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에 핵개발 시간만 벌어준 협상 실패 교훈…이번엔 '先타격 後협상'
휴전협상 핵심은 이란의 핵 포기 여부…결렬 시 美 공격 재개
(서울=연합뉴스) 이승우 선임기자 = 미국과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개방을 조건으로 2주 휴전에 들어가면서 패닉에 빠졌던 글로벌 경제도 잠시 숨을 고르고 있다. 그러나 이는 일시적 군사 행동 중단일 뿐이다. 협상 타결의 관건은 결국 이란이 완전하고 검증할 수 있는 방식으로 핵 프로그램 폐기를 약속하느냐 여부다. 이란 신정 정권으로선 명운이 달린 일이고 내부에서 강경파와 온건파가 충돌하는 지점이다. 만약 이란이 핵 포기 의지를 확실히 보이지 않을 경우 합의는 물 건너가고 미국은 곧바로 파상 공세를 재개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이처럼 이란을 강하게 몰아붙이며 끝장을 보려는 것은 과거 북한과 핵 협상에서 참담한 실패를 맛본 과거를 반면교사 삼았기 때문이다. 약 30년간 북핵 협상은 미국 외교사에서 대표적 참사 중 하나로 꼽힌다. 북한의 기만술에 이리저리 끌려다니다 결국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만들어주는 실기를 범했다. 심지어 북한은 장거리 투발 수단까지 보유한 것으로 평가돼 미국은 본토마저 위협받는 지경에 처했다. 이란은 군사·경제적으로 긴밀히 협력해온 북한 모델을 본받아 핵을 개발해왔는데, 미국은 최근 이란이 핵 임계점에 달했다고 보고 행동에 나서야 했다. 핵 프로그램 완성 후엔 군사 옵션이 사라진다는 교훈을 북한에서 얻었기 때문이다.
공화당을 비롯한 미국 보수 세력은 북한과 이란 핵 문제가 장기간 실패를 이어온 것은 민주당 정권의 오랜 무능과 외교적 순진함에 기인한다고 비난한다. 북핵 위기가 본격적으로 국제사회 중심 이슈로 부상한 건 1994년이다. 미국 클린턴 행정부는 제네바 합의를 통해 핵 개발을 멈춘다는 북한의 약속만 믿고 경수로 지원과 중유 공급이라는 막대한 경제적 혜택을 줬다. 결과적으로 북한은 겉으론 핵을 동결한 척하며 뒤로는 농축우라늄(HEU) 프로그램을 돌렸다.
북한 편인 중국과 러시아가 참여한 '6자 회담'이라는 다자 틀도 '합의 → 북한 기만에 의한 파기 → 재협상'이라는 무한 루프가 이어지며 북한에 시간만 벌어줬다.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라는 언어유희도 결과적으로 북핵 개발을 8년간 방치했다. 그래서 미 보수층은 이를 '전략적 직무 유기'라고 조롱한다. 그러는 동안 북한은 핵과 미사일 고도화를 차근차근 진행해 2006년 1차 핵실험을 감행했고, 이후 여러 차례 핵실험과 다수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 실험을 거쳐 사실상 핵보유국이 됐다. 핵을 포기했다가 무참히 제거된 리비아 카다피 독재 정권을 지켜본 이란에 북한은 동경의 대상이었다.
결과론이지만 전문가들은 북핵 제거의 골든타임이 1994년 6월이었다고 복기한다. 당시 클린턴 행정부는 북한 영변 핵시설 폭격을 계획하고 있었으나 핵 동결 의사가 있다는 북한의 거짓말에 속아 계획을 전격 취소했다. 빌 클린턴 당시 대통령이 군사 작전을 최종 승인하기 직전에 평양을 방문 중이던 지미 카터 전 대통령으로부터 "김일성이 핵 동결에 합의했다"는 긴급 전화를 받고서 일어난 변화였다. 김영삼 당시 대통령이 클린턴과 접촉해 영변 타격 계획에 강력히 반발한 것도 작전 취소의 원인 중 하나가 됐다. 그로부터 넉 달 뒤 국제사회는 북한의 사기극에 휘말렸다.
이런 일련의 실패는 미국 안보 라인에 냉엄한 교훈을 남겼고 대전략 재편의 계기로 작용했다. 제네바 합의 실패는 독재 정권의 공갈에 절대 보상으로 응하면 안 된다는 선례가 됐다. 카터의 개입이 결정적이었던 영변 폭격 포기는 미숙한 민간인과 전직 관료의 중재를 허용해선 안 된다는 사례로 회자한다. 김영삼 정부의 반대는 이후 동맹국이라도 미국의 안보 이익에 반하는 의견을 내면 묵살해야 한다는 근거 사례로 남았다. 6자 회담 실패는 중국과 러시아가 포함된 다자 협상을 하지 말 것과 중국의 중재를 믿지 말라는 내부 공감을 형성했다. 트럼프 정부가 폐기한 이란 핵 합의(JCPOA)가 제네바 합의의 복사판으로 비판받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미국의 이 같은 반성은 이번 대(對)이란 총공세에서 행동으로 드러나고 있다. 1994년 트라우마를 통해 배운 '확전 우려와 동맹 반대에 전면전을 주저할 경우 훗날 본토가 적의 핵 위협에 직면한다'는 교훈이 그대로 군사 작전에 반영되고 있다. 30여년 전 후회가 현재 이란 핵 시설을 파상 폭격하는 명분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이번엔 중동 우방들의 안전과 이해관계보다 '핵 제거'라는 미국의 본질적 안보가 우선이며, 전면전을 하더라도 핵 프로그램은 없애 한다는 논리가 힘을 얻고 있다.
미군 당국은 휴전 직전까지 이란 핵농축 시설의 약 85%를, 미사일 전력의 약 90%를, 혁명수비대(IRGC) 지휘부의 60% 이상을 제거했다고 설명한다. 이란의 핵 인프라와 군사 전력이 회복하기 어려운 타격을 입은 셈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번 공격을 통해 이란의 핵 보유 골든타임을 물리적으로 늦췄다는 점에서 큰 승리를 거뒀다고 주장한다. 다만 현재까지 축적된 핵기술과 일부 핵농축 시설은 여전히 어딘가에 남아있으며, 이는 언제든 핵 프로그램을 재개할 불씨가 된다. '믿되, 검증하라'는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의 격언을 신봉하는 트럼프 정부는 휴전 협상에서 이란이 '검증할 수 있는 해체'를 약속하지 않을 경우 군사 행동 재개를 통해 이란 정권의 굴복을 끝까지 강요할 가능성이 크다.
lesli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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