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한스경제 전시현 기자 | 한국은행이 원화 가치에 연동되는 디지털 화폐인 '스테이블코인'의 발행 주체를 사실상 은행권으로 제한하려 하면서, 그 법적 근거로 언론의 독과점을 막기 위한 방송법과 신문법을 내세운 것으로 확인됐다. 새로운 디지털 금융의 핵심 인프라를 설계하는 과정에서 전혀 다른 분야의 낡은 규제 잣대를 무리하게 끌어왔다는 지적이 나온다.
10일 가상자산 업계와 정치권에 따르면, 한국은행은 최근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발행 구조를 은행 중심으로 설계해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하며 더불어민주당 박민규 의원실에 관련 자료를 제출했다. 한은은 이 자료에서 스테이블코인 우선 발행 방안으로 '은행 지분 50%+1주' 구조를 제시하며, 입법례로 방송법 제8조와 신문법 제18조의 소유 제한 조항을 명시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는 단순한 자본 출자를 넘어, 은행이 과반 지분을 확보해 스테이블코인 발행사의 경영권과 의사결정권을 확실하게 통제해야만 발행을 허용하겠다는 의미다.
스테이블코인은 가격 변동성을 최소화해 실제 결제와 송금 수단으로 널리 쓰일 가능성이 높다. 예치 기능까지 흡수할 경우 기존 통화 질서와 금융 안정에 미치는 파급력이 막대하다. 이 때문에 당국 입장에서는 이미 촘촘한 건전성 감독 체계 안에 들어와 있는 은행권이 주도권을 쥐어야 리스크를 통제할 수 있다는 논리가 깔려 있다. 초기 시장 안정을 위해 보수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점에는 업계도 대체로 수긍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한은이 은행 중심 구조를 정당화하기 위해 미디어 관련법을 끌어들인 것을 두고 시장에서는 의아하다는 반응이 쏟아진다. 방송법과 신문법의 지분 제한은 소수 자본에 의한 여론 독과점과 편향을 막기 위한 장치다. 반면 금융 상품에 가까운 스테이블코인의 핵심 쟁점은 발행사의 준비자산 관리와 상환 능력, 유동성 확보 및 이용자 보호다. '공공성이 크다'는 막연한 공통점만으로 여론 매체 소유 규제를 첨단 디지털 자산 발행 구조에 대입하는 것은 제도의 규제 목적과 대상을 혼동한 처사라는 것이다.
특히 해당 미디어 법체계 자체가 융합과 플랫폼 중심으로 재편된 현 시장 상황을 담아내지 못하는 낡은 규제로 비판받아 온 터라, 이를 최신 핀테크 산업의 규율 근거로 삼기에는 설득력이 크게 떨어진다는 평가다. 신산업의 리스크를 관리해야 한다는 당위성과, 그 통제를 위해 어떤 합리적 법 논리를 적용할 것인지는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결국 다가올 입법 과정에서는 발행 주체를 은행으로만 한정하는 구조가 과연 최선인지를 두고 치열한 논쟁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비은행 사업자에게도 강화된 건전성 규제와 별도의 인가 요건을 부여해 시장 참여의 길을 열어주는 방식이 현실적이라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는 "규제와 관리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그 뼈대를 구시대적인 미디어 소유 제한 논리에서 찾는다면 혁신과 안정이라는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기 어렵다"며 "스테이블코인이 미래 디지털 결제 인프라의 한 축이 될 것이 확실한 만큼, 산업 현실에 맞는 정교하고 직접적인 법적 근거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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