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포의 창] "끝까지 싸웠다"…청산리 전투 영웅 김명하 다시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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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포의 창] "끝까지 싸웠다"…청산리 전투 영웅 김명하 다시 부른다

연합뉴스 2026-04-10 09:59:14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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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고려인마을·고려신문 공동 재조명…2022년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김좌진 장군이 이끈 북로군정서 김좌진 장군이 이끈 북로군정서

[광복군 자료사진·광주 고려인마을 제공]

(서울=연합뉴스) 박현수 기자 = 청산리 전투에 참전해 끝까지 항일투쟁을 이어간 고려인 독립운동가 김명하 선생의 삶이 다시 조명됐다.

광주 고려인마을은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발행되는 고려신문과 함께 추진 중인 '연해주 고려인 독립유공자 후손 발굴·지원 사업'을 통해 열여섯 번째 인물 김명하 선생(1893~미상, 이명 김순칠)의 삶을 재조명한다고 10일 밝혔다.

함경북도 종성 출신인 선생은 12세에 간도로, 18세에는 연해주로 이주하며 유랑의 삶을 시작했다. 하얼빈 등지를 떠돌던 그는 24세에 김좌진 장군이 이끈 북로군정서에 입대하며 항일투쟁에 뛰어들었다.

그는 1920년 10월 청산리 전투에서 소대장으로 참전해 치열한 전투를 치렀다. 이후 부대 해산으로 다시 연해주로 돌아간 그는 이르쿠츠크 울칸 금광에서 광부로 일하고, 전기회사 화부로 생계를 이어가는 등 고된 삶을 이어갔다.

그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배움을 멈추지 않았다. 블라디보스토크 공산학교를 졸업한 뒤 노동학교 교사로 재직하며 공동체를 위해 헌신했고, 연해주 수청 파블로카 어업조합에 가입해 1932년 1월 조합장으로 선출되기도 했다.

1932년에는 국내 주요 교통시설을 폭파해 일제의 군사력을 교란하라는 정치보안부의 명령을 받고 비밀 작전에 참여했다. 같은 해 3월 25일 이학운·조용규·조재풍 등과 함께 함경북도 청진으로 잠입했으며, 이 과정에서 이학운이 단장, 김명하 선생이 부단장으로 선임됐다.

이들은 압록강 철교 등 주요 교통시설을 폭파하고 재만 일본군의 후방을 교란하기 위해 군자금 700원과 폭발물 900개, 권총 4정, 탄환 105발을 준비하는 등 작전에 나섰다.

그러나 1932년 4월 16일 오전 단장 이학운이 청진경찰서에 체포되며 조직이 발각됐고, 해변에 은닉해 둔 폭발물과 무기가 발견되면서 일제 경찰의 대대적인 검거가 이어졌다. 김명하 선생 역시 같은 날 오전 11시께 민가에서 체포됐다.

이후 그는 청진지방법원에서 '폭발물취체벌칙' 및 '총포화약류취체령' 위반 혐의로 징역 8년을 선고받았으며, 경성복심법원 항소 취하로 형이 확정됐다. 이후 행적과 생애의 마지막은 기록되지 못한 채 역사 속에 묻혔다. 현재까지 묘소 위치와 후손의 행방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공훈을 인정해 2022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고려인마을 이천영 이사장은 "김명하 선생은 청산리 전투의 영웅이자 끝까지 항일투쟁을 이어간 실천적 고려인 독립운동가"라며 "그의 이름을 다시 부르는 일은 단순한 발굴이 아니라 역사 속에 남겨진 빈자리를 채우는 일"이라고 전했다.

phyeonso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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