인, 2020년 베이루트 항구 폭발 피해자 인권 운동가, 기자 2명, 레바논군 병사 4명도 목숨을 잃었다. 9일 오후 구조대원들은 창백한 얼굴에 손에서 피를 흘리면서 잔해 속 시신을 수습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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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이란 없다”…혼란 속 공포
대학에서 회계학을 전공하고 있다는 24살 모하마드 디아브는 이웃 건물 주민들이 양동이로 깨진 유리와 폭발 잔해를 발코니 밖으로 쓸어내는 광경을 멍하니 지켜봤다.
디아브는 “학교에 있지 않았더라면 죽었을 것”이라며 “이제 ‘안전’이란 없다. 이스라엘이 원할 때 언제든, 원하는 방식으로 공격할 수 있다는 메시지가 분명하다”고 말했다.
일상을 유지하려는 사람들도 있었다. 어부들은 부두에 나와 있었고, 택시 기사들은 텅 빈 거리에서 필사적으로 손님을 찾고 있었다. 또 다른 이들은 공습 현장을 하나씩 돌아다니며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이해하려 했다.
이스라엘군은 이번 작전으로 헤즈볼라 ‘지휘·통제 센터’를 타격하고, 나임 카셈 헤즈볼라 지도자의 개인 비서이자 조카인 알리 유수프 하르쉬를 포함해 200명 이상의 ‘테러리스트’를 사살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공습을 당한 아파트의 주민들은 이 설명을 납득하지 못했다. FT에 증언한 주민들은 수십 년을 함께 살아온 이웃 중 헤즈볼라 전투원이 있었다는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했다. 한 주민은 “누가 어디 사는지 확실히 알기는 어렵다. 피란민들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특히 더 그랬다”고 전했다.
아인 알-므레이세 지구 공습에서 살아남은 압도 칼릴 씨는 “이스라엘은 내전의 씨앗을 뿌리고 있다. 우리가 서로를 의심하게 만들어 무릎을 꿇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휴전 혼선 틈타 기습…레바논 포함 여부 불분명
이번 공습에는 더욱 충격적인 이유가 있다고 FT는 지적했다. 공습 전날 밤 미국과 이란 사이에 휴전이 합의됐고, 이란과 파키스탄은 레바논도 그 범위에 포함된다고 공언했다. 일부 피란 레바논인들은 전쟁이 끝났다고 믿고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바로 그 다음 날 폭탄이 떨어졌다. 이스라엘과 미국은 레바논은 휴전 합의와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헤즈볼라는 공습 전까지 발사를 자제하며 이스라엘의 다음 행동을 지켜봤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휴전을 존중하지 않을 것이 확실해지자 이스라엘을 향해 수십 발의 발사체를 날렸고, 레바논 전역에는 보복 공격이 임박했다는 공포가 번졌다.
이스라엘 측 관리는 헤즈볼라가 전통적인 시아파 거주지를 벗어나 혼합 지구로 세력을 확산하고 있다며 “IDF가 그곳은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을 역이용했다”고 밝혔다. 레바논에서는 이번 전쟁으로 인해 120만명 이상이 터전을 잃었다. 이스라엘의 이 논리가 지역사회 내 상호 불신을 자극하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9일 이스라엘이 레바논 내 작전을 ‘축소’하고 있다고 밝혔다. 레바논 정부는 국가 애도일을 선포했지만 장례식은 거의 열리지 않았다. 사망자 신원 확인 작업이 더디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관건은 외교의 향방이다. 미·이란 휴전 테이블에서 레바논 관련 논의가 어떻게 전개될지, 헤즈볼라의 보복과 이스라엘의 재공습이 맞물리는 악순환이 이어질지에 관심이 모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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